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갈라디아서 6장 /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법
이 마지막 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는 대조점들을 두 가지 더 제시한다. 그가 지금 율법 아래가 아니라 은혜 아래 있는 신자의 신령한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것임을 명심하자. 이것은 속박이 아니라 자유의 생활이며(5:1-15), 육신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생활이다(5:16-26).
1.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갈 6:1-10)
신자가 순종할 율법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의 법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하나님의 영은 사랑의 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하는 자유를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성령께서 그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돕도록 허용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란 말은 위대한 복음의 단어이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사셨으므로 우리는 그의 본을 따라야 한다. 율법에서 독립한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독립적이란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형제이기 때문이다.
1) 영적인 도움(1-5절)-
어떤 형제가 갑자기 원수에게 붙들려 죄에 빠졌다고 가정하자. 아니면 그가 죄에 사로잡혀 다른 신자들에게 발견되었다고 하자. 우리의 태도는 심판하고 정죄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신령하다면, 곧 성령으로 행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령을 통하여 열매를 맺는다면, 우리는 그를 회복시키려고 힘쓸 것이다.
“회복시킨다”는 단어는 부러진 뼈를 맞추는 데에 사용하는 의학용어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다. 그리고 죄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몸 전체의 사역을 방해한다. 물론 어떤 형제가 회복할 것에 순복하지 않으면 마태복음 18장과 고린도전서 5장에 요약된 징계의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서로 져야 하지만 우리 자신의 짐 또한 져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질 수 있는 짐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자신이 홀로 져야만 하는 짐이 있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죄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 할 때는 온유한 영이 있어야 한다.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보상하시게 하자.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신다.
2) 물질적인 도움(6-10절)-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신자는 그를 가르치는 자와 물질적인 축복들을 나누어야만 한다는 것이 6-8절이 주는 간단한 교훈이다. 우리는 죄에 대한 개념에서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할 때에 이 구절들을 사용하는데, 사실 이 원리는 진리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교훈은 “주는 일”에 대한 것이다. 6절의 “함께 하라”는 말은 단순히 “나누라”는 뜻이다. 이 원리는 로마서 15장 27절에 언급되어 있는데, 우리가 영적인 축복을 받는 데에는 물질적인 축복을 나눌 특권과 의무가 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은 육적인 일에 시간과 재물을 투자하여 육신을 위하여 산다는 뜻이며,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신령한 일들에 시간과 돈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시간과 돈(돈은 주조된 시간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을 육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왜 은혜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영적인 열매들을 거두지 못하는지를 이상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성령으로 심기 위해서는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거둔다고 약속하신다. 영적인 일을 추수하기까지는 성장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2. 인간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갈 6:11-18)
편지의 끝까지 바울은 심중에 은혜를 간직하고 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혜에 의존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나 그 반면에 “종교를 실천하는” 율법주의자들은 인간의 인정을 얻을 것이다. 참으로 세상은 “종교적인 사람들“은 존중하면서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미워한다.
바울은 대개 글을 쓸 때 비서를 두어 편지를 불러 주고는 끝에 그의 개인적인 “은혜 서명”을 첨부하였다(고전 16:21-24/골 4:18/살후 3:17-18). 그러나, 갈라디아서는 그가 개인적으로 쓴 것이 분명하며, 그의 시력이 약하기 때문에(갈 4:15) 큰 글씨로 써야만 했다.
“이렇게 큰 글자로”라는 말은 단어의 수가 많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서신은 비교적 짤막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각 글자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의 육체적인 장애가 하나님을 순종하며 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율법주의의 악함을 경고하는 일에 방해가 되도록 버려두지 않았다.
바울은 “이 유대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영광을 위하여 너희를 이용하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너희의 유익을 위하여 너희를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칭찬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를 전파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박해를 피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들 자신도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다.”
참으로 쏘는 듯한 책망이다. 그리스도 당대의 바리새인들처럼 유대주의자들은 개종자를 얻기 위하여 땅을 횡단하고 바다를 건넜다(마 23:15). 그러나, 이는 개심자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에 영광을 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유형이 아니었다. 그는 십자가를 영화롭게 했고 기꺼이 십자가에 따른 모든 수치와 박해를 감내하였다. 바울은 십자가의 인격과 목적, 그리고 그 능력을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
다시금 바울은 자신의 십자가에 대하여 언급한다(6:14/2:20 참조).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뜻하며(대속), 성화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 즉 그리스도와 동일시됨을 의미한다.
“이 거짓 교사들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을 위하여 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나에게는 아무런 매력이 없다. 나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고 세상은 내게 대하여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바울은 진술한다.
오늘날 십자가는 빛나는 보석 조각들로 번쩍거리지만 바울의 시대에는 고통과 죽음과 수치의 도구였다. 종교는 십자가를 하나의 상징으로 만들었지만, 성령은 십자가를 은혜로 말미암아 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나타나는 하나의 실재가 되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에 속하며(고후 5:17)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에 속한다. 이 말은 신약 교회가 구약 이스라엘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떤 종족적인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3:28). 오히려 이는 이 유대주의자들이 참된 이스라엘, 곧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종족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니지만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3:7).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인 것은 하나님의 고대 백성은 불신앙으로 제쳐졌으며 “내 백성이 아니라”는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호 1:9-10/호 2:23/롬 9:25-26). 어느 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리워질 것이며, 그들의 민족적인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좇아 행하는 “규례”는 은혜에 속한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창조에 속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선의이기는 하나 모르기 때문에 다른 규례에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이들은 왕국을 세우고자 하거나 세상을 개혁하려 한다.
바울은 율법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불과 한 구절로 일소해 버린다. “너희의 거짓 교사들은 할례로 표를 하지만 나는 내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표식)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바울의 몸에 그리스도의 상처와 비슷한 다섯 상처들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그의 몸에 상처들이 있어서 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위하여 비난을 견디었음을 입증한다는 뜻이다. 바울 시대에는 군사들, 노예들 그리고 어떤 이방신에게 헌신한 사람들에게 표식을 하였는데, 바울은 그리스도의 군사요, 그리스도의 노예이며 그리스도께 헌신한 추종자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의 심령에 있을지어다.” 참으로 놀라운 축복 기도이다.
이어서 핵심 성경 연구 <에베소서 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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