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사도행전21 - 행 20장(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

JORC구원열차 2009. 7. 16. 13:51

20. 사도행전 20장 /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

 

1. 바울과 지교회 (행 20:1-12)

 

19장의 폭동이 있은 직후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19:21) 마게도냐로 향했다. 그는 드로가에서(지도 참조) 디도와 만나 고린도교회의 상황에 대한 보고를 직접 듣고자 했다. 그는 디도를 그곳에 파견하여 몇 가지 문제점들을 교정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했었다(고후 7:13-15/고후 12:17-18).

 

디도를 만나지 못하자, 바울은 교회들을 심방하며 마게도냐로 진행해 갔으며 거기서 동역자를 만났다(고후 2:12-13). 고린도로부터의 보고는 바울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헬라(그리이스)에서 3개월을 보내고는 대부분 고린도에서 보냈을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전에 고린도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던 유대인들의 반대가 다시 나타나자(행 18:12) 바울은 수리아로 향하는 대신 마게도냐로 떠났다. 이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과 동행했는데 이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는 구제 헌금에 기여한 교회들의 대표단이었다. 누가는 빌립보에서 이들과 합세했으며(6절의 “우리”라는 말에 유의하라), 7일간 드로아에 머물렀다.

 

여기서 우리는 지교회를 정착시키는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신자들은 그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에 함께 모이는 관습이 있었으며 바울은 이들을 만나보고자 7일을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님과 주님의 날을 우선으로 여겼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좋은 본보기이다.

 

여기서 누가는 신자들의 저녁 집회를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하루종일 설교한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사도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습은 참으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잠들어 난간에서 떨어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다. 횃불을 많이 켜 두어 방안공기를 따뜻하게 했을 것이므로 잠들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의사인 누가는 그 사람이 죽었다고 보고하였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바울은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알렸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켰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신자들과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었다(설교한 것이 아님-11절). 아마도 집회가 끝난 다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출항하였다. 이 기적에 무슨 영적인 의미가 있는가? 한 가지는 베드로가 도르가를 살린 것과 비슷하다는 점이다(행 9:36-43).

 

우리는 앞서 바울과 베드로가 비슷한 기적들을 일으킴으로 바울의 사도권이 베드로의 사도권과 같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임을 보여 준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도르가는 그녀의 선행으로 말미암아 추천을 받은 여인이며, 그녀의 부활로 인하여 다른 이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반면에 유두(“행운”이라는 뜻)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지는 못했었으나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을 회복하였다. 그는 떨어져(모든 사람은 죄에 빠졌다) 죽었으며(모든 사람들이 죄 가운데 죽었다), 오직 은혜로만 생명을 받았다.

 

2. 바울과 지교회의 목회자들 (행 20:13-38)

 

바울은 앗소로부터 20마일(32km) 떨어진 드로아까지 혼자서 가기로 결심하였다. 아마도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일로 주님의 뜻을 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를 사랑했지만(4절) 하나님과만 함께 있어 그의 뜻을 구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운동을 하는 것은 몸에도 좋았다.

 

밀레도에서 그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사람을 보냈다. 신약에서는 목회자가 한 명이 아닌 복수로 나와 있음을 기억하자. 특히 에베소 교회와 같이 교인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들은 장로들과 감독들(28절)이라고 불리워졌다. 에베소 목회자들에게 한 이 연설은 지교회에서의 바울이 어떤 류의 목회자였는지를 나타낸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특별한 연설이 세 번 나오는 것에 주목하자.

- 유대인들에게 /13장 16-41절

- 이방인들에게 /17장 22-34절

- 교회에게 / 20장 17절 이하(고전 10:31)

 

1) 바울의 과거 사역(18-21절)-

바울은 비밀리에 무슨 일을 한 적은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그가 전하는 메시지와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을 섬긴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겼다. 그는 겸손한 지도자였으며, 교만한 명령자가 아니었다(벧전 5장에서 베드로의 칭찬 참조). 그는 말씀의 씨에 눈물로 물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19, 31, 37절). 바울은 전 성경 전체를 공적으로, 그리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다니며 전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높였다.

 

이것은 신약 시대의 목회자를 위한 하나의 귀감이다. 얼마만큼의 교회들이 그들의 목회자가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공식적으로 축호 방문을 하며 사역하는 데 시간을 쓰게 하고 있는가?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무슨 위원회다 협의회 모임이다 교파의 총회다 하여, 좋기는 하지만 최선이 되지 못하는 일들로 목회자들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

 

2) 바울의 현재의 부담감(22-24절)-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려는 생각으로 사로잡혀 있었다(성령에 사로잡힌 것이 아님). 이 문제에 있어서 바울은 과연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에 따르고 있는 것인지 심각한 의심을 일으키게 한다. 23절은 바울이 이 도시 저 도시로 다닐 때에, 성령께서 그가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게 될 것에 대해 말씀하셨음을 시사하는데, 이는 지교회의 선지자들을 통해서인 듯하다. 21장 10-14절에서, 그는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는 간곡한 경고를 받으며, 21장 4절에서도 이러한 만류가 나온다.

 

수 년 전 바울이 회심한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전도하지 말 것을 그에게 말씀하셨다(22:18-). 그러나, 자기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은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도록 그를 강권하였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에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부담감을 기각시키고, 죄수로서 로마로 데리고 가셨다(23:11 참조).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24절).

 

3) 미래의 위험에 대한 바울의 경고(25-35절)-

바울이 자신에 대하여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울은 교회와, 교회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목회자들에게 먼저 자신들이 경성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만일 그들이 개인적인 영적 행실에서 실패한다면 교회 전체가 고난을 받을 것이다. 후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와 같은 경고를 반복하였다(딤전 4:16).

 

다음으로 그는 경성하여 교회를 돌보라고 경고한다. 감독자로서 이들에게는 양무리를 인도하고, 먹이고, 영적인 공격들로부터 보호할 책임이 있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는 얼마나 귀중한가! 자신의 피로써 교회를 사셨다. 바울은 밖에서 공격하는 늑대들(29절)과 안에서 일어나는 거짓 선생들(30절)로부터의 두 가지 위험을 경고한다. 교회사에서 이 두 가지 일들이 모두 발생했었다.

 

바울은 자산을 목회자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로 삼는다. 그는 하나님께 그들을 추천하며(기도), 말씀을 추천한다(전도와 가르침). 왜냐하면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만이 지교회를 육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행 6:4).

 

바울은 그들에게 비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바울은 자신의 손으로 일하였으나, 이것이 목회자가 따라야 할 본일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고전 9장 참조). 그러나, 그가 표현한 비이기적인 마음가짐은 하나님의 모든 종들이 모방해도 좋을 것이다.

 

바울은 복음서에도 전혀 기록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한 가지 복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즉,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종들은 섬김을 받을 것이 아니라 섬겨야 한다.

 

4) 바울의 마지막 축복(36-38절)-

이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이 위대한 사도가 그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동안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바울을 더이상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울었다. 하나님의 종들 사이에, 그리고 이 종들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결속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축복을 보내실 수가 있다.

 

바울은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전할 헌금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외 마음에는 자기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전도하려는 불타는 욕망이 있었다. 전도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엡 3:1)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