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린도후서 10장 / 사도적 권위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부분(10-13장)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장들에서 그는 고린도 교회에 있는 그의 대적들이 고발한 것에 대하여 답변한다. 바울의 응답을 읽어 가면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임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발의 내용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천거서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참된 사도가 아니라는 것과 그의 동기가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 그가 육체적으로 너무도 미약해서 존경을 받기에는 부적합하다. 그의 편지들은 담대하지만 그의 인격은 그 내용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그의 약속들은 의지할 수가 없다는 것 등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바울이 여기서 자기 자신을 개인적으로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의 직분, 다시 말해서 그가 전한 메시지를 변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거짓말들은 고린도를 방문하여 유대교와 복음을 혼합한 거짓 교리로써 교회의 일부를 장악한 거짓 교사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었다. 바울은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만 답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 자신에게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11:13-15).
바울이 “자랑함”에 대하여 말할 때는 빈정대며 비꼬는 식이 가미되고 있다. “너희에게 인기 있는 그 교사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나 자신에 대해 약간 자랑을 함으로써 너희의 사랑을 얻고자 한다.” 물론 바울의 자랑은 주님 안에 있는 것으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 10장에서는 그의 편지가 능력 있는 반면 그가 실제로는 연약하다는 고소에 대해 몇 가지로 답변을 하고 있다.
1. 나는 그리스도의 본을 따른다 (고후 10:1)
고린도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영광 돌리기를 무척 좋아하였으며(고전 3:21/고전 4:6-7), 팔레스틴으로부터 온 유대화된 설교자들의 영향아래 휩쓸리고 있었다. 그들이 거짓 교리를 전파하며(11:4), 그리스도인들을 악용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11:18-20) 교회는 그들을 환영하고 있었으며, 그 교회를 설립하고 그 교회를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바울보다도 그들을 더 높이고 있었다. 이 교사들은 그 교회의 주인 행세를 하며 “바울은 너무 약하다. 그러니, 우리들을 따르라, 우리는 진짜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점에 대하여 바울은 “만일 내가 연약하다면, 그것은 연약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온유함이다”라고 응답한다. 그리스도는 결코 그 사람들에 대해 “주인 행세“를 하지 않으셨으며, 그의 능력은 온유와 겸손 가운데서 행사되었다. 온유함은 연약함이 아니다. 온유함은 조절을 받는 능력이며, 죄에 대하여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외모로 판단하거나(10:7), “정력적인 전도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대신할 만한 것은 없다.
2. 나는 영적인 무기를 사용한다 (고후 10:2-6)
바울이 육신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강렬한 성격”으로 말미암는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그를 허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그의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었다.
모두가 그렇지만, 바울 역시 “육신 가운데서 행하였다.” 즉, 육신의 모든 허약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지혜나, 인간의 가능성, 또는 육신의 힘에 의존하여 싸우지는 않았다. 모세는 하나님의 무기가 영적인 것임을 배워야 했으며(행 7:20-36),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서 이를 가르쳤다. 이 전쟁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만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무기이다(행 6:4).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고 거짓말을 믿었으므로 고린도에서는 불순종이 행해졌다. 바울은 그들의 논쟁과 거짓 교리들을 파하고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순종의 위치로 인도할 것을 시사한다. 교회의 문제는 교회법을 개정한다거나, 교파적인 어떤 책략을 통해 진흥시킨다거나, 또는 죄를 표면적으로 처리한다거나 해서 해결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들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해결할 수가 있다.
3. 나는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 (고후 10:7-11)
외모로 판단하는 사람은 언제나 외모에 치중하며 산다.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쓰는 삶을 살았으며, 결코 인간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주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며 주님의 신용장을 받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는 “자기의 신분을 믿고 세력을 부릴 수도” 있었고 사도의 권한을 사용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그러한 권한을 사용하여 교회를 파괴하기보다는 교회를 양육하는 편을 택하였다. 물론 간혹 참다운 것을 세우기 위하여 파괴하는 일이 필요한 때도 있기는 하다.
베드로 같은 육신적인 정력이나 아볼로 같은 웅변 능력이 없다고 하여 바울을 불신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설교자를 판단하며”, 하나님의 종을 이 사람 저 사람 비교한다. 바울은 다음에 방문할 때는 그가 그의 편지와 같이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그들을 경고한다.
4. 나는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게 한다 (고후 10:12-18)
이러한 거짓 교사들은 “상호 칭찬 협회”의 회원들이었으며, 스스로 서로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을 매우 높게 생각하였다(마 5:43-48/갈 6:3-4 참조).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에서 교회를 설립하기 위하여 생명을 무릅쓰고 있을 때 이 위대한 교사들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 어려운 일이 끝난 후에야 나타난 사람들이 설립자를 비판하고 모든 영광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복음의 손을 뻗쳤으며, 또 다른 지역으로 복음을 전해 주는 일에 그들이 조력해 주기를 원하였다. 유대주의자들은 와서 그들이 성취하지도 않은 일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바울의 주관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복음을 가지고 가는 일이었으나(롬 15:20), 반면에 유대주의자들의 정책은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여 그가 한 일을 망하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매우 지혜롭게도 칭찬에 관한 문제를 주님께 맡긴다. 그는 17절에서 예레미야 9장 24절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고린도전서 1장 31절에서도 인용되었던 구절이다. 결국,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그분만이 마음과 동기를 알고 계신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잘하였도다”라는 말씀을 하실 것을 기꺼이 기대하였던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러해야 한다.
이 장을 복습해 보면, 그리스도인 사역자들과 그리스도의 봉사에 관한 문제에 이르러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몇 가지 중요한 교훈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육신적인 문제들로 영향을 받지 말라.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종은 인간적으로 말해서 반드시 가장 잘생기고, 가장 강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할리우드의 영화배우”같은 이에게 곧 위압감 느끼는데, 이들은 인상적인 외모와 최면술적인 웅변으로 그들을 사로잡는다. 이것은 물론 우리가 고의적으로 무관심해지거나 거짓 겸손을 실천하라는 뜻은 아니다.
영적인 무기들과 도구들을 사용할 때에 가장 지속적인 사역을 이루게 된다.
군중을 많이 모이게 하는 일이 한 가지이면 교회를 양육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연극 프로그램, 광고를 통한 진흥 책략, 육신을 의존하여 인간을 높이는 능력 발휘, 이러한 모든 일들은 육신의 관심을 끌지는 모르지만, 결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는 없다. 우리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세워 나가며, 이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
때가 이르기 전에 판단하지 말라(고전 4:5).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게 하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도록 살라, 그리하면 당신의 생애와 사역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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