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린도후서 3장 / 바울의 사역(Ⅱ)
본 장은 율법의 구약 사역과 복음의 신약 사역을 나타내는 핵심적인 장이다. 오늘날 유대주의와 교회를 혼합하는 종교 단체가 얼마나 많은가. 아마도 바울이 예루살렘교회에서 보내는 추천서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 분당은 그가 참된 사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떤 교사들이 이런 추천서를 가지고 고린도에 왔던 것이 분명하며, 이 일로 인해 바울을 신용하지 않은 것 같다.
바울은 이 고발을 사용하여 율법의 구약 사역과 복음의 신약 사역을 대조시키는 기회로 삼는다.
1. 돌비가 아니라 마음에 새겨짐 (고후 3:1-3)
바울은 “내게는 추천서가 필요하지 않다. 고린도에 있는 너희 그리스도인이 나의 편지, 곧 추천서이다. 돌비가 아니라 마음에 기록된 편지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생활과 사역은 그가 한 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에 말씀을 기록한 하나님의 비서로 나타낸다. 참으로 놀라운 진리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이 읽는 “그리스도의 서신”이다.
“당신은 매일 한 장씩 복음서를 쓰고 있다.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말로 쓰는 것이다.
사람들은 믿음직한지 또는 진실인지 보려고 당신이 쓴 것을 읽는다.
당신이 쓴 복음서는 과연 어떠한 것인가?”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돌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그의 말씀을 쓰신다(히 10:16-17). 율법은 외적인 문제이나, 은혜는 내면적이며 마음에 관계된다. 그러나 바울은 잉크로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흐릿하게 바래지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으로 영원히 썼다. 돌비에 기록된 율법은 인간의 손에 들려져 있으나 그들의 생애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말씀을 사용하셔서 인간의 생애를 변화시킬 수 있으시다. 그래서 신약 사역은 성령께서 말씀을 인간의 마음에 기록하시기 때문에 영적인 사역인 것이다.
2.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가져옴 (고후 3:4-6)
바울이 “의문(儀文)은 죽이는 것이다”라고 말할 때는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의 “영(정신)”을 거스린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혼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성경의 문자를 따르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성경의 정신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명심할 일은 “의문”(the letter)이라고 할 때 바울은 구약율법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바울은 본 장에서 구약 율법을 말함에 있어 몇 가지의 표현을 사용하여 의문(6절), 죽게 하는 직분(7절), 정죄의 직분(9절)으로 나타낸다. 율법은 생명을 부여하도록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율법은 분명히 죽게 하는 직분이다. 바울은 새로운 언약의 사역자였는데, 이 새 언약은 행위와 죽음의 옛 언약이 아니다. 율법을 통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고린도에는 사람들에게 율법에 순종하며 바울의 은혜의 복음을 거절하라고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요한의 복음서에서 “생명”이란 단어를 추적해 보면 신약의 사역은 성령을 통한 생명의 사역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는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3. 시들어 버릴 영광이 아니라 지속적인 영광 (고후 3:7-13)
구약의 사역에 영광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영광이 성전을 채웠고, 하나님의 사역이 광야에서 백성들 위에 머물렀었다. 성전과 의식들,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일 등, 이 모든 것은 그들에게 따른 영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빛바랠 영광이었으며, 지속되는 영광이 아니었다.
바울은 출애굽기 34장 29-35절에서 모세의 경험을 인용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얼굴에서 반사되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러한 영광이 희미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에게 말할 때는 언제나 그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은 흐릿해진 영광을 볼 때 그의 사역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개는 모세가 사람들이 깜짝 놀랄까 봐서 베일을 썼다고 가르치는데 이것은 틀린 것이다.
13절을 유의해서 읽어 보라. 테일러의 「살아 있는 편지들」(Taylor, 「Living Letters」)에는 “우리는 모세가 아무도 그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져 감을 볼 수 없게 하려고 수건을 쓴 것같이 하지 않는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옛 언약과 율법의 영광이 머물러 있게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기 앞서 그 영광은 색이 바래게 되는 것이었다. 만일 정죄의 직분(율법)이 영광스럽다면, 의의 직분(복음)은 훨씬 더 영광스럽다. 바울은 베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숨길 것이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복음의 영광이 거기 있는 것이다. 이 영광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4:3-6).
4. 가려진 것이 아니라 드러난 것 (고후 3:14-16)
바울은 모세의 수건을 영적으로 적용시키고 있다. 그는 유대인들이 구약을 읽을 때 유대인의 마음에 여전히 베일을 쓰고 있어서, 이 베일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언급한다. 구약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마음에는 언제나 잠겨 있는 책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전의 베일을 빌려서 구약의 모형과 예언들을 성취하고는 그 베일을 제거하셨다. 이스라엘은 율법의 임시적인 사역을 알지 못하고 영광의 색채가 바랠 직분, 결코 지속되지 않을 직분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중으로 눈이 멀어 있었다. 인격적으로 눈이 멀어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으며, 또한 심판으로 인하여 눈이 멀었는데, 하나님은 민족적으로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셨던 것이다(롬 11:25). 고린도후서 4장 4절은 사단이 모든 죄인들의 마음을 눈멀게 함은 물론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숨기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해 돌이킬 때는 베일이 벗겨진다. 모세가 하나님을 뵈러 산으로 올라갔을 때는 베일을 제거하였다. 이처럼 어떠한 유대인도 정직히 주님께로 향할 때 그의 영적인 베일이 제거될 것이며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고,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될 것이다. 신약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신약, 구약)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지목하는 것이다. 우리는 숨길 것이 없으며 베일로 가릴 것이 없다. 영광은 영원한 것이며 점점 더 밝아질 것이다.
5. 속박이 아니라 자유 (고후 3:17-18)
17절은 크게 오용되고 있으며 온갖 종류의 신령하지 못한 실천 생활의 핑계를 대는 데에 인용되고 있다. “주님은 영이시다.” 사람이 그리스도께로 돌이키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이다. 성령은 영구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준다. 옛 언약은 행위와 속박의 언약이었다(행 15:10). 그러나, 복음의 새로운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러운 자유의 직분이다(갈 5:1-).
이러한 자유는 방종이 아님은 물론이며, 두려움과 죄와 세상과 종교 의식들로부터의 자유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모세와 같다. 베일을 벗어버린 얼굴로 그는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스스로 그 영광을 받고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라.18절에서 바울은 성화의 의미와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것의 의미를 요약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에 비교한다(약 1:23-25).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거기서 하나님의 아들을 볼 때 하나님의 영은 그를 변화시켜 더욱 그리스도를 닮게 하신다(롬 8:29). 이 구절에서 “화하여”란 말은 로마서 12장 2절에 나오는 “변화를 받아”와 같은 단어이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였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속박과 두려움에 속해 있지 않다. 그는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의 영광과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우리는 그를 닮기 위해 그가 오실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우리가 말씀 안에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 살 때 “영광에서 영광으로” 매일같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지위는 영광스러운 지위이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 속한 예식이나 눈에 보이는 옷차림 같은 것은 없을지라도, 은혜의 직분은 유대주의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다. 우리의 직분은 영광스러운 직분이다. 그 영광은 결코 쇠하여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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