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에베소서2 - 엡 2장(놀라운 기관(몸))

JORC구원열차 2009. 7. 25. 00:13

2. 에베소서 2장 / 놀라운 기관(몸)

 

1장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소유에 대하여 강조하였는데, 2장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지위에 강조를 두고 있다. 인간의 지위는 그의 소유와 능력을 결정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육체적으로 어느 곳에 있든지 상관없이 백악관의 책상 앞에 앉아있는 사람으로서의 그의 지위로 말미암아 권력과 권위가 부여된다. 그리스도인도 이와 같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어디에 있거나 상관없이(바울은 이 편지를 쓸 때 감옥에 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지위로 말미암아 영적인 영역에서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

 

1. 부활하여 보좌에 앉음 (엡 2:1-10)

 

1) 우리의 과거의 상태(1-3절)-

잃어버린 죄인의 모습을 보라. 그는 영적으로 죽은 자로서, 속 사람이 죽어 있으므로 영적인 일들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할 수가 없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을 살리신 예들을 보자.

 

12세 된 소녀(눅 8:49-55), 젊은이(눅 7:12-15), 노인(요 11:1-) 등 이들은 모두 죽어 있었지만 부패의 상태는 달랐다. 나사로는 장사된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모든 죄인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죽어 있다. 구원받지 못한 교인과 부랑자 소굴의 주정뱅이에 차이가 있다면 다만 주정뱅이의 악취가 좀 더 심하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죄인은 영적으로 죽은 자일뿐만 아니라 세상의 노예로서 세상의 쾌락과 정욕을 위해 산다. 만일 그에게 “세상은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으므로 거기서 떠나라”고 말하면 그는 비웃을 것이다. 그는 사단의 권세 아래 있다. 사단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삶에 역사한다. 이 말은 사단이 그들을 주정뱅이나 살인자로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방법이란 “자기 의”를 통하여 거짓된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종교적이고 훌륭한 시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셨다(요 8:44).

 

만약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노의 자녀이며, 불순종의 지식이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태어난다. 그러나 책임 있는 나이에 도달한 이후 그리스도를 알기를 거절할 때는 고의적인 선택에 의해 불순종의 아들이 되어진다.

 

2) 하나님이 행하신 일(4-9절)-

“그러나 하나님은!”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말들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서 마귀와 더불어 영원히 살도록 버려두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편을 택하셨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며(소생시키심) 죄의 무덤에서 일으키셨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부가 되게 하셨다는 점이다! 우리는 함께 소생되어 함께 일으킴을 받았으며, 천국에서 함께 앉아 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신 이유는 자비가 풍성하시며 사랑이 크시기 때문이었다. 자비는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인데 내게 주시지 않는 것을 뜻하며, 은혜는 내가 받을 만하지 못한데 나에게 주시는 것을 뜻한다.

 

3) 현재의 우리의 상태(10절)-

우리는 주님의 솜씨이며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빌립보서 2장 12-13절을 읽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담대히 믿으라! 미래에 어떤 일들이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미래를 쥐고 계신 분을 알고 있다. 나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신 동일한 분이신 사랑의 아버지께서 내 삶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나타내셨다. 참으로 우리는 얼마나 은혜에 빚진 자인가! 늘 숨이 막힐 듯한 은혜가 아닌가!

 

2. 화목케 되어 성전을 이룸 (엡 2:11-22)

 

본 장의 전반부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해 하신 일반적인 일들에 대해 말하였으나, 이제 특별한 부분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방인과는 메시야의 언약을 맺지 앉으셨으나, 유대인에게는 왕국을 약속하셨다. 오늘날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위치는 어떠한가?

 

1) 이방인의 산분(11-12절)-

하나님은 항상 유대인과 이방인 간에 있어서 종족적으로는 구별하셨으나(고전 10:32) 개별적으로는 구분하지 않으신다(롬 10:11-13). 이방인들은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들로서, 다시 말하자면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일부가 아니었으며, 사실상 구약 율법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큰 간격을 두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보다 동맹자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소망도, 참 하나님도 없는 나그네들이었다. 이 비참한 모습을 로마서 9장 4-5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특권적인 위치와 대조해 보라. 13절은 이것을 “멀리 떨어진”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죄인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죽음”인데 비해 이방인들의 특정적인 문제는 “거리”였다.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을 도우실 때에는 거리를 두었던 점에 유의해 보자(마 8:5-13/마 15:22-28 참조).

 

2) 하나님이 하신 일(13-17절)-

13절의 “그러나 이제”는 4절의 “그러나 하나님은”과 유사하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서 있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유대인의 성전에는 성전의 여타지역과 “이방인의 뜰”을 구분하는 벽이 있었다. 이 벽은 이방인이 이것을 넘으면 죽임을 당한다는 경고의 표시였다. 예수께서는 그 벽을 헐어 버리셨다.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육체의 벽을 무너뜨리셨다(15절/ 갈 3:28-29 참조). 또한 주님은 영적인 벽을 헐어서 “멀리 떨어진” 이방인들을 가까이 데려오셨다(13절). 주님은 율법의 벽을 허셨다. 그가 몸소 율법을 성취하시고 십자가에서 모세의 율법의 통치를 끝내셨기 때문이다(14-15절). 그리스도는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의 평화를 이루셨을 뿐 아니라(롬 5:1)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평화를 이룩하셨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죄악된 유대인과 죄악된 이방인들을 “새 사람” 즉 교회로 만드셨다.

 

3장에서 살펴볼 것이지만 교회의 “비밀”이 바울을 통하여 계시되었음과, 또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을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었을 것임을 명심하자.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분리해 놓으셨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대인이 되는 길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인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둘 다 정죄한다는 것을 드러냈으며, 또한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을 나타냈다.

 

3)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현재 신분(18-22절)-

이들은 둘 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대면한다. 유대인의 조직에 의하면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새창조를 통해서 모든 신자는 지성소에 들어갈 특권을 가진다(히 10:19-25). 이방인과 유대인들은 둘 다 이제는 하나님의 집에 속해 있으며 유대인들은 이제 더 이상 “보다 나은 혈통”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의롭게 된 것은 주님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이다.

 

바울은 교회를 성전으로 비유하며 본 장은 끝맺는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적절한 상징일 것이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거룩한 성전을 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베소 사람들은 그 시에 아데미를 섬기는 큰 신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도 역시 이해하기 쉬운 비유였을 것이다(행 19:21-41).

 

실제로 각각의 각 신자는 살아 있는 성전을 세우는 살아있는 돌이다(벧전 2:4-8). 사도들과 선지자들(신약 선지자들, 4:11)은 기초석이 아니다. 이들은 기초를 놓는 사람이며 처음으로 메시지를 선포한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는 모퉁이 돌이신 동시에 기초석이시다(고전 3:11).

 

오늘날 교회는 살아 있으며, 성장하고 있는 성전이다. 그 성전이 완성되면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것이며, 그 성전을 영광으로 인도해 가실 것이다. 하나님은 장막(출 40:34)과, 솔로몬의 성전(대하 7:1)과, 그리스도의 몸인 성전에 거하셨으며(요 1:14/요 2:18-22), 이제는 각 신자 안에(고전 6:19-20), 그리고 교회 안에 거하신다(엡 2:21). 하나님의 거처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