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도행전 24장 / 벨릭스의 앞에 선 바울
1. 거짓고소 (행 24:1-9)
바울은 이제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벨릭스는 드루실라의 남편이었으며(24절), 그녀는 세번째 부인으로서 헤롯 아그립바 10세의 막내딸인데, 아직 20세도 채 되지 못한 젊은 나이였다.
고소자가 출석하여 구두로 재판관에게 사실 이상으로 설명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었다. 더둘로는 이러한 구두 변호사였으며, 벨릭스에게 한 그의 말은 공허하고 거짓된 것이었다.
1절에 나오는 “닷새”란 말은 바울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기까지의 기간(8-12일째)을 뜻한다.
- 예루살렘에 도착함(1일째)-21장 17절
- 야고보를 방문함(2일째)-21장 18절
- 성전을 방문함(3일째)-21장 26절
- 성전에서 서원한 사람들과 함께 함(4-6일째)
- 성전에서 체포됨(7일째)-21장 27절
- 공회 앞에 섬(8일째)-22장 30절-23장 10절
- 유대인들의 음모, 바울이 가이사랴로 여행함(9일째)-23장 12-31절
- 벨릭스 앞에 섬(10일째)- 23장 32-35절
- 가이사랴에서 대기함(11-12일째)
- 본문의 재판(13일째)
유대인들의 바울에 대한 고소는 세 가지로서, 인격에 대한 고발(“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정치적인 고발(“소요케 하는 자요”), 종교적인 고발(“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로 대별된다. 그리스도의 재판과, 그 때 그들의 고발을 비교해 보라(눅 23:22). 물론 이들은 어느 하나라도 증명할 수 없었다.
이들은 바울을 “염병”이라고 보았는데,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를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도로 보았다. 오늘날 불신자들은 그들의 “염병 같은 그리스도인 친구들”이 최고의 친구들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나오는 부자는 “염병 같은 나사로”를 그의 형제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전도하도록 해달라고 지옥에서 하나님께 애걸한다.
정치적인 고발 역시 거짓된 것이었다. 바울은 전혀 인간들의 정치를 변화시키려고 추구한 일이 없으며 다만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전파하였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신으로 예배할 것을 요구한 가이사의 요구에 대립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빌라도에게 외쳤었다(요 19:8-15).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하나의 이단으로 간주하였으며, 유대의 참된 신앙과는 다른 사람들의 그룹으로 보았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이들은 여전히 성전 예배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직은 새로운 종교로서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한 이단 종파로 보았던 것이다. “나사렛”이란 단어는 경멸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나다나엘은 요한복음 1장 46절에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더둘로는 용감한 군인 루시아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하였다. 그가 6절에서 성전의 소요 사건을 “부드럽게” 미화시키고 있으면서 7절에서는 루시아가 행한 일을 과장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왜곡시키거나 거짓을 진흥시키는 데에 아무 거리낌이 없다. 하나님은 바울을 구하는 데 루시아를 사용하셨으며, 유대인들은 이 일로 말미암아 그를 미워하였다. 인간들은 율법에 순종하는 체하지만 이 마귀의 자녀들은(요 8:44) 살인자들이며 거짓말쟁이들이다.
2. 신실한 대답 (행 24:10-21)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과 복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설정하신 법을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바울은 아첨하는 말에 의존하지 않았음을 주목하라(살전 2:1-6 참조). 그는 총독이 말하기를 허락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정직하게 자신의 경력을 말했다.
이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벨릭스가 총독이 된 지 6, 7년이 되었는데, 이를 “여러 해”(10절)라고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의 고발에 대하여 사실로써 응답한다. 열이틀 전에(앞의 진행 과정 참조) 그는 예배하러 왔던 것이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어떻게 반란을 꾸밀 수 있었겠는가? 이들은 그가 문제를 야기했거나 성전에서 언성을 높였다는 것조차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음으로, 바울은 법정을 강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그의 신앙을 간증하였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하지만 사실상, 이 “이단”이 구약 유대 신앙의 완성임을 바울은 계속 언급하였다. 바울은 율법과 선지자들, 다시 말해서 바리새인들처럼 구약 전체를 믿었다. 그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다. 그는 매일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노력하였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적대시하였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이 시험의 때를 당하고 있을 때 그들을 도우려고 자기 민족에게 사랑의 선물을 가지고 올 수 있었을까! 17절에 나오는 “여러 해“는 3-4년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다섯 번의 다른 경우들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행 9:26 -주후 39년 /11:27-30 -주후 45년 / 15:1- -주후 50년 / 18:22 -주후 53년/ 21:17 -주후 58년). 그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은 5년 전의 일이었다. 고발자들은 그가 어떤 소요를 일으켰다는 증거를 내세울 수가 없었으며, 사실상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던 사람은 그들이었다(21:27-).
3. 어리석은 태도 (행 24:22-27)
벨릭스는 “이 도”(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결정을 내리기를 거절하였다. 먼저 수비대장이 출정해야 한다는 핑계를 내세워 결정을 연기하였다. 총독은 자유를 주고 친구들을 면회하게 하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벨릭스는 또 다른 재판을 열었으며, 이번에는 그의 십대(teen-age)의 아내인 드루실라도 함께 출두하였다. 그녀는 젊었지만 벌써 죄 가운데 살고 있었으며, 그녀의 친정 식구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녀는 아마도 바울이 그녀에게 말씀을 전하기 전까지는 총독의 아내로서 허영과 과시욕을 즐겼을 것이다. 바울은 그들 앞에 서서 자신을 위하여가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말했다.
바울은 왜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세 가지 면으로 논의를 이끌어 갔다.
- 의로움-이들은 지난 날의 죄에 대하여 어떤 조처를 취해야만 했다.
- 자중(절제)-이들은 오늘의 유혹에 직면해야만 한다.
- 다가올 심판-내일의 심판을 준비해야만 한다.
이 메시지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벨릭스는 두려워 떨었다. 그러나, 벨릭스 총독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태도를 취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결정을 연기하고 바울에게서 돈을 좀 얻을 수 있을까하여 그를 “정치적인 앞잡이”로 이용하였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줄 구제물을 가지고 왔다고 시인했으며(17절), 벨릭스는 이 사도가 석방되기 위해 뇌물을 쓰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벨릭스는 그를 2년간 더 가두어 두었고, 그리고는 총독직을 떠났다.
우리는 바울이 거짓 고발에 대처한 것에 대해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참으로 본이 되는 행동이었다. 그는 정직하게 사실에 직면하여 진리가 제시될 것을 기대하였다. 그의 관심은 자기 목숨의 안전에 있지 않았고 인간들의 영혼에 대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바울이 이방인들과 왕 앞에 증거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9:15). 이번의 경우는 그러한 약속의 한 가지 성취였다.
오늘날 많은 죄인들은 더둘로와 같다. 아첨을 하며 진리에 직면하기를 거절한다. 또 어떤 이들은 벨릭스와 같아서 진리를 듣고 이해하며 죄인임을 깨닫기도 하지만, 순종하기를 거절한다. 또 다른 이들은 드루실라와 같다. 말씀을 듣고 그녀의 남편이 깊게 감동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녀 자신은 아무것도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의심할 나위없이 그녀의 젊은 나이의 죄가 벌써 마음을 굳게 했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그녀가 21년 후 베스비우스화산의 폭발 때에 죽었다고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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