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고린도전서 8장 / 고기와 그리스도인의 자유
다음에 나오는 장들은(8-10장)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에 대한 교회의 의문을 다룬다. 그들에게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으며, 특히 교회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로 구성된 이래 더욱 그러했다.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의 우상 숭배에 접촉되지 않으려고 매우 신경을 썼을 것이다. 상황은 다음과 같다. 고린도에서 도살되는 모든 고기는 신전에서 잡았는데, 그 중의 일부는 사제가 취하며, 그 나머지는 개인적인 축연에 사용되거나 시장에 갖다 팔았다. 사실 제사드린 고기는 값싸게 팔렸으며,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끌 만한 것이었다.
만일 친구나 이웃이 그리스도인을 축제에 초청하면 그 고기가 우상에게 헌납되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참여를 해야 할 것인가? 그 고기에 어떤 마력(Demonic power)이 작용하여 신자를 해치지는 않을까? 이러한 고기를 먹음으로써 나쁜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문제에 부딪히지는 않지만 근본적인 상황은 우리에게도 여전하다. 그리스도인이 율법에서 자유로와졌다고 해서 자기가 좋을대로 살아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명백하게 그릇된 것임을 알고 있는 실제적인 일들이나 장소들이 많이 있지만,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조차 의견이 일치되지 못하는 “경계선상의 문제들”도 있다. 이 세 장에서 바울은 이러한 의문스러운 일들에 부딪힐 때 우리의 생활을 통제할 근본적인 원리들을 요약한다.
여기 8장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본보기로 들어 우리가 사랑으로 조절을 받아 다른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다(마 17:24-27). 9장에서는 바울 자신을 본보기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들을 반드시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하여 합법적인 권리들조차 제쳐 두었다. 끝으로, 10장에서 바울은 뻔뻔스러운 죄들, 특히 우상 숭배와 부도덕에 관련된 죄들을 경고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본보기로 삼아 예를 들고 있다.
여기 8장에서 바울은 의문스러운 문제의 영역에서 옳고 그른 것을 알아볼 때에 우리가 따라야 할 네 가지의 지침을 제공한다.
1. 자신의 태도를 살펴보라 (고전 8:1-3)
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을 다룸에 있어 “교만해지는” 경향이 너무도 많다.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어떤 신자들은 믿음이 강하고 성숙하나, 어떤 이들은 연약하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율법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강한 그리스도인은 지식에 대한 그의 교만이 그의 생애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바울은 말한다. 사실상,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음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무지한 형제”가 되라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태도는 그리스도를 닮은 것이 아님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은 사랑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우리의 형제들을 위한 사랑이다. 우리는 서로 판단하거나 서로 거부해서는 안 된다(롬 14:4-12).
2. 형제의 지식을 고려하라 (고전 8:4-8)
그리스도인의 삶은, 말씀을 모르고서는 그 충만함 가운데서 살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자유의 복됨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러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언제나 고려에 넣어야 한다. 그들은 “영적인 미신” 가운데서 살며 자신의 생활을 규율과 의식으로 조정하려고 한다(골 2:16-23 참조).
바울은 우상이란 실재가 아니라고 언급하며, 고기가 우상에게 드려졌다고 해서 인간의 몸이나 정신을 해칠 수는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8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구주도 한 분이시다. 우리는 한 분 주님만을 예배하며 순종한다. 그러나, 연약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지식이 없고, 무엇이든 그 자체로서 죄악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지 못한다(롬 14:14). 그리고 고기나 음료, 곧 식물이 결코 인간을 보다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무지한 제자들을 얼마나 참으셔야 했던가! 그리고 우리는 서로들 얼마나 인내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읽으며 그에 순종함을 통하여 은혜와 지식 가운데서 성장해 갈 때에 진리를 이해하게 되며, 바로 그 진리가 그를 지유롭게 한다(요 8:32).
3. 형제의 양심을 고려하라 (고전 8:9-11)
양심이란 우리가 잘못된 일을 할 때에 우리를 정죄하는 마음의 재판관이다. 양심은 우리에게 “증언한다”(롬 2:15/롬 9:1).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깨끗해져서(히 9:14/히 10:22) “선한 양심”이란 용어로 불리운다(딤전 1:5/딤전 1:19).
심판을 받지 않고 고백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죄는 양심을 더럽히며(딤전 1:15), 화인 맞은 양심이 되게 하여(딤전 4:2) 더 이상 죄를 깨닫지도 못하게 한다. 우리는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이제, 새로운 그리스도인 또는 가르침을 받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연약한 양심을 가지게 된다(고전 8:7/고전 8:10/고전 8:12). 만일 그가 다른 그리스도인이 이방 제단에 드려졌던 고기를 먹는 것을 보면 그것이 걸림이 되어 아마도 죄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감각을 행사함에 있어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정반대로 행동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할 것이다(히 5:11-14 참조).
강한 양심을 가진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주위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지만 연약한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혼돈을 일으켜서, 만일 형제의 본을 따르려고 한다면 심각한 영적인 문제에 빠지게 된다.
바울이 이와 같은 원리들을 10장 25-33절에서도 다루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구절들을 통하여 다음을 내다볼 수 있다. “영적인 탐정이 되어 주위를 맴돌지 말라”고 그는 언급한다. 만일 향연에 초대를 받았으면, 그리고 가려는 마음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가라, 그리고 많은 질문을 하지 말라, 그러나, 주인이 고기가 우상에게 드려졌던 것이라고 말하면 먹지 말라! 왜냐하면 약하여 거리낌이 되고 죄를 지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간증이 될 수 있기 위해서이다.
다음으로, 바울은 하나의 논란을 예상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양심으로 인해 왜 자유를 제한당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음식에 축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먹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능한 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리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모든 일은 비록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 해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가 우리를 제한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축복을 줄 수 있으며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10:33).
4. 그리스도를 생각하라(8:12-13)
우리 주님은 육신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 다른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셨다.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 나오는 사건이 곧 그 실례이다.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하자.” 이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놀라운 원리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매일의 삶에 가미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나의 더 연약한 형제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따라서 나는 감히 그를 죄로 인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거리낌이 되도록 범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죄를 짓는 것과 같다. “나는 나의 형제를 넘어지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고기를 먹지 않고 지내겠다”고 바울은 말한다.
우리는 현대 생활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들에 적용해야 할 일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상의 오락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은 극장에 가면서도 영적으로 괴로움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연약한 그리스도인을 곁길로 가게 했다면 그는 죄를 범한 것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통속 소설을 읽으며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지만, 그의 선택이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는 죄를 범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유를 갖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할 자유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이기적으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곁길로 인도하여 성도가 타락한다면, 또는 죄인이 그리스도를 거절한다면 그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도 구하라”고 말한다(10:24). 그리고, 이것은 따를 만한 훌륭한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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