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사도행전 22장 / 바울의 변호
1. 바울의 변호 (행 22:1-21)
이것은 바울의 회심에 대하여 사도행전에 나오는 세 번의 설명 중 두번째 설명이다(9, 26절). 그들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는 사실이 유대인들을 진정시키고 흥미를 가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 바울의 초기의 경력(1-5절)-
바울은 귀중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이었다. 28장에서 그는 자신이 “자유로운 몸으로 태어났다”고 설명한다. 그의 초기 교육은 위대한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의 가장 훌륭한 훈련을 받았다(5:34- 참조).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의 또 다른 모습은 빌립보서 3장에서도 나타난다. 젊은 바리새인으로서의 바울이 모세의 율법에 열성스러웠던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의 열의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데까지 이르렀었다.
참된 기독교는 결코 박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오히려 언제나 박해를 받았다.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은 그리스도 없는 종교이다. 5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묶어오려고” 했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두 쇠사슬에 묶여 그곳 예루살렘에 서 있기 때문이다.
2) 바울의 놀라운 회심(6-16절)-
하늘의 빛이 가장 밝을 때에(정오) 바울의 마음 속에 있는 사단의 어두움은 가장 깊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이 찾아낼 수 있는 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여 죽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위대한 빛으로 바울을 “체포하셨다”. 죄인들은 하나님이 그 위에 빛을 비춰 주시기까지 어두움 가운데 있다(고후 4장). 바울은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의 음성을 들었으며, 그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 바울이 아나니아를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에 유의하라. 물론 이것은 사실이다.
그 기간 동안에는 왕국에 대한 메시지에서 교회에 대한 메시지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였다. 그 곳 유대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아나니아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이러한 사실이 바울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울의 세례(침례)는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빛에 비추어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전환의 시기 동안에(8-12장) 회심하여 세례(침례)를 받았는데, 이때는 세례(침례)와 안수가 성령을 받는 데에 있어 중요했던 시기였다. 오늘날 모든 신자들을 위한 본보기로서, 바울의 경우를 사용하는 것은 구원과 세례(침례)에 대해 하나님이 제시하신 형식을 모르는 소치이다.
3) 바울의 특별한 사명(17-21절)-
바울은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에 와서(행 9:26), 성전에서 기도하며 몽환 가운데 빠졌었다. 이것과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나님이 베드로를 이방인에게 갈 준비를 시킬 때 베드로가 겪은 몽환과 비교하는 것은 흥미진진하다. 베드로는 육신적으로 배고픈 상태에 있었으며 그의 백성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는 마음으로 “주려” 있었다. 요한복음 4장에서의 그리스도와 같이 이것은 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사도의 변론과 논쟁은 거룩하신 명령을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바울의 간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며 아마도 체포하여 돌로 쳤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의 사역은 너무 빨리 끝나게 된다. 또한 바울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연관된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의 왕국 프로그램이나 또는 베드로의 사역에 밀착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21절에서 이방인이란 증오스러운 단어가 언급되기까지는 바울의 설명을 열중하여 들었다.
2. 민족의 책임 (행 22:22-30)
그리스도의 예고는 사실이 되었다. 이 민족은 바울의 간증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반대로 폭동이 일어났다. 수비대장은 매질하여 그를 조사할 수있는 가까운 성으로 바울을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무서운 경험이었다. 많은 죄인들이 이런 식의 고문으로 인하여 죽었다.
다시 한 번 바울은 자신과 그의 사역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사용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로마 시민을 취급하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 아니었으므로(16:35-40 참조), 바울은 법적인 특권의 유리한 면을 이용하였다. 수비대장은 로마 시민권을 돈으로 사고는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 것 같다. 반면에, 바울은 그가 “자유의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알렸다. 이 말은 그의 아버지가 인정받는 로마 시민이었음을 뜻했다.
수비대장은 결박을 풀고 다음 날 유대인 공회를 소집할 때까지 바울을 지키도록 했는데, 23장에서는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을 다룬다. 이 시점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을 재고찰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이 민족은 이미 세 번의 살인을 범했다(세례 요한, 그리스도, 스데반). 로마수비대의 개입을 통하여 바울을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네번째 살인을 범했을 것이다.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바울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였으며(22:20), 어떤 의미에서 이 민족의 죄악에 대해 돌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제 제쳐졌고, 그들의 유예 기간이 끝났으므로 그리스도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는 것을 금하셨다(22:18).
사도행전의 남은 부분은 죄수로서의 바울, 유대인들 앞에서의 그의 시련, 그리고 그가 가이사에게 호소하는 것을 설명한다. 만일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 장들을 어떻게 읽을 수 있었겠는지 모를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의 실수를 그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로마에서 죄수로 있는 동안 바울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를 썼는데, 이들은 오늘날 없어서는 안 될 교회의 진리들로 가득 찬 서신들이다.
▣ 실천적인 교훈들
위대한 사도 바울조차 하나님의 뜻에서 우회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더 그렇겠는가! 우리의 마음과 동기가 옳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잘못 디딘 발걸음은 또 다른 잘못으로 인도해 간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왔으며 유대인들과 거래를 하게 되고, 체포되어 굴욕을 당하였다.
하나님의 구원의 문은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에게는 닫혀졌다. 이제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하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며, “새 사람”(교회,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님의 마음에 가득 찰 것이었다.
우리는 외부 사람들을 향하여 지혜롭게 행해야만 한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말할 때 은혜스럽게 하였다. 그의 마음은 그들을 향한 사랑과 동정심으로 넘치고 있었다. 그들에게 걸림이 되었던 것은 그의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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