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갈라디아서 3장 / 믿음으로 의로워짐
3-4장은 교리적인 내용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바울은 여기서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설명한다. 여기서는 믿음(14회), 율법(19회), 약속(11회)의 세 단어가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다. 바울은 여섯 가지 논점을 각 장에 세 가지씩으로 제시하는데, 구원이 율법과는 별개로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오는 것을 입증하려하고 있다.
1. 개인적인 논점(3:1-5)
바울은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와 가지던 경험에서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에 대한 가장 좋은 증거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율법이 아니란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으며, 그들이 믿고 순종한 멧세지는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구원의 증거로 성령을 받았는데(롬 8:9) 이는 어떠한 율법에 복종함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엡 1:13-14) 말미암은 것이었다. 분명히, 바울이 전한 복음, 곧 바울 자신의 삶과 그들의 생애들을 바꾸어 놓은 복음은 참된 멧세지였다. 성령이 그들을 위하여 모두 성취하신 율법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바보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믿음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당하였었다. 어느 누가 참되지 않은 것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려 하겠는가? 성령의 은사들로 말미암아 교회 내에서 그들의 사역자들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 있었으며, 그 일들은 율법을 통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볼 때 모든 일들은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데, 곧 구원은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3절의 진리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구원하신 같은 성령께서 또한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써 구원은 받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그들 자신의 힘에 의존한다는 개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로마서 7장에서는 신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명백하게 가르치며, 로마서 8장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은혜의 사역을 계속하시며 율법의 요구들을 성취하신다고 가르친다.
2. 성경적인 논점 (고후 3:6-14)
“성경적”이라는 말은 바울의 다른 논점들이 말씀에 입각하여 참되지 않다는 의미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 부분에서 구약 구절들에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다. 사실상, 당신은 이 관련 구절들과 본문의 내용들을 주의깊게 검토하고 싶어질 것이다.
1) 창세기 15장 6절 인용(6-7절)-
유대주의자들은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본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바울도 꼭같은 일을 한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던가? 믿음으로였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녀들이며, 그는 믿는 자들의 아버지이다. 이 논점을 좀 더 확충해서 보려면 로마서 4장 1-8절을 참조하라.
2) 창세기 12장 3절 인용(8-9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교도들(이방인들)을 축복하기로 약속하셨는데, 이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물론, 아브라함이 믿은 복음은 온전히 오늘날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조차 그들에게 이 복음이 설명되기까지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진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것이며 위대한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는 기쁜 소식(복음)이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었으며, 이 믿음이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간주되었다).
3) 신명기 27장 26절 인용(10절)-
“너희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가? 그러나, 율법은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저주하는 것이다!”
4) 하박국 2장 4절 인용(11절)-
우리는 전에도 이 구절을 다루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히 10:38). 하박국서에서 나온 이 짤막한 구절은 너무도 풍성하여, 하나님은 이 구절에 대한 세 차례의 주석을 쓰셨다.
5) 레위기 18장 5절 인용(12절)-
“행하는 것”과 “믿는 것” 사이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율법을 온전히 순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6) 신명기 21-23장 인용(13-14절)-
율법은 인간을 저주 아래 둔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저주에서 우리를 옮기기 위해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나무(십자가-벧전 2:24)에서 죽으셨는데, 이로써 신명기에 주어진 말씀을 성취하셨다. 주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가져가셨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이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 적용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여섯 인용 구절들을 다시 한 번 읽고, 구약 율법 자체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됨을 가르치고 있음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것을 보자.
3. 논리적인 논점 (갈 3:15-29)
바울이 다루는 논점들이 모두 논리적인 것은 물론이지만, 이번 논점은 특히 이성의 추리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율법을 인간의 계약에 비교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계약을 체결하면 제3자가 개입하여 변화시키거나 철회하는 일은 불법이 된다.
하나님은 율법이 주어지기 400년 전에 아브라함과 계약(언약)을 체결하셨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은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본래의 약속을 철회할 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와도 약속을 하셨는데, 16절은 이 씨가 그리스도이심을 시사한다.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철회한 새로운 구원의 방법이 아니었다. 그렇게 된다면 논리적이지 못하다. 약속과 믿음은 같은 차원의 것이나, 약속과 율법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율법을 주셨는가?”라고 바울의 반대자들은 논란을 벌일 것이다. 이에 대해 세 가지로 대답한다.
1) 율법은 유대인만을 위한 임시적인 것이다(19-20절)-
로마서 2장 14절과 사도행전 15장 24절은 하나님이 결코 율법을 이방인들에게 주지 않으셨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도덕법은 이미 그들 이방인의 마음에 씌어져 있으나(롬 2:15), 의식법(안식일에 관한 법 포함)을 이방인들에게 주신 일이 없다. 율법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대신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라 “더하여진” 것이다. 그 씨(그리스도)가 오시자 율법은 사라졌다.
유대주의자들은 “그러나, 율법은 영광 가운데서 주어진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임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응대할 것이지만, 바울의 대답이 준비되어 있다. 율법은 천사의 중개적인 손에 의해 주어졌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개인적으로 직접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성취하는 일도 하나님께만 달려 있는 문제이다.
2)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지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21-22절)-
죄인들을 구원하는 율법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아끼고 그러한 구원의 방법을 사용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없었다.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죄를 드러내어 죄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율법은 은혜의 필요성을 보여 주며, 은혜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할 수 있게 한다. 율법은 모든 사람들이 죄 아래 있다고 결정해 버린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일 하나님이 한 사람이라도 율법으로 구원을 받도록 허락하셨다면 어떤 사람도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3) 율법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였다(23-29절)-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믿음이 있기 전에 율법은 인간들을 가두어 놓아 구세주가 필요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E. L. 맥스웰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모여왔다.” 율법은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유아기”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 쓰임받은 “교사”(가정교사)였다. 헬라와 로마의 가정교사는 어린 아이들이 법적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하고 가르쳤다. 그런 후에 이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율법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복음의 온전한 계시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주어지기까지 유대인들을 “줄 안에” 가두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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