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고린도후서 9장 / 뿌리는 일과 거두는 일
8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바치는 일을 논의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 충성했을 때 요구할 수 있는 약속들에 대해 설명한다. 이 두 장에서는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법적인 채무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은혜와 축복으로서의 헌금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바치는 문제로 어려움을 당한다면 그의 마음에 무엇인가 잘못이 있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삼중의 약속을 살펴보자.
1. 바치려는 의지는 다른 이들에게 축복을 끼친다 (고후 9:1-5)
8장 1-5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며 격려가 되도록 마게도냐 교회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마게도냐의 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고린도인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게 격려가 되어야만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너그러움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었는데(8:24), 이제 그는 고린도 사람들이 그를 당황하게 하지 않을 것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 바울은 그들이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고, 선교 헌금을 바치려는 의지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그 같은 일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하였다.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격려하였느니라).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간증이다. 불행하게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릇된 길로 사람들을 충동질한다. 히브리서 10장 24절은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가 서로를 격려하라고 강권한다. 고린도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다.
한 해 전에 바울은 그들에게 선교 헌금을 모으도록 강권하였으며 그들은 지원할 것을 서약했었다. 이 사도는 다른 교회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들의 열성을 본보기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약속한 바를 상기시키고 있다. “만일 너희가 이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다른 교회들을 실의에 빠뜨릴 것이며 전체 헌금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바울은 이 헌금을 장려금 곧 축복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바울은 헌금이 목에 걸린 멍에가 아니라 축복이 되며, 또한 축복을 받는 기회로 볼 수 있기를 원하였다. 바울의 편에서 볼 때 헌금은 축복의 문제이지 탐욕(욕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왕왕 헌금의 중요성을 오해한다.
주는 일은 받는 사람이나(9:12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함) 나누는 사람에게 축복이 되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축복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지교회에 바치는 일에 충성할 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에 순종하도록 격려를 하게 된다.
2. 바치려는 의지는 자신에게 축복이 된다 (고후 9:6-11)
바울은 그의 논점을 설명하기 위해 여기서 농사에 있어서의 원리를 사용한다. 풍성하게 씨를 뿌리는 농부는 풍성하게 거둔다(잠 11:24/눅 6:38/갈 6:7-8 참조). 여기서 “풍성하게”(또는 “아낌없이”-Bountifully)란 말은 5절에서의 “장려금”(한글 성경에서는 “연보”-Bounty)과 같은 단어이다. 아낌없이 뿌리는 것은 축복을 뿌리는 것을 의미하며, 풍성하게 거둔다는 말은 “축복을 거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빚을 지지 않으신다. 우리가 충실하게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축복하시는 일에 충실하시다.
7절은 흔히 잘못 적용되곤 하는 구절이다. 바울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바칠 것인가를 말하지 않고 어떻게 바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그는 8장 12-15절에서 얼마나 많이 되돌려 드릴 것인지에 대해 말하였는데, 그것은 가진 바 소유에 따라 비례적으로 바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까워하며 바치거나 법적인 채무의 감정으로 바친다면, 바치는 데에 따른 축복을 잃는 것이다. 바치는 것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야 하며, 하나님은 즐겨(헬라어로는 “유쾌하게”)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을 들어 마음에 목적한 바를 기쁘게 바치는 한, 우리가 얼마만큼을 바치는가는 문제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기쁘게 바치는 마음이 순종하는 마음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드리는 데 있어서 우리의 마음은 충실하고도 기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른 동기로 바른 액수를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8절에서 “모든 은혜, 항상, 모든 것, 넉넉함, 모든 착한 일” 등, “모든”이란 말이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눈여겨보자. 빠뜨린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넉넉함”이란 단어는 3장 5절, 12장 9절에서도 나온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2:6), 물질적으로(9:8) 또한 육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는 데에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대처하시나, 이는 다만 우리의 즐거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하며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든 착한 일에 풍성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일을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엡 4:28). 바울은 여기서 시편 112편 9절과 이사야 55장 10절을 참고로 하여, 하나님은 바치는 일에 충성된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것을 입증한다. 하나님은 씨를 공급하셔서 씨뿌리는 사람이 먹을 것을 만들고도 다른 사람들을 먹일 수 있도록 더 많은 씨를 뿌리게 하신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주는 사람은 그만큼 잃는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이 그처럼 되지는 않는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주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 이 말들은 우리가 하나님과 거래를 하라거나 십일조를 하나님의 축복을 사들이는 수단으로 보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말씀에 대한 우리의 신지를 표현하는 기회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3. 바치려는 의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고후 9:12-15)
바울은 고린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지닌 영적인 부요함에 대하여 몇 번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인가!(고전 1:5/고전 4:8/고후 8:9/고후 9:11) 하나님은 우리를 부요케 하시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부요케 하고,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감사와 영광을 받으신다. 바울은 이 헌금을 분배하는 일이 성도들에게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지적한다.
13절은 유대인들이 이 헌금을 받는 일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두 가지의 이유를 진술하고 있다. 즉, 바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표하는 것이며, 그들의 자유로운 헌금이 그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받는 사람들은 되돌아서 그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며 그들을 더욱 사랑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헌금의 배후에는 매우 실용적인 사상이 들어 있다. 바울은 그가 설립한 이방인 교회들을 고국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맺어 주고 싶어했으며, 이 헌금은 바울이 유대인의 원수가 아니라는 점과, 종족의 구별을 넘어 교회 안에 있는 통일성을 입증할 것이었다.
바울은 찬양하는 말로 본 장을 끝맺는다. 그는 바치는 일(연보)에 관하여 써왔는데,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가득 차서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외친다. 이 은사란 물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물이며 또한 그가 가지신 영원한 생명의 선물이다.
이 두 장을 읽으면 반드시 바치는 일에 대한 태도가 새로와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결국에 가면, 이것은 “물질적인 것”이고 저것은 “영적인 것”이라고 나누는 일은 없게 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영적인 목표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바울은 바치는 일은 부담이 아니라 축복임을 가르친다.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헌금은 생활을 풍성하게 하며, 하나님의 축복의 샘을 열어 놓는 것임을 보여 준다. 바친다는 것은 은혜이며(8:1/8:6-7/8:9/8:19/9:8/9:14), 은혜를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은 바치는 법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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