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고린도 전서14 - 고전 13장(신자가 갖는 미덕의 삼위일체)

JORC구원열차 2009. 7. 20. 16:27

14. 고린도전서 13장 / 신자가 갖는 미덕의 삼위일체

 

세상이 본 장과도 같은 부분을 하나 취하여 기독교적인 참된 의미에서 분리시켜 사용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만약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이러한 사랑에 대해 경험한다면, 대리석 조각상이 할 수 있을 정도만큼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사람이 일상생활을 통하여 이와 같은 종류의 성품을 행하려면 우리의 생활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필요하며, 그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

 

바울이 여전히 성령의 은사들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는 여기서 미덕이 없는 은사들은 아무것도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성령의 열매들은 기적적인 성령의 은사들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교회가 그리스도인의 거룩함과 성품보다는 기적적인 경험들을 얻으려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분열과 혼란과 육신적인 점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1. 사랑은 필수적인 것이다 (고전 13:1-3)

 

“자비”란 행동으로 나타난 사랑을 뜻한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마음이 도달하는 것이다. 오늘날, “자비”(박애, Cha-rity)라고 하면 대체로 헌옷을 나눠 주거나 구호기관에 물품을 전달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들은 행동으로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될 수 있지만, 바울은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울이 12장 8-10절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들 중의 몇을 들어,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그것들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에 유의하자. 사랑에서 멀어진 방언은 시끄러운 소리가 될 뿐이며, 울리는 꽹과리와 같은 것이다. 사랑이 없는 예언은 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또한 지식과 믿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이 이러한 은사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그리고 이러한 은사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사랑이 없다면 개인에게나 또는 교회에 아무런 유익을 끼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데까지 이르더라도 사랑에서 떨어져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고린도 사람들은 사랑에서가 아니라 경쟁심으로 그들의 은사와 직분들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교회는 분열되고 교회를 세워야 할 바로 그 은사들이 유익보다는 해를 끼침으로 인하여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사랑이 없는 설교는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하다. 사랑이 없는 기도는 공허한 연설에 불과하며, 사랑이 없는 헌금은 의례히 행하는 의식일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신 것이 이상한 일이겠는가!

 

2. 사랑은 효력이 있다(13:4-7)

 

만일 사랑이 없다면 은사들은 교회 생활에서 영적인 효력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이 교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것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라고 말한다. 사랑의 자질을 살펴보자.

 

1) 사랑은 인내하며, 온유하다-

사랑은 하찮은 것들을 초월하며 다른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한다. 사람들이 사랑스러울 때는 “사랑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런 저런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상처를 줄 때 사랑하기란 어렵다.

 

한 실례로서,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고 범죄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인내하신 것을 생각해 보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집히는 바가 있을 것이다. 사랑은 잘못된 일들을 인내로 견디는 것만이 아니라, 친절한 행동을 하는 데에도 적극적인 자세가 되게 한다.

 

2) 사랑은 질투로 끊어 오르지 않는다-

시기심은 지독한 죄이다. 가인은 자기 형제를 시기하여 죽이기까지 하였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갖지 못한 축복이나 혜택을 누릴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시기심의 불꽃이 피어나도록 방치해 두고는 결국은 끓어오르게 할 것인가?

 

3) 사랑은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다-

“우쭐하다”는 것은 자부심에 대한 내적인 감정이며, “뽐내다”는 말은 자부심을 외적인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을 가리킨다.

 

4) 사랑은 무례하거나 이기적이지 않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랑과 기쁨으로 행하는 사람에 대한 미덕이 여기에 있다. 참된 사랑은 다른 사람이 오직 유익하기만을 구하며, 이타적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하여 연출된 이러한 사랑을 볼 수 있는가?

 

5) 사랑은 성내거나 악한 생각을 품지 않는다-

“쉽게”라는 단어는 여기 속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육신이 하는 대로 노여움을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사람들이 저지른 악행이나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기록해 둔 장부를 보관하지 않는다. 실상, 사랑은 다른 이들이 악에 관여되어 있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항상 다른 이들이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을 기뻐한다.

 

6) 사랑은 승리를 안겨 준다-

우리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하여 어떠한 형편에서도 견딜 수 있고 믿음을 가지며, 계속해서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윌리암판 성경에서는 7절이 “사랑은 어떤 일이든지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준다”로 번역되어 있다. 사랑은 언제나 승리로 인도한다!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의 죄행을 점잖게 꾸짖고 있다. 그들은 교회 내에서 서로에 대해 참지 못하고 있었으며(14:29-32) 다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성령의 은사들을 시기하였고(14:1), 교만하고 비판적이었다(12:21-26). 그들의 행동에는 겸손이나 덕스러움이 없었으며(12:2-16),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입을지언정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있었다(8-10장). 이들은 쉽게 성내고 서로를 고발하기조차 하였으나(6:1-8), 죄를 마땅히 심판해야 할 때는 죄를 즐기고 있었다(5:1-13).

 

이 구절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표명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본 장에서는 “사랑”이란 말 대신 “그리스도”란 단어로 대치해도 된다.

 

3. 사랑은 영원하다 (고전 13:8-13)

 

고린도 사람들은 젖먹이와 같은 영적인 아이들이어서, 임시적인 일들을 위해서는 분투하면서도 영원한 것들은 소홀히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영속되는 그리스도인의 성품 대신 지나가고 말 영적인 은사들을 원하였다. 사랑은 결코 세력이나 권위를 획득하려 하지 않는다.

 

다른 은사들은 지나가 버릴 것이다. 예언적인 발언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대신하며, 방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지식의 은사는 말씀으로부터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사역으로 인해 제쳐 질 것이었다. 그러나 사랑과, 사랑이 산출하는 미덕들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바울은 이 은사들이 교회의 “유아기”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성령의 특별한 표시들이 사도들의 신용장이었다(롬 15:18-13). 하나님은 그의 진리를 입증하는 데에 언제나 기적을 사용하지는 않으셨으나 종종 사용하시는데, 예를 들면, 데살로니가에서 성령은 말씀을 능력있게 전파하는 데에 자신을 나타내셨다(살전 1:5-6).

 

11절에서 바울은 어린 시절의 일에서 간단한 예를 들고 있다. 우리는 어린이가 어린이다운 말을 했다고 그를 나무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른이 아기의 말을 사용한다면 비난한다. 사도는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은 너희 갓난아이들이 성장하여 성인과 같이 말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방언과 다른 특별한 표시는 영적인 어린 아이의 일에 속한다. 성장하라!”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임시적인 성령의 은사들을 영적으로 심원한 상태에 대한 표시인 것처럼 가르친다! 그러나 14장 20절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방언에 대하여 논의하며, 성장하여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을 그만두라고 다시 말하고 있다.

 

교회에는 언제나 성장의 여지가 남아 있다.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불완전하게 알고 있으며 불완전하게 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고린도는 금속거울로 유명한 곳이었으므로 바울은 거울을 예로 사용하는데, 구리거울로는 거기에 비친 실제 인물의 희미한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며, 이는 마치 우리가 오늘날 희미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그가 우리를 알고 계시듯 우리도 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와 같이 될 것이다.

 

교회는 사랑을 통하여 완전에 더욱 가까와지도록 성장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사랑 가운데서 진리를 고수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한다. 에베소서 4장 16절은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모두가 분담해야 하는 사역이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