7. 사도행전 7장 /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 순교자
본 장에는 사도행전에서 제일 길고,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질 설교 한편이 수록되어 있다.
본 장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세례(침례)요한과 그리스도, 이제 스데반에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세번째 살인과, 왕국에 대한 최종적인 거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설에서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선택한 지도자들을 반드시 첫번째는 거절했다가 두번째는 영접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모세와 요셉은 둘 다 처음에는 영접을 받지 못하다가 두번째에 영접을 받았다(7:13/7:35).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취급한 방법이다. 그들은 세례(침례)요한과 사도들이 의하여 제시된 주님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두번째로 나타나실 때에 영접할 것이다.
1.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행 7:1-8)
이 언약은 창세기 13장 14-18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15장과 17장에도 나온다. 이 약속에는 아브라함의 씨가 약속의 땅을 소유하게 될 것과, 다가오는 시대에는 씨가 번성할 것이라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이 언약의 인(印)은 할례였다. 아브라함과 맺은 이 언약은 유대 민족의 기초이다. 하나님은 이방인과 이 언약을 맺지 않으셨고 또한 교회에 적용하지도 않으셨다. 이 약속들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교회에 적용시키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며 잘못 분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땅과 왕국을 주겠노라고 약속하셨으나, 이들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땅의 소유권을 잃었으며 왕국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아브라함과의 이 언약은 아직도 유효하며,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그의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돌아오실 때에 성취될 것이다.
2. 이스라엘이 요셉을 거절함 (행 7:9-16)
요셉은 여러 면으로 그리스도의 놀라운 상징이다.
1) 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창 37:3/마 3:17).
2) 그는 자신의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창 37:4-8/요 15:25).3)
그들은 요셉을 질투하였다(창 37:11/막 15:10).
4) 노예 한 사람 값에 팔렸다(창 37:28-/마 26:15).
5) 종으로 겸손히 낮추었다(창 39:1-/빌 2:5-).
6) 거짓으로 고발되었다(창 39:16-18/마 26:59-60).
7) 영광스럽게 승격되었다(창 41:14-/빌 2:9-10).
8) 처음에는 그의 형제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창 42:8/행 3:17).
9) 두번째로 자신을 나타내었다(창 45:1-/행 7:13/슥 12:10).
10) 그의 형제들에게 거절을 당하는 동안 그는 이방인 신부를 취하였다(창 41:45/행 15:6-18).
스데반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족장들(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대했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대했지만 요셉은 종말에 가서야 자신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요셉이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고난을 받았던 것같이 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온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는데 유대인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3. 이스라엘이 모세를 거절함 (행 7:17-41)
요셉과 마찬가지로 모세도 그리스도의 놀라운 상징이다.
어린 아이였을 때 박해를 받고 거의 살해될 뻔하였다(출 1:22/출 4:19/마 2:13-20).
세상을 거절하고 자기 백성을 구하려 하였다(히 11:24-26/마 4:8-10/ 고후 8:9).
백성들을 도우려고 했으나 처음에는 거절을 당했다(출 2:11-14/사 53:3)
목자가 되었다(출 3:1/요 10:1-).
거절당하는 동안 이방인 신부를 취했다(출 2:21).
두번째에 그의 형제들에게 영접을 받았다(출 4:29-31/행 7:35).
어린 양의 피로써 백성을 속박에서 구원해냈다(출 12장/벧전 2:24).
모세는 선지자였고(신 18:15-19/행 3:22), 제사장이었으며(시 99:6), 왕이었다(신 33:4-5).
38절에 대해 한 마디를 부언하고 넘어가야겠다. 이스라엘이 “광야의 교회”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이때 교회는 단순히 “엑클레시아”(ejkklhsiva), 곧 “총회 또는 불러냄을 받은 기구”라는 뜻이며, 이스라엘이 “구약에 나오는 교회”라는 뜻은 아니다. 구약에서는 교회가 예언된 것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이스라엘(지상의 백성)은 신약 신자들(하늘의 백성)이 가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같은 입장에 있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에 거룩한 지도자가 있었으며 하나님 자신이 그들 중에 계셨어도,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고 거부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다시 애굽으로 향했다.” 그들은 우상 숭배에 빠졌고,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그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에도 이 백성은 같은 일을 행하지 않았는가? 모세는 기적을 행하였으며 광야에서 그들의 필요에 대처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으며, 그리스도는 능력의 일들을 행하셨고 백성들을 먹이셨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등을 돌렸다.
4.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거절함 (행 7:42-50)
스데반은 아모스 5장 25-27절과 이사야 66장 1-2절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으니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지자들은 성전이 있다 해도 그들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축복을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하늘과 땅에 편만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손으로 만든 성전에 제한될 수가 있는가?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은 미신에 불과했다. 외적인 종의 모양은 지녔으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다. 이들은 선지자들의 소리를 거절하였고 이들을 박해하며 죽이기까지 하였다(마 23:29-33). 선지자(그리스도)가 나타나자(37절),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5. 굳혀진 이스라엘의 심판 (행 7:51-60)
이스라엘은 과거에 두 번의 살인을 했는데, 이제 세번째 살인을 하려고 한다. 세례(침례)요한이 목베임을 당하게 버려 둠으로써,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세례(침례)요한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거절하였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때는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였고, 이제 스데반을 죽여서 “용서받지 못할 최후의 죄”를 범하며(마 12:31-32) 성령께 저항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그처럼 취급한 민족을 용서해 주실 것이지만, 그처럼 능력있게 아들을 증거하시는 성령께 저항하는 유대인들을 용서하실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메시야라는 증거를 다방면에 걸쳐 증거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목과 마음을 굳게 하기를 더 좋아했다(7:51). 오늘날의 죄인들과 얼마나 비슷한가!
스데반은 성경을 사용했으며, “성령의 검”(엡 6:17/히 4:12)은 이 유죄 판결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찔렀다. 죽게 되었을 때에 스데반은 시선을 하늘로 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삼상 4:19-22)은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씌어졌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을 보았는데, 이는 우리들이 오늘날 보는 그 영광이다(고후 4:1-).
시편 110편 1절, 마가복음 16장 19절, 히브리서 1장 3절, 그리고 10장 12절 같은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역을 완성하셨으므로 “앉아 계심”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55절은 그가 “서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그의 순교자 스데반을 영접하기 위하여 일어서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스데반이 영광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들은 그리스께서 유대 법정의 증인이 보통 취하는 모습을 취하셔서 스데반의 메시지와 사역이 사실임을 입증하며 서 계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사실은 스데반의 죽음이 유대인들에게 왕국을 제시하는 일을 종료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사도행전의 전환점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무대를 채우기 시작하며, 이 교회가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사역하시고 계신 교회이다. 여기서 누가복음 22장 69절을 읽어야 하겠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간증을 상기했을 것이 분명하다. 스데반의 기도는 자기 백성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 일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스도가 서 계신 것을 보며 스데반은 아마도 이들의 반복된 죄로 말미암아 주님이 이 민족을 심판하려(시 7:6) 하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며, 그래서 은혜와 진노의 연기(延期)를 원했을 것이다. “그가 잠들다”는 표현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의 의미가 어떠한가를 알려 주는 아름다운 묘사이다.
이스라엘의 심판은 굳혀졌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은혜의 복음이(왕국의 메시지가 아니다) 유대인들에게서 사마리아와 이방인들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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