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고린도 후서4 - 고후 4장(복음에 대한 바울의 견해)

JORC구원열차 2009. 7. 22. 00:19

4. 고린도후서 4장 / 복음에 대한 바울의 견해

 

고린도 교회의 어떤 이들은 바울이 그의 사역에 있어서 진실하지 못하다하여 그를 고발하였다. “바울은 사역을 통하여 무엇을 얻으려고 일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고발이었다. 본 장에서 바울은 그가 사역에 있어서 진실하다는 것을 보일 증거들을 밝힌다.

 

1. 그의 결심(고후 4:1)

 

동기가 빈약하거나 사역에 대한 영적이 식견이 부족한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포기했을 것이다. 바울이 만일 진실하지 못하였다면 그가 왜 이 모든 위험들을 겪고 고생을 하며 전도하기를 계속해 왔겠는가? 바울은 그의 사역을 청지기 직분으로 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그에게 주셨고 또한 하나님께서 무력해지지 않도록 그에게 힘을 주셔서 계속할 수 있게 하셨다. 바울이 포기하기 복음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것이었으며, 그가 일선에서 벗어나 맥이 빠져 있기에는 복음의 사역이 너무나도 위대한 것이었다.

 

2. 그의 정직성 (고후 4:2-4)

 

바울이 행하기를 거절한 몇 가지 일들이 있다. 그는 추종자들을 얻는 데 비밀리 속임수를 쓰는 방법을 사용하기를 거절하였다. 거짓 교사들이 이러한 일들을 행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편지들”(Taylor's Living Letters)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을 믿게 하지는 않는다.”

 

바울은 교활하게 굴거나, 또는 말씀을 속여 사용하거나 하지 않았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였다.” 오늘날 하나님의 진리를 철학과 오류들과 혼합하여 성경을 속여 사용하는 목회자들과 교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을 성경이 말하는 것으로 만들려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사역은 정직했던 것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말씀을 사용하였으며, 사람들이 스스로 성경을 살펴보도록 격려하는(행 17:11) 정직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만약 복음이 숨겨진 것이라면, 그것은 교사의 잘못이 아니었다. 사단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죄인들의 마음을 멀게 한다. 말하기는 유감스럽지만, 구원에 있어서 주님의 얼굴 보기를 원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주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으려고 할 것이다(계 6:15-17).

 

죄인의 마음은 눈멀고 무지하며(엡 4:17-19), 오직 말씀의 빛만이 구원의 지식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거나 변조하여 회심자들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하여 선한 양심으로 말씀을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3. 그의 겸손 (고후 4:5-7)

 

만일 바울이 자신을 위해서나 돈을 벌려고 추종자를 얻으려 했다면,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전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전하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일만을 추구하였다. 고린도전서 3장 1-9절을 다시 읽고, 그가 어떻게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그리고 예수님을 위한 노예로 제시하는지 보라. 우리가 사람들을 높일 때에는 아무런 빛을 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어두움에서 빛을 발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 창세기 1장 1-5절로 돌아가 언급하는데, 이 구절에는 하나님이 창조시에 빛을 비추셨으며, 이 빛에서 생명과 축복을 얻게 하셨다는 내용이 있다. 잃어버린 죄인의 마음은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이 있던 본래의 땅과 같으나 성령이 그 마음을 덮으며, 말씀이 오셔서 빛을 비추신다. 곧,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다. 그럼으로써 죄인이 새롭게 창조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시인한다. “그렇다. 나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보물은 흙으로 빚은 질그릇에 들어 있다. 나는 나타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 그릇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만이 나타나며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일꾼들이 복음이라는 보물보다도 그릇을 더욱 중하게 여기는 것은 대단히 나쁜 일이다.

 

4. 그의 고난 (고후 4:8-10)

 

만일 바울이 그들의 말처럼 개인적인 이익을 얻으려 했다면 그가 왜 그렇게 많은 고난을 당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는 사람은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를 환영할 것이며 그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바울을 욕하고, 거절하였으며 그의 생애를 어렵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취급했던 대로 그를 취급하고 있었다. 이것은 바울이 그의 사역에 있어서 진실하다는 증명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당하려는 바울의 마음가짐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그의 진실함을 나타내는 가장 큰 증거들 중의 하나였다. 현대 번역판으로 이 구절을 읽으면 그가 받은 고난이 얼마나 격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정직한 하나님의 종은 언제나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다.

 

5. 그의 이타심 (고후 4:11-15)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 고난과 죽음을 기꺼이 직면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말씀을 전해 주기 위하여 그가 겪은 고난과 죽음의 경험은 신자들에게는 생명을 의미했다. 거짓 교사들은 고난이나 희생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그는 “나는 내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 표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일들이 너희를 위한 것이다!” 얼마나 이타적인 정신인가! 바울은 만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교회에 유익이 된다면 어디든지 기꺼이 가고자 하였으며, 무엇이든지 기꺼이 견디려 했다. 그는 믿음의 영을 가졌으므로 그의 고난은 곧 축복을 의미함을 알고 있었다.

 

6. 그의 믿음 (고후 4:16-19)

 

이 구절들은 고난의 때를 당한 신자에게 놀라운 확신을 가져다준다. 비록 겉사람은 매일 죽어가지만 속사람, 영적인 사람은 매일 새로워진다(3:18 참조).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척도로 자신의 고난을 측량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준비해 두신 영광의 무게에 비하면 그의 고난은 가벼운 것임을 발견한다. 그의 시련의 날과 해는 그를 기다리는 영원한 축복에 비교할 것이 없었다.

 

우리가 영원한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을 통하여 사물을 볼 때, 생은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시편 73편에서 하늘(heaven)의 가치관을 가지고 생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 사람의 경험을 읽어보라.

 

18절은 불신자에게는 하나의 역설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보배로운 귀중한 진리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보게 하는 것이 믿음이며(히 11:1-3)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다(롬 10:17).

 

세상은 임시적이고 지나가는 것들을 위하여 살고 죽는다. 그러나, 주님의 일들은 영원히 지속된다.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뜻을 따라 살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보다 높은 가치관에 고정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이 탐내는 것을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며 직분을 감당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동기들은 정당해야만 하며, 우리의 방법은 성경적이어야 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해야 한다. 바울은 이 같은 종류의 사역을 하였다. 만일 하늘나라를 목표로 하고 살기만 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