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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고린도 후서1 - 개요 및 서론 / 고후 1장(참 목자로서의 변(辨))

by JORC구원열차 2009. 7. 22.

고린도후서 개요

 

1. 자기의 사역에 대한 바울의 해명 / 고후 1-5장

 

고난-그러나, 좌절하지 않음 /1장

슬픔-실망하지 않음 /2장

신령함-육신적이지 않음 /3장

진실함-속임수가 아님 /4장

신중함-부주의하지 않음 /5장

 

2.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권면 / 고후 6-9장

 

자기의 생애를 검토함 /6장 1-13절

죄에서의 분리 /6장 14절-7장 1절

주님 안에서 화목함/7장 2-16절

헌금에 협력함 /8-9장

 

3. 자기의 사도권에 대한 바울의 변호 / 고후 10-13장

 

소수가 고발한 문제에 대한 대답

 

① 그의 방법 /10장

“바울은 강한 체하지만 사실은 약하다!”

 

② 그의 동기 /11장

“바울은 자신이 저버릴 수도 있는 것을 전파하고 있다”

 

③ 그의 공로 /12장

“바울은 사실상 승인받은 사도가 아니다!”

 

④ 그의 사명 /13장

“바울은 결코 우리를 보러 오지 않을 것이다!”

 

-바울이 당한 고난에 대한 참고 구절: 1:3-11/4:8-11/6:4/6:8-10/7:5/11:23-28/12:7-10.

 

 

고린도후서 서론

 

이 교회의 배경을 알기 위하여는 고린도전서에 대한 설명을 복습하라.

 

바울은 3년 동안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중에 고린도전서를 썼으며, 거기서 디모데를 통하여 교회로 보냈다(고전 4:17). 그러나, 교회의 형편이 더 나빠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고린도 신자들이 바울의 말에 불순종한 것은 젊은 디모데에게 권위가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어쨌든 다음으로 바울은, 그들에게 준 사도의 명령을 순종하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디도를 고린도에 보냈다(고후 7:13-15).

 

그러는 동안, 사도행전 19장 23-41절에 나오는 소요로 인해 바울은 그 도시를 억지로 떠나야 했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었지만(고전 16:3-7) 환경이 그러하여 늦어지고 있었다. 그는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고자 하였으나(고후 2:12-13) 이 계획은 실패했다. 고린도후서 1, 2장을 읽으면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바울의 부담감과 심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

 

바울은 드로아에 있는 동안 몇 번의 설교를 하고 그 후에 마게도냐로 갔다. 그와 디도는 마침내 만났는데, 아마도 빌립보에서 만난 것 같다(고후 7:5-6). 디도는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의 대다수가 그를 따랐으며 그의 말에 순종하였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고, 이러한 기쁨이 바울로 하여금 고린도후서를 쓰도록 조장하였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면서 다음의 몇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범죄한 사람을 징계한 일로 그 교회를 칭찬하고(고전 5장), 다시 그를 용서하며 받아들이도록 격려하기 위함(고후 2:6-11).

 

계획이 바뀌어져서 그가 약속했던 대로 그들을 방문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함(고전 16:3-7/고후 1:15-22).

 

교회 내에서 그의 사도권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답변하기 위함(고후 10-12장).

그를 나쁜 동기고 고소하는 사람들에게 답변하기 위함(고후 4:1-2).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헌금에 참여하도록 그 교회를 격려하기 위함(고후8-9장).

자신의 방문 계획을 알리고 그들을 준비시키기 위함(고후 13장).

 

이 편지는 고린도전서와는 직접적인 대조를 이룬다. 고린도후서는 강렬하리만큼 개인적이며, 헌신한 이 사도의 깊은 정서들로 채워져 있다. 만일 고린도전서가 고린도 교회의 “지붕을 벗겨 내는” 것이라면 고린도후서에서는 바울이 “마음을 열고” 있으며, 주님의 일을 위한 바울의 사랑과 관심을 보여 준다.

 

첫째 편지에서 바울은 질문에 답하는 교사로서 문제들을 바로잡는 반면에, 두번째 편지에서는 목회자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그의 영적인 자녀들이 믿음안에서 완전해지도록 그의 생애를 쏟아 붓고 있다.

 

신약의 어떠한 서신서에서도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섬김(사역)의 참된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지는 못하며, 어떤 편지도 그리스도인의 드림과 고난과, 영적인 승리에 대해 이처럼 말하고 있지는 못하다.

 

1. 고린도후서 1장 / 참 목자로서의 변(辨)

 

본 장에서와 같이 사도 바울의 마음을 잘 드러낸 곳은, 신약 성경에서 몇 장 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위대한 사도가 자신이 당해 온 고난에 대하여 말하면서 근심과 실패들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고통의 문제는 언제나 생각하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가?”의 문제는 욥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흐르고 있는 질문이다.

 

이 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경험들을 다시 회고하면서 하나님은 왜 자신의 백성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에 대한 세 가지 이유를 전해 준다.

 

1.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하여(1:1-7)

 

“위로”(Comfort, Consolation)라는 단어는 이 구절들에서 10회나 사용되고 있으며, 직역하면 “자기의 곁으로 부르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대하여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사용하셨던 “위로자”(Comforter, 변호자)라는 것도 같은 단어이다. 우리가 문제를 당할 때마다 우리를 도우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서 계심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사 41:10/사 41:13/사 43:2-3). 삼위일체, 즉 성부 하나님(고후 1:3), 성자와 성령(요 14:16), 모두가 위로자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신 것과 같이(벧전 5:10)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모든 상황에 위로와 은혜가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받는 이 위로는 우리의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주어지는 위로이다. 바울은 환란을 통과했는데(1:4, 8/ 2:4/ 4:17/ 6:4/ 7:4/ 8:2)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그가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신다. 우리가 가본 일이 없는 곳에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는 없다.

 

바울은 이러한 시련들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간주한다(1:5/4:10-11).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그가 언급한 대로 “주님의 고난으로 말미암은 교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그가 죄를 위해 고난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나누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만이 성취하실 수 있는 사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주님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며, 또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고난을 당하신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행 9:4).

 

자비에 관한 하나님의 수학은 놀랍다. 시련이 많아지면 하나님은 위로도 마찬가지로 풍성해진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롬 5:20). 바울은 “풍성하다”는 단어를 고린도후서에서 지주 사용한다. 성구사전에서 관련 구절들을 조사해 보라. 6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고난당함이 이중의 축복을 가져온다는 놀라운 진리를 가르친다. 첫째는 자신에게(“역사하며”란 말은 그 사람 안에서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살전 2:13/빌 2:12-13) 다음으로는 그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시련을 기꺼이 견뎌야 한다. 이는 우리들에게 개인적으로 영적인 유익을 가져오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위로를 나눌 때에 그들에게도 축복이 되기 때문이다. 7절의 “참예하는 자”란 “교제” 또는 “짝”이란 뜻이다. 우리는 고난당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기꺼이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공동 협력”은 위로와 교훈으로 인도해 가기 때문이다.

 

2.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후 1:8-11)

 

실패를 시인한다는 것은 위대한 영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바울은 여기서 자기의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신자들과 더불어 그가 아시아에서 견뎌야 했던 문제들을 함께 나눈다. 그가 이것을 기록한 것은 그들이 동정을 사기 위함이 아니요, 그가 배운 “하나님만을 신뢰하라”는 교훈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바울이 어떤 고난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고린도에서의 문제거리들이던 슬픈 소식과 더불어 에베소에 있었던 소요 사건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행 19:23-41/고전 15:32).

 

7장 5절에서 바울은 외부와 내부에 문제들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문제들이란 육신의 연약함과 위험, 그리고 고린도의 갓난아기 같은 교회에 대한 영적인 관심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거리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바울을 압도하였으며 사형선고를 언도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는 생명조차 포기할 정도였다.(하나님의 위대한 성도들도 역시 진흙으로 빚어졌음을 알게 되는 것은 참으로 큰 위로이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신 교훈을 배웠다. 그는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10절에 나와 있는 신자의 구원에 대한 세 가지 시제에 유의하자(딛 2:11-15 참조). 바울은 그의 친구들의 기도의 도움을 신속하게 인정하였다(11절). 그는 기도의 응답으로 그가 구조를 받았음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고 말한다.

 

우리가 자신이나 환경이나 사람을 믿지 않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정도가 되려면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롯을 데리고 갔는데 롯은 실패하였다. 모세는 아론의 도움을 강요하였지만 그는 백성을 죄로 인도해 갔으며, 다윗의 고문관들은 그를 저버렸고,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버리고 달아났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사는 사람은 평화와 확신을 누린다. 참으로 깊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을 요구하기 위하여 (고후 1:12-24)

 

바울의 계획들과, 고난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구절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배경을 이해하면 바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거기서 일단 마게도냐로 갔다가 그리고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15절에 나타난 “이중의 축복”(두번째 유익)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환경은 그의 계획을 변경시켰으며, 고린도에서의 그의 원수들은 바울을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였다. “바울의 편지는 믿을 수 없어! 그런데 그는 이러한 편지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메시지들이라고 주장한다!”고 그들은 말했다.

 

바울은 이러한 고발에 대해 그들을 두 번 방문한다는 그의 약속이 진지한 것이었으며 그의 동기는 순수하고 거룩한 것임을 보여 줌으로써 대답한다. 바울은 이 편지가 정직하고 믿을 만한 것임을 확신시키며 그리스도가 심판하시기 위하여 돌아오실 때는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12-14절). 바울은 그들의 사랑과 이해를 믿는 확신 때문에 계획을 변경시켰던 것이었다(15-16절).

 

테일러의 저서인 “살아 있는 편지들”(Living Letters)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마게도냐로 가는 길에 너희에게 들러 너희를 만나려고 계획을 세운 것은 너희의 이해와 신뢰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 사랑과 신뢰가 있을 때 동기에 대한 의심이나 의문이 있을 수 없다.

 

바울은 “예”라고 말하면서 “아니요”를 의미하는 세상 사람과 같지는 않았다. 그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신뢰할 만하며,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는 교훈을 남긴다.

 

20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주님을 통하여 우리는 「아멘」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약속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된 것이다. 주님께서 그 약속들을 성취하시며, 우리에게 그 약속들을 요구할 믿음을 주신다.

 

하나님의 불변하는 말씀을 인하여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요구하고 믿기에 앞서 고난과 시련이 닥치는 때가 종종 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만 하나님이 이를 다스리신다. 우리는 약속을 하지만 언제나 지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약속들이 성취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위하여 이러한 약속들을 요구할 능력을 가지게 된다.

 

끝맺는 구절에서(21-24절) 바울은 그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상기시킨다.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세우심을 받아 기름부음을 받았고, 인침을 받았으며 성령이 주시는 열심을 받았다. 성령이 그의 생활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가 어떻게 불성실할 수가 있겠는가?

 

성령의 인침이란,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표를 해주시는 성령의 사역을 말한다. 일단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했으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인침을 받은 상태이며 보장을 받는다(엡 1:13-14/엡 4:30). 열심이란 우리가 영광 중에 누리게 될 영적인 축복을 오늘의 우리 생활에서 누리도록 내려주시는 성령의 축복이다(롬 8:9/롬 8:14/롬 8:23/엡 1:14).

 

끝으로, 바울은 계획된 여행을 하나님께서 변경시켜 주셔서 기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 때 그가 그들을 방문했었다면 그들을 책망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항해하는 대신에 드로아와 빌립보로 갔으므로 고린도 교회는 일들을 바로잡을 시간을 더 벌게 되었다. 그 당시 여행했었다면 고통스러울 것이었겠지만 이제는 일들이 해결되었으므로(2:6-11) 근심없이 기쁨으로 그들을 방문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