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린도후서 5장- 그리스도인과 심판대
바울은 여전히 그의 대적들의 고발에 답하며 그의 사역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본 장에서 그는 자신의 사역이 부주의하지 않으며 진지하다는 것과, 육신의 욕망이 아니라 진지한 동기에서 일하고 있음을 중점적으로 지적한다. 바울은 자신을 조절하는 네 가지의 동기들을 밝히고 있다.
1.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 (고후 5:1-8)
앞 장에서 바울은 고난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섬기기로 결심하였음을 언급하였다. 그는 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 믿음은 맹목적인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었다. 어디로 갈 바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바람도 그가 가는 방향을 바꾸어 놓을 수가 없으며, 어떤 원수라도 그를 멸할 수 없다. 겉사람이 후패하더라도(4:16)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바울은 영광이 다른 편에 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집”이란 그리스도가 신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시는 집이 아니라(요 14:1-)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에 우리가 갖게 될 영화로운 몸을 가리킨다(빌 3:21/고전 15:50-). 이 땅 위의 우리의 집은 어느 날 해체되어야 할 장막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영광스러운 몸을 준비하셨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원하는 바는 죽음에 삼켜지는 이 땅의 몸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영광스러운 몸을 “덧입어” 변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에 이런 영광스러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을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성령의 보증을 가지고 있으며(5절), 영원한 보증은 축복의 안식이 우리의 것임을 확신시키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예비하신 집이 아니라 몸의 집에 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집에 있게 되며” 결코 변하지 않을 영광된 몸으로 사는 것을 갈망한다.
2.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려는 관심 (고후 5:9-13)
바울은 이기적이지 않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의 봉사는 미래를 위한 소망 외에 다른 것으로도 동기를 부여받는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고 받으실만하게 되기를 추구하였으며, 언제나 그리스도께 “만족스럽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주님에 대한 건전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는데(11절- “두려우심”), 이는 모든 신자들이 어느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전 3:10-15/롬 14:7-13). 그가 한 일들이 어느 날 드러나게 될 것이며 시험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바울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였다.
10절에서 “드러나다“란 단어는 “서다” 또는 “보여 주다”란 뜻보다 더한 의미가 있어서 “드러나게 된다”란 개념을 전해 준다. “우리는 모두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 심판대에서는 아무런 꾸밈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성품과 사역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에 적절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종은 현재에도 조심스럽게 공개적인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이를 표명한다(11절).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게 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고린도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명의 설교자들을 자랑으로 여기면서 바울을 비판하였다. 명심할 것은 “결과”가 반드시 인간의 생활과 봉사에 대한 평가 기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마음의 동기가 중요한 것이다.
3. 강권하는 사랑 (고후 5:14-17)
바울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처럼 극단에 이르렀기 때문에 미쳤다는 비난을 받았다(행 26:24 참조). 그러나, 실제 그의 생활을 좌우하는 힘은 그리스도의 사랑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바울의 사랑을 뜻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러한 사랑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향하여 품으신 사랑이었다. 사도는 그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압도당하여, 그리스도를 섬기며 높이는 것이 그의 생애를 조절하는 동기가 되었다.
그는 14-17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하는데, 그 사랑이 죽은 죄인들을 위해 죽도록 십자가를 지게 했다고 묘사한다.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는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 수 있도록”(요일 4:9), 그와 함께 살게 되도록(살전 5:10) 그리고 “그를 위하여 살도록”(고후 5:15)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이기심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고린도에 있었던 문제들 중의 하나는 신자들이 육신을 따라 판단하는 것이었다(고전 4:1-7 참조). 그들은 바울을 다른 사도들과 비교하고 있었으며, 실상 영적인 분별이라기보다는 육신전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새로운 가치와 동기를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육신을 따라 그리스도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즉, 세상이 하는 것처럼 인간의 관점에서 위대한 교사나 본보기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울은 회심하지 않은 유대 랍비로 있을 때 아마도 육신을 따라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 그는 자기의 관점을 바꾸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영적인 평가를 해야만 한다. 그들은 바울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육신을 따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며, 그들의 생활을 조절하는 능력이 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결여되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4. 하나님께로서 온 사명 (고후 5:18-21)
우리는 바울의 생애와 사역을 조절했던 세 가지 동기들로서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려는 관심, 강권하는 사랑을 살펴보았다. 이제 네번째 동기로서 바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에 대한 것을 보게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였다!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죄의 값을 지불하셨다는 평화의 메시지였다. 하나님은 죄인들과 전쟁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니므로, 죄인들은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인가!
1) 대사는 선택된다-
그리스도는 바울을 택하여 잃어버린 인류에게 보내는 대사가 되게 하셨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나타내었다(4:5).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리스도가 그를 믿고 맡기신 복음이었으며(살후 2:4), 그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며 그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성하는 것이었다.
2) 대사는 보호를 받는다-
대사는 그가 대표하는 나라의 시민이어야 한다. 바울은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과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의 시민이었다(빌 3:20 에서는 “회담”을 “시민권”으로 번역함). 국가는 대사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공급하며 그를 보호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며 모든 위기 가운데서도 그의 곁에 서 계신다.
3) 대사는 전쟁이 선포되기 전에 본국으로 소환된다-
하나님은 아직 이 사악한 세상에 전쟁을 선포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은 선포하실 것이다. 사악한 자들을 심판할 진노의 날들이 오고 있다(살전 1:10).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날이 오기 전에 본국으로 부름을 받게 될 것이다(살전 5:1-10). 하나님의 대사인 교회는 환란을 치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메시지는 화해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과 화해하셨으며, 그의 아들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복음이 삶들을 개혁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메시지는 사회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딛 2:11-15) 영적인 재생의 메시지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자들에게 주님을 영접하라고 초청할 때 이것은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이다. 얼마나 큰 특권이며, 또한 얼마나 큰 책임인가!
우리들은 시명을 받았거나 안 받았거나 간에 모두 대사들이다.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요한복음 20장 21절에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메시지와 방법과 동기들이 정당한 것임을 확신하여, 우리의 일이 지속되게 하며 주님 앞에 설 때에 불시험을 견딜 수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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