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에베소서3 - 엡 3장(놀라운 건물)

JORC구원열차 2009. 7. 25. 00:14

3. 에베소서 3장 / 놀라운 건물

 

본 장은 에베소서의 전반부를 끝맺고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하는 우리의 부요함을 설명하였다. 이제 그는 실천적인 부분(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행함)으로 이동해 가려하고 있으며, 이에 앞서 잠깐 멈추어 기도를 한다. 그는 1절에서 기도를 시작하고는 13절에서 다시 기도를 잇고 있다. 그 사이에 끼어든 삽입 구절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이 몸된 기관에 대한 바울의 특별한 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자신의 사역에 대한 바울의 설명 (엡 3:1-12)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첫번째 내용은 바울이 자기 자신을 갇힌 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이방인을 위한 사역에 그가 갇혀 있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사도행전 22장으로 돌아가면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귀를 기울여 경청했으나(행 22:21) “이방인”이란 말이 나오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사실상 이것은 사도행전 10장과 15장에 나타나 있는 대로 초기의 유대 신자들 사이에서조차 문제가 되어 왔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셨고 경륜에 관한 특별한 직분을 맡기셨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계시를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불렀다. 로마서 9-11장에 대한 본 서신의 설명과 사도행전 서론 부분을 다시 복습하면 좋을 것이다.

 

구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작정된 계획을 계시하셨다. 즉, 그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야로 영접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왕국을 건설해 주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세례(침례)요한을 통하여 왕국을 제공하셨으나(마 3:2) 유대인들은 그가 죽임을 당하도록 버려두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공하셨을 때는 그를 죽이라고 요청하였고, 사도들과 스데반을 통하여 제공하셨을 때는 사실상 그들 스스로 이들을 죽였다.

 

세 차례에 걸쳐 이 민족은 요한을 보내신 하나님을 거절하였고, 성자 하나님을 거절하였으며, 전도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신 성령을 거절하였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왕국의 제공은 끝이 났다. 메시지는 사도행전 8장과 10장에서 사마리아사람들과 이방인들에게로 넘겨졌고, 사도행전 9장에서는 바울이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다.

 

바울의 사역은 이방인에 대한 사역이었다. 바울의 메시지는 은혜요 바울의 특수 사역은 한 몸의 진리, 곧 교회의 비밀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엡 6:19/롬 16:25-26/골 1:26-27/골 4:3-4 참조). 그는 여기 6절에서 그 신비한 비밀을 명백하게 언급한다. 이방인과 유대인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다.

 

이와 같은 비밀은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제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사도들과 신약 선지자들에게 나타내셨다. 열 두 사도가 교회의 이러한 비밀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곳에 기록된 바울의 영감받은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다. 베드로조차 이방인들에게 가기 앞서 하늘로부터 특별히 알리는 말씀을 들어야 했다. 한 몸의 진리는 바울에게 주신 계시였으며, 초대교회에 그 의미의 중요성이 점차적으로 부각되었다.

 

8절에 나오는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이란 말을 직역하면 “추적할 수 없는 풍성함”이란 뜻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됨의 비밀을 추적할 수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숨겨진 비밀이었다. 9-10절에서 우리는 이중의 사역을 본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비밀의 경륜”을 알렸으며, 교회는 천사들에게(정사와 권세들, 6:12) 하나님의 지혜를 계시한다. 천사들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배우고 있었다(벧전 1:10-12).

 

사단도 역시 성경을 읽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회의 계획을 감추어 두심으로써 사단이 이 계획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끌고 갔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을 운명에 인을 쳤다.

 

오늘날에도 이 시대에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적 없이 방황하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을 보게 됨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이들이 사도행전 1-6장에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로 이동할 수 있다면 시간과 재능과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2.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중재 (엡 3:13-21)

 

에베소서에 나오는 두 가지 기도(본문/ 1:15-23)가 상호 보충적임을 기억할 것이다. 첫번째 기도는 교화를 위한 것이며, 두번째는 실현 능력을 위한 것이다. 바울은 그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원하며, 다음으로는 그들이 알게 된 대로 생활하기를 원한다. 바울은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가족을 위하여 기도한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은 바로 주님의 가족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땅 아래” 있지 않다(빌 2:10). 이것은 연옥을 뜻하거나, 지옥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니다.

 

바울은 속 사람이 영적인 능력을 알도록 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속 사람을 얼마나 부주의하게 취급하고 있는가!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내면에서 능력을 주신다. 20-21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지적한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과 골로새서 3장 16절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능력을 입혀 주신다고 가르친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하였으며(행 6:4), 하나님은 그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위대하게 역사하셨다.

 

바울은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거하시기를 원하였다. 물론 그리스도는 모든 참된 신자의 마음에 거하신다. 그러나, 모든 마음이 그가 계시기에 편안한 집은 아니다. 그리스도는 베다니에 가기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그 곳에 있는 그의 친구들이 그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으로 배부르며 그를 섬겼기 때문이다. 창세기 18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러 오셨을 때도 천사를 앞서 보내어 롯을 방문하게 하셨다(창 19장). 왜냐하면 세상적인 신자의 집에서는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서 편안함을 느끼실 수 있겠는가?

믿음과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있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서 편안함을 느끼신다. “뿌리가 박히고”란 굳건한 위치, 믿음과 사랑의 습성을 암시한다. 영적인 일들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많다.

 

18절의 “알아”는 “파악하다, 이해하다”는 뜻이다. 바울은 이미 그들이 이해하게 되기를 기도하였는데, 이제 그는 이 놀라운 일들에 대해 그들 스스로 이해하게 될 것을 기도한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해한다. 바울은 특히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 모든 것을 충만케 하는 사랑에 대하여 그들이 이해하게 되기를 원한다. 너무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의 아버지가 아닌 성난 심판자나 또는 엄격한 주인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한다”(19절)는 말은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다(요 1:16/골 2:9-10 참조). 골로새서 2장 10절에서도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라고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의 충만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는 구호대상자처럼 산다. 공허한 생활은 실의에 빠진 위험한 생활이다. 만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채우시지 않으면 불순종의 영이 와서 역사하며 죄에 빠뜨린다.

 

20-21절은 감동적인 축복 기도이며 이 편지의 첫 부분을 끝맺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며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는 얼마나 놀라운 구원을 소유하고 있는가! 이 능력은 그리스도께 우리의 마음을 열 때, 내적인 교제를 구할 때, 기도할 때, 말씀에 순복할 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을 때(2:6), 그리고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채워져 있을 때 “쓰레기더미 안에” 있을 이유가 없다.

 

이 전반부를 끝마침에 있어서 바울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의 자세는 하나님의 축복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었고(2:6)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으며(2:20), 그의 무릎을 꿇었다(3:14). 이로 인하여 바울은 걸을 수 있고(4:1), 성장할 수 있으며(4:15) 사단에 대항하여 설 수 있었다(6:14-).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적인 지위는 이 땅 위에서 우리로 승리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