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도행전 9장 / 사울의 회심
바울의 회심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심에 있어 일대 전환점을 이룬다. 세계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은 이 비범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려면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바울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사역을 대표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음의 대조점들을 눈여겨 보자.
베드로 |
바울 |
12사도에 속함 |
한 몸(교회)에 속함 |
왕국복음 |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
예루살렘에 중심을 둠 |
안디옥에 중심을 둠 |
이스라엘을 우선으로 사역함 |
이방인에게 사역함 |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계실 때 부르심을 받음 |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음 |
왕국의 모형인 땅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 |
영화롭게 된 교회인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 |
“바울에게서 빼앗아 베드로에게 주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들은 이 두 사역자를 혼동하여 “왕국의 진리“와 “교회 진리”를 혼합하여 섞어서 지교회를 어지럽힌다. 바울은 지교회에게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이었으며, 베드로조차도 이 사실을 인정하였다(벧후 3:15-16).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지역 총회가 실천한 사항들을 따르면서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이 교회에게 주신 교훈들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잃는 것이다. 베드로도 역시 바울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며 더 많이 배워야만 했다(갈 2장).
1. 바울과 주님 (행 9:1-9)
바울의 회심은 순전한 은혜였다. 하나님은 바울이 살기등등하여 신자들에게 가는 도중에 갑자기 개입하셔서, 은혜로써 그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셨다. 교회가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한 몸인 것같이, 바울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한 몸에 가지고 있었다. 그는 출신은 유대인이었으나 호적으로는 이방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교회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게 하신 종이었다(15절).
이 교회에 관한 메시지는 과거의 시대에는 비밀로 되어 있던 신비였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 둘 다에 연관되어 헬라 철학이나 로마법과 아울러 구약 성경의 훈련을 받았으므로 바울은 “아무 차별이 없다”는 이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안성마춤의 사람이었다.
바울의 회심은 다음 진술들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한 빛을 보았다.
-음성을 들었다.
-부르심에 순종하였다.
모든 죄인은 복음의 빛이 그에게 비치기까지는 어두움 가운데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직접 들었지만, 모든 죄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구주의 음성을 듣는다(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무슨 소리를 들었지만 무슨 말인지는 몰랐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얼마나 겸손하게 만드셨던가! 그는 엎드러졌는데, 몸만 엎드러진 것이 아니라 마음도 엎드러졌다. 왜냐하면 우리가 겸손하게 엎드러지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4절은 그리스도의 몸이 실존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명이다. 그렇지 않다면 바울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박해할 수 있는가? 바울이 신자들에게 손을 뻗친 것은 주님의 몸된 지체에 손을 댄 것이며, 이것은 그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2. 바울과 아나니아 (행 9:10-19)
바울은 환상을 통하여 아나니아가 그를 방문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줄의 양쪽 끝”에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돕도록 베드로나 요한을 보내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들의 특별한 사역은 이제 제쳐지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나니아의 두려움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특별한 사역을 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되었다. 이 말씀이 충성된 유대인 신자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임은 분명했다(행 22:12-13). 바울의 사역은 이방인을 향한 것이었다(행 13:46-47/행 18:6/행 22:21 참조).
바울이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형제 사울아”라는 아나니아의 인사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사도행전 22장 16절에 기록된 바울의 세례(침례)경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도행전 8-12장은 물세례(침례)와 성령을 받는 일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던 전환기라는 점을 명심하라. 하나님께서 바울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계시지만,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 10장에 이르면 오늘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즉 말씀을 듣고, 믿고, 성령을 받으며, 세례(침례)를 받는 것을 보게 된다.
3. 바울과 유대인들(9:20-31)
바울이 회심한 데에는 두 가지 뚜렷한 증거가 있다. 그는 기도하고(9:11), 전파했다(9:20).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회심했다는 좋은 증거이다. 바울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전파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또 하나의 좋은 방침이다.
그가 회심한 것은 37세 때인 듯하다. 그는 다메섹에서 전도하며 시간을 보내고, 다음으로는 아라비아로 갔다가(갈 1:15-18), “여러 날이 지나” 다메섹으로 돌아왔다(행 9:23). 이 기간은 아마도 3년은 되었을 것이고 이 기간 동안에 바울은 “교회의 비밀”(mystery)에 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배웠을 것이다. 다메섹으로 돌아오자 유대인들이 그를 공격하였으므로 밤에 창문을 통하여 떠나야만 했다(고전 11:32-33/행 9:23-26). 이 시기는 주후 37년-39년경이며 이 때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을 만나본다(행 9:26-29/행 22:15-21/갈 1:17-20). 사도들은 바울을 두려워하였으며, 이 때 바울을 그 그룹에 소개한 사람이 바나바였다(“위로의 아들”-행 4:36).
바울이 사도들에게 낯선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 사실은 바울이 은혜의 멧세지를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지 사람들로부터 얻은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갈 1:15-18 참조). 하나님은 바울의 사역과 열 두사도의 사역을 분리시키려고 미리 조처를 취해 오셨던 것이다. 오늘날 이들 사역을 서로 혼동하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바울은 베드로와 15일간 함께 머물렀으며(갈 1:18), 바울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방문했는데(갈 1:19), 그는 나중에 베드로를 대신해서 예루살렘의 지도자가 되었다(행 15장).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 사역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떠날 것을 그에게 명령하셨다(행 22:17-21). 예루살렘에서의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계획은 이제 끝나고 있었으며 바울이 그 대신 새로운 계획을 개시하였다.
박해가 심해져 바울은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고향인 다소로 돌아왔다. 갈라디아서 1장 21절은 그 지역에서 말씀을 전파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사도행전 15장 23절은 그 지역에 교회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바울이 그 4, 5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방 교회를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사역의 중심지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이방 도시인 안디옥으로 옮겨졌을 때(행 11:19-30), 바나바가 바울을 찾아가 함께 사역을 하도록 데리고 왔다.
4. 베드로와 성도들(9:32-43)
눈가는 왜 이 시점에서 베드로를 무대에 올려놓는 것인가? 그 대답은 그가 언급하는 성읍인 욥바에 있을 것이다(36, 43절). 이 성읍은 요나 선지자가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욥바로 갔던 일을 상기시킨다(욘 1:1-3). 하나님은 요나를 불러 이방인들에게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그리고 똑같은 일을 하도록 베드로를 부르시는 것이다(10장).
베드로는 제혁업자인 시몬과 함께 욥바에 살았는데, 이는 오랜 유대인들의 실천 사항 중에서 더러는 제외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유대인과 관련된 한에 있어서 제혁이란 “부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것은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음을 발견하려는 찰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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