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갈라디아서 2장 / 복음 대 율법
첫장에서 바울은 그가 전하는 복음과 사도권이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왔으며 열둘에게서 독립되어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의 서신서를 읽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바울은 열 두 사도,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하는 의문을 품게 될 것인데, 본 장에서 그는 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1. 그의 복음이 사도들에게 인준을 받음 (갈 2:1-10)
바울은 사도행전 9장 26-29절에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지 14년 후에, 율법과 은혜의 문제에 대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거룩한 성”으로 돌아왔다. 바울은 “계시로 인하여” 이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이는 수년 전에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주셨던 것처럼(1:1-11) 또한 그가 가야 할 것을 개인적으로 명령하셨다.
바울은 이방인들 중에서 사역해 왔고, 그와 바나바는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으며 지교회들이 설립되는 것을 보아 왔다. 그런데 이제, 그 이방인들의 운명이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토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 중요한 회의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15장을 다시 읽어 보라.
어떤 이들은 네 차례의 다른 모임들이 개최되었다고 제언한다.
- 공식적인 모임-바울은 하나님이 이방인들 중에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하였다(행 15:4).
- 바울이 지도자들과 개인적으로 만남(갈 2:2).
- 공식적인 토론(행 15:5/갈 2:3-5)
-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짓기 위해 모인 회의(행 15:6-).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메시지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도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메시지가 올바른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거짓 형제들”을 들여보내지 않음으로써, 불에다 기름을 더하는 격이 될 뿐인 공개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해 그들을 개별적으로 만났던 것이다. 항상 정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룹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디도는 바울과 함께 있었는데, 그는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았었다. 유대주의자들의 말에 따른다면 디도는 구원을 받지도 못한 것이다(행 15:1).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은 디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므로, 바울은 이것을 들어서 할례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결론적으로 입증한다.
그 곳에 거짓 형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고 있던 신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자유를 잃게 만들려는 자들이었다. 이 분당들은 디도의 할례 문제로 논쟁을 벌였을 것이 분명하나, 바울은 이들을 “눌러 이겼다.” 무리가 나뉘어져서, 어떤 이들은 율법주의의 편에 섰고 어떤 이들은 자유를 지지하였으며, 또 다른 이들은 이 두 가지가 타협된 안을 택하였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여전히 분열되어 있어, 어떤 가르침은 의식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말하며, 다른 교훈은 은혜와 율법을 혼합하고, 소수는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주장한다.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바울의 메시지와 사역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베드로와 열 두 사도가 유대인에게 사역한 반면 바울은 이방인에 대해 사역한다는 점에 교회 지도자들이 동의한 것이었다. 8절에서 바울은 베드로 안에서 역사하신 같은 성령께서 바울 안에서도 역사하셨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똑같은 메시지와 똑같은 성령이었으며 다만 사역의 영역만 달랐던 것이었다. 회의는 바울의 메시지에 아무것도 첨부하지 않았으며(6절), 다만 시인했을 뿐이었다. 바울은 원수들의 거짓말에서 “복음의 진리”(2:5)를 보전하였다.
2. 그의 복음이 베드로 앞에서 보호를 받음 (갈 2:11-21)
바울이 2장 6절에서 인간들의 “영적인 지위들”을 무시한 것은 옳은 일이었다. 가장 우수한 인간들과 영적인 지도자들조차 실수할 수 있는 것이며, 이 점에 대해 바울은 바나바와 베드로를 본보기로 인증하였다.
예루살렘 회의 이후에 베드로는 바울과 바나바가 여전히 사역하고 있던 안디옥 교회를 방문했었다(행 15:35). 사도행전 10-1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어떤 음식이나 어떤 사람도 부정하지 않다고 분명하게 계시하셨었다. 그러나, 이 사도는 전과 같이 율법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가 처음으로 안디옥에 왔을 때에는 이방인들과 섞여서 함께 식사하였으나, 예루살렘에서 방문객들이 온 후로는 스스로 철회하고 옛날 유대인의 장벽을 다시 세웠던 것이다. 게다가 “바나바조차” 함정에 빠짐으로써 선교 사역의 동역자인 바울을 놀라게 하였다. 그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12절). “왜냐하면 인간을 두려워하는 것이 올무가 되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바나바는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짓는다. 베드로와 바나바는 영적인 진리에 대하여 혼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직선으로 반듯하게 걸을 수가 없었다. “복음의 진리”는 우리가 방어만 할 것이 아니라(2:5) 우리가 실행해야 할 것이다(2:14). 14-21절에서 우리는 바울이 베드로에게 한 책망의 요지를 볼 수 있다. 물론 바울은 이보다 많은 말을 하였으나, 간추린 이 말은 이 문제를 매우 잘 요약해주고 있다.
바울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유대인이지만, 자신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사이에 장벽을 두지 않고 이방인처럼 살아 왔다. 그런데, 이제와서 당신은 이방인들에게 당신 자신조차도 하지 않는 일을 시키며 그들이 유대인처럼 살기를 원한다.”
15-17절에서의 “우리”는 물론 유대인을 가리킨다. “우리 유대인은 유별난 특권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방인이 범하는 것 같은 죄를 짓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구원받는 것과 꼭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았다.” 어쩌면 바울이 “그들은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하리라고 기대될 것이지만 그는 반대로 바꾸어 버렸다.
“구원은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같이” 될 것을 요구하지 오히려 않는다. 유대인들이 저주받은 이방인들을 대신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지위를 받아 의로와졌다. 율법의 사역으로는 인간을 결코 의롭게 할 수가 없다. 유대인 중에 누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물론 없다! 라고 말한다.
17-18절에서 바울은 율법으로 되돌아간 베드로의 어리석음을 나타낸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만일 율법으로 되돌아간다면 당신은 아직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죄인이며,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지 않으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당신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당신을 다시 죄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죄의 사역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부인하는 것이다. 바울은 사도행전 10-11장을 참고로 하여 다음과 같이 계속해서 말하였다. “당신은 이방인들에게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이제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전파했던 당신이 이제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전파한다. 이로써 당신은 자신이 이전에 헐어버린 것을 다시 세우고 있으며, 이 일은 당신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계속 지켜가기를 권하시는 일을 헐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바울은 베드로에게 그의 행동과 믿음에 일관성이 없음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율법은 생명의 길이 아니고 죽음의 길이다. 율법은 우리를 죽이지만 복음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리스도인은 외적인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로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영원히 연합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함께 죽었으며 그가 부활하실 때 함께 부활하였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이 믿음으로 행할 때 그들을 통하여 그의 삶을 사시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이것은 규율과 규례와 의식을 종합해 놓은 것이 아니다. 율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만드는 것이며, 만일 율법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길이라면 그리스도는 헛되게 죽으신 것이 된다.
갈라디아서나 사도행전 그 어느 쪽에도 베드로의 반응이 실려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책망이 그 목적을 달성했음을 알고 있다. 사실상, 베드로가 기록한 서신들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권고 중의 한 가지는 신자들이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서신들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벧후 3:13-16). 베드로를 신앙과 교리의 문제에 있어서 실수가 없는 지도자로 보는 사람은 본 장에서 문제에 부딪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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