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사도행전11 - 행 10장(고넬료의 회심)

JORC구원열차 2009. 7. 16. 13:35

10. 사도행전 10장 / 고넬료의 회심

 

본 장은 사도행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여 유대인들에게(행 2장),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에게(행 8:14-) 믿음의 문을 열어 놓았다. 이제는 이방인들에게 문을 열어 놓음으로써(행 15:6-11 참조) 이 변화의 시대 동안에 이루어진 특별한 사역을 완성하려는 것이다. 이 기념할 만한 사건에서 베드로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기 위해 사도행전 11장 1-18절을 읽도록 하자.

 

우리는 사도행전 8장에서 하나님은 일하고자 하실 때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시며, 하나님의 영으로 능력을 입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도록 하심을 살펴보았다. 본 장에 나오는 활동에서도 똑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을 본다.

 

1. 성령께서 준비시키심 (행 10:1-22).

 

1) 고넬료를 준비시킴(1-8절)-

가이사랴는 로마의 도시로서, 팔레스틴 지역의 로마 수도였다. 고넬료는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하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앙심이 깊었고, 정직하였으며, 관대하고 성실하였다. 그러나 구원받은 것은 아니었다. 신앙심이 깊지만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을 수도 있음을 보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고넬료에게 말씀하신 일이 없다면 그는 신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요한복음 7장 17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본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진리를 알리라.”

 

한 천사가 그에게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말해 주었다. 천사들이 고넬료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복음의 사역을 천사들에게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특권을 우리가 가지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천사들이 가질 수 없는 특권이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30마일 떨어져 있었는데, 고넬료는 군인다운 순종으로 두 종과 한 경호인을 불러 이 중대한 사명을 위해 파송했다. 이 모든 일에 성령께서 인도하고 계셨다(19-20절).

 

2) 베드로를 준비시킴(9-22절)-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줄의 양쪽 끝”에서 인도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일에 적합하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베드로는 정하고 부정한(의식상의 용어/ 레 11장 참조) 온갖 피조물들을 보았고, 죽여서 먹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는 그의 말은 마태복음 16장 22절에서 그리스도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말라고 했던 그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리 마옵소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참으로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

 

베드로가 세 번 일어났던 이 환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직접 그에게 말씀하셔서 “일어나 가라”고 지시하셨다. 베드로는 그 환상을 이해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로 간 것이 아니라 “가라”고 성령께서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11:11-16 참조). 후에 그는 환상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했는데,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모든 구분을 폐하셨음을 나타낸다.

 

2.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 (행 10:23-33)

 

이때까지는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마리아 사람들도(행 8장) 구약 율법을 존중하는 “반(半)혈통”의 유대인이었다. 베드로는 “지상 명령을 순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로 간 것은 아니었으며, 성령께서 가라고 특정하게 명령하셨기 때문에 갔다. 사실 그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했을 때 “무슨 의도로 나를 불렀느뇨?” 라고 물었다(10:29). 그가 말씀을 전파할 때 하나님은 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개입하셔야만 했다(10:44/11:15-16).

 

다른 사도들처럼 베드로는 여전히 왕국의 메시지에 매달려 있었으며, 유대인들이 그들의 메시야를 영접하여 주님이 그의 왕국을 세우시기까지는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의 협력자들은 마가복음 16장 15-18절, 누가복음 24장 44-49절,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의 사명 아래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말은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도들이 큰 박해가 있던 동안에도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8:1).

 

그러나, 이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프로그램, 즉 왕국이 아니라 교회를 소개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배우려 하고 있었다. 베드로가 이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하여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억측하지 않기 바란다. 사실상, 바울은 베드로의 모순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를 꾸짖어야 했다(갈 2장). 이 변화의 기간 동안에(행 8-12장) 베드로는 무대에서 사라지며, 그와 더불어 이스라엘에 대한 왕국의 메시지도 사라진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함 (행 10:34-48)

 

준비된 전도자와 준비된 회중은 놀라운 팀(team)을 이룬다(35절/ 히 11:6 참조). 베드로는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이스라엘을 향하신 그리스도의 메시지로 시작하며 세례(침례)요한의 사역부터 말한다.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이 그리스도의 기적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소식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사건들은 이스라엘과 연관된 것이었다. 42절에서 그는 “백성(유대인들을 의미)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셨다”는 말을 하는데, 그 당시까지 그들은 이 일을 수행하였다. 베드로의 말을 간단히 줄인다면,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지만,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을 두지 않으심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43절에서 그는 핵심 진리에 도달한다.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이 지점에서 성령은 베드로에게 개입하셔서 그 이방인들의 마음 속에 기적을 행하셨다. 그들은 말씀을 믿었다. 그들이 믿을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 증거로써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갈 3:2 참조). 베드로와 함께 있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에 깜짝 놀랐다.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들에게 세례(침례)를 받도록 명한다. 11장 3절은 베드로와 그의 친구들이 이 새로운 신자들과 머물며 그들과 더불어 식사하였음을 시사한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과 세례(침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복습하기로 하자. 사도행전 2장에서 유대인들은 성령을 받기 위하여 믿고 세례(침례)를 받아야 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믿고, 세례(침례)를 받았으나, 사도가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 사도행전 10장에서는 참된 “교회의 터전”이 나온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이 말씀 듣고, 믿고, 성령을 받고, 세례(침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장 38절과 사도행전 8장 14-17절을 오늘날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엡 2:13-14 참조).

 

성령의 강림 자체가 사실상 세례(침례)였으며, 베드로도 사도행전 11장 15-16절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과 관련하여 세례(침례)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성령이 믿는 유대인들에게 임했을 때와(행 2장) 믿는 이방인들에게 임했을 때(행 10장)의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서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라는 말이 성취되었다. 이 “한 몸”이란 교회이다(엡 2:11-22). 사실상 11장 15절에서 베드로는 이 세례(침례)가 오순절 때의 세례(침례)와 동일한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오늘날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이 그의 몸에 오셔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도록 세례(침례)를 받게 된다.

 

사도행전 11장과 15장에서 볼 것이지만, 이방인들과의 대화는 유대 신자들에게 큰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이 “종족에 대한 선입관”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비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엡 3장). 이들은 이스라엘이 왕국으로 세워짐을 통해서만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이방인의 구원이 되었다고 하셨다(롬 11:11-25).

 

구약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진 왕국의 메시지는(행 18-26) 바울을 통해서 온전히 계시되는(행 13:38-43)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로 대치되었다.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제쳐졌고, 교회가 휴거하기까지 지상의 하나님의 프로그램에서 다시는 두드러지지 못할 것이다(행 15:13-18 참조). 왕국 진리와 교회의 진리를 뒤섞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동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사명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말씀이다. 우리는 제자를 삼아야 하는데 이는 복음 전파를 뜻한다. 우리가 세례(침례)를 주어야 하는 것은 지교회에서의 교제를 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성령께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깨우치는 데 사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말씀의 씨를 뿌리고, 우리의 기도와 눈물로써 물을 주며(시 126:5-6/행 10:19) 인내로써 구주를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