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사도행전13 - 행 12장(구조된 사울)

JORC구원열차 2009. 7. 16. 13:37

12. 사도행전 12장 / 구조된 바울

 

본 장에서는 베드로의 초대교회 신자들의 지도자로서의 사역이 종식됨을 설명한다. 13장에서부터 계속 무대에 오르는 사람은 바울이며, 베드로는 15장에서 바울을 지지하는 간증을 할 때 등장할 뿐이다. 본 장은 또한 “변화의 시기”에도 종말을 고하는데,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왕국에서 교회로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 사단의 권세 (행 12:1-4)

 

여기 등장하는 사람은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이며, 그의 형과 같이 그도 살인자였다. 헤롯은 에돔 사람으로서, 에서의 후손이다. 어떤 의미에서 에서가 다시 야곱을 박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야고보”(James)란 “야곱”(Jacob)이라는 이름의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박해는 유대인들이 말세에 견뎌야 할 환란을 상징한다. 마태복음 20장 20-23절을 다시 읽고 야고보와 요한이 환란의 세례(침례)를 받게 될 약속을 알아보자. 야고보는 사도들 중에서 최초로 목베임을 당했으며, 요한은 오래 살았으나 큰 박해를 견디었다(계 1:9). 그리스도는 사도들이 박해를 당한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도 박해를 당할 것이다.

 

1장에서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았던 것같이 야고보의 자리를 대신 채우지 않았음에 주목하면 흥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약속된 왕국이 거절을 당하였고, 사도들은 그 왕국에서 “열 두 보좌“에 앉을 수 없을 것이었다(마 19:28). 다시 말하면, 야고보의 자리를 채울 사도를 뽑지 않았다는 것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인수한다는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실천적인 교훈이 있다. 사단이 교회의 일을 방해하려고 할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를 쫓아 다녔다. 나 자신도 사단이 공격하려는 종류의 그리스도인인가? 사단은 최고의 그리스도인들을 쫓아다니며 그들의 일을 방해하려고 한다. 야고보를 죽게 허락하신 반면에 베드로를 구해내셨다는 사실은 깊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하신다.

 

2. 기도의 능력 (행 12:5-19)

 

무교병의 축제일, 곧 유월절은 8일간 계속되는데 헤롯은 그 절기 후에 베드로를 죽여서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려고 했다. 안전을 기하기 위하여 네 사람의 파수꾼들로 이루어진 4개 조로 바꾸어가며 베드로를 지키게 했다. 둘은 베드로 곁에, 그리고 다른 둘은 감옥 문에서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기도하였다”는 이 말이 신자들에게 얼마나 감격적인 말인가! 사단이 가장 나쁜 일을 행할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으며, 주님이 역사하실 것임을 알 수 있다.

 

살날이 일주일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베드로가 어떻게 그처럼 평화로울 수가 있을까? 교회의 기도는 확실히 그에게 도움을 주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요한복음 21장 18-19절에서의 주님의 약속이 그를 지탱케 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베드로는 자신이 늙기까지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야고보같이 칼로 죽임을 당하지 않고(12:2) 십자가에 달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그에게 평화를 주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한다면 환란의 와중에서도 그와 같은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천사가 베드로를 구해냈다. 그러나, 베드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주지 않았음에 유의하자. 천사는 쇠사슬을 풀어 주어 감옥으로 나오게 했으나 신을 신고 옷을 입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밖에 나와 베드로가 안전해지자, 천사는 떠나고 베드로는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우리가 순종하며,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때에 불가능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기도하는 교회의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열심으로(5절), 구체적으로, 용감하게 기도했다. 비록 베드로가 나타났을 때에는 이들이 믿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존중하시고 영광을 받으셨다. 로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 그녀는 믿음으로 응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밖에 로마 군인들이 와서 거기 모인 사람들을 체포하려고 서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17절에서 언급하는 야고보는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으로 여겨진(15장 참조)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로서, 헤롯에게 목베임을 당한 야고보나, 또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혼동하지 말자(행 21:18/갈 1:19/갈 2:9 참조).

 

베드로의 작별은 신비로 남겨져 있다. 그는 “다른 곳으로 갔는데” 그 곳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그가 계속 말씀을 전파했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바울과 그가 전하는 교회의 메시지가 등장하도록 무대에서 퇴장한다.

 

3. 하나님의 진노의 능력 (행 12:20-23)

 

해변 도시 두로와 시돈은 솔로몬 왕 시대로부터 갈릴리와 관계를 맺어 왔다(왕상 5:9-).헤롯은 어느 날 출현할 적그리스도와 같이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백성은 헤롯을 예배하고 직접적으로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그를 존중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계는 어느 날 먹이고 보호하는 일로 인해 적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숭배할 것이다. 하나님은 헤롯을 치셨고, 비참한 죽음을 맞게 하셨다.

 

7절에서 베드로를 친 천사는 구원을 가져왔지만, 헤롯을 쳤을 때는 정죄를 가져왔다.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시며 다른 사람이 자기의 영광을 취하는 것을 허락지 않을 것이다. 다니엘 11장 36절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 3-8절을 읽고 헤롯이 앞으로 출현할 죄의 사람, 적그리스도를 어떤 모형으로 보여 주는지 보자.

 

4.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행 12:24-25)

 

참으로 대조적인 일이다 ! 헤롯대왕은 벌레에게 먹혔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여졌다.” 사단이 살인자로(야고보를 죽인 것처럼) 또는 거짓말쟁이(20-23절)로 공격해 와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를 정복하고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야고보는 죽었으나 하나님의 일은 계속된다.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조력자 마가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일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왔다(11:27-30 참조).

 

마가의 가정은 경건하여 그의 어머니의 집에서 신자들이 모여 기도했었다(12:12). 그는 바나바의 조카(사촌일 가능성이 있다)였으며(골 4:10),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말다툼의 원인이 되었다. 그는 마가복음을 썼으며, 초기에 그는 바울을 실망시켰었으나(13:13) 결국 바울의 인정을 받았다(딤후 4:11).

 

사단에 속한 세계 지도자들의 큰 소리에 절대로 놀라지 말라. 그들의 날이 다가온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기까지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 실천적인 교훈

 

우리는 주님의 판단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를 구원하심을 인해 영광을 받으신 것과 똑같이 야고보의 죽음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셨다. 주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뛰어나며 우리는 엎드려 절할 뿐이지 주님의 지고한 뜻에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된다.

 

사단을 무찌를 수 있는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이다(엡 6:17-18). 사단은 기도하는 교회를 정복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는 베드로의 믿음은 역경의 와중에서도 평화를 주었다.

 

다른 방법이 없을 때,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는 기적적인 구원이 생긴다. 그러나 매번 기적적인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체포되었을 때(16장) 그는 고난을 견뎌야 했으며, 마침내는 법의 마땅한 절차를 통해서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