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디모데전서2 - 딤전 2장(교회에서의 기도생활)

JORC구원열차 2009. 7. 30. 08:28

2. 디모데전서 2장 / 교회에서의 기도 생활

 

2-3장에서 바울은 교회의 공적인 사역과 각기 다른 회원들이 맡아야 할 역할들에 대해 논한다. 1장에서는 말씀에 대한 사역을 다루었는데 본 장에서는 기도를 강조한다. 말씀과 기도는 목회자의 두 가지 주된 사역이다(행 6:4).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교회 정책을 실천하느라고 목회자들을 바쁘게 하여 이 중요한 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이다. 교회가 조직을 단순화하고 동기를 순화시킨다면 목회자들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적인 사역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역과 기도의 사역을 균형있게 행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말씀은 교회를 가르치며, 기도는 말씀에 순종하도록 교회를 감동시킨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많이 하면서도 기도를 적게 하면 “빛은 많지만 온기는 없게 될 것이며” 이 교회는 정통이지만 차갑게 얼어붙게 될 것이다. 이와는 극단적으로 반대를 이루는 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고 신앙의 열성은 많지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적은 경우인데, 이 교회는 열성은 있지만 지식은 없는 모임을 만들어 낼 것이다.

 

1. 지교회에서의 기도의 위치 (딤전 2:1-8)

 

1) 중요성-

바울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를 열거한다. 지교회가 기도하는 것은 마땅히 하도록 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기도는 지교회의 생활에 있어서 생명적인 요소이다. 성령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교회에 역사하신다(살전 2:13/엡 3:20-21). 기도하는 교회는 능력을 소유할 것이며, 그리스도를 위한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신자들이 기도에 전심하여 그들의 원수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일을 살펴보자. 바울은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한다. 이것은 중요하다.

 

2) 본성-

바울은 교회의 기도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① 간구-필요를 요청하는 것이다.

② 기도-예배와 경배를 암시한다.

③ 도고-다른 사람을 위하여 요청하는 것이다.

④ 감사-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진가를 평가하는 것이다(빌 4:6/단 6:10-11 참조).

우리는 교회 내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3) 목표-

2절은 기도가 그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지배하시며 사악한 사람들로부터 자기 교회를 보호하신다. 3절은 무엇보다도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함을 시사한다.

 

만일 우리가 자신들의 필요에 대처하기 위해서만 기도한다면 기도에 대한 관점이 낮은 것이다. 물론,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4-7절).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신자에게 명령하신다.

 

4) 조건들-

8절은 지교회에서의 공중 기도를 위한 세 가지 조건들을 서술한다.

① “분노함이 없이”-서로 사랑함으로 해야 한다.

② 이들은 거룩한 손을 가져야 한다. 즉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③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마가복음 11장 20-26절에서 이와 비슷한 구절을 읽어 보자.

물론 여자들끼리 모인 교제에서는 대중 기도를 해도 좋다. 그러나, 공적인 모임에서 남자들이 참석했을 때는 하지 말아야 한다."

 

2. 지교회에서의 여성들의 지위 (딤전 2:9-15)

 

다른 종교적인 신앙과는 달리 기독교는 여성과 어린 아이의 지위를 향상시켰다. 이러한 교훈을 했다고 해서 바울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여인들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온 세계의 여권 운동에 놀라운 축복이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바울은 다시 머리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엡 5:22-/고전 11:1-16). 이 원리를 인정하기를 거절하는 지교회는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교회에는 삼중의 머리가 있다. 즉, 몸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골 1:18)과 양떼에 대한 목회자의 머리됨(행 20:28), 그리고 여인에 대한 남자의 머리됨(고전 11:1-16/딤전 2:12)이다. 목회자의 머리됨을 무시하는 교회원들, 또는 남자의 머리됨을 부정하는 여인은 둘 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에서의 이상적인 그리스도인 여인의 특징들을 말해 준다.

 

1) 정숙 또는 아담함(9절)-

바울은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낡은 옷을 입으며 모양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모보다는 내적인 사람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정숙한 단장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나, 극도로 모양을 내는 일은 몸을 강조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을 세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신자는 현대적이면서도 여전히 단정할 수가 있다(벧전 3:1-5 참조).

 

2) 순전함-

그녀는 “거룩함을 고백한다.” 거룩함은 바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 중의 하나이다(2:2/2:10/3:16/4:7-9/딤후 3:5/딛 1:1). “거룩함”(godliness)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닮은”(god-likeness)이란 단어를 줄인 말인 것은 물론이다.

 

3) 근면-

그녀는 선한 일을 실천한다(10절). 이 편지의 후반부(5:11-14)에서 바울은 이집 저집을 배회하며 사단에게 죄로 인도하도록 기회를 주는 게으른 여인들에 대한 경고를 한다.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녀의 생활로써 전하는 것이다(벧전 3:1-3 , 베드로는 여기서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그녀의 잃어버린 자인 남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방법을 말해 준다).

 

4) 겸손-

고린도전서 14장 34-40절에서 바울은 이 명령을 보충하고 있다. 마치 사단이 여인을 통하여 에덴에 발판을 얻은 것처럼 지교회에서도 진지하기는 하지만 잘못 지도된 여인을 통하여 사단이 발판을 굳히는 때가 가끔 있다. 거짓이단들(재림교회, 크리스찬 싸이언스, 접신론 등)에서는 오순절 운동에서와 같이 여인들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지교회가 모임을 가질 때 겸손한 침묵으로 앉아 있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이 여자의 위치여야 한다. 만일 무슨 질문이 있다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집에만 있고 교회에는 참석하지 않는 남편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 비극이다).

 

이러한 역할은 여인들이 여인들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못하게 막는 것은 아니며, 교회 아닌 다른 교제 모임(방학 중의 성경학교, 어린이 복음전도반 등)에서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막는 것도 아니다.

 

바울은 굳건한 교리적인 기반을 가지고 이러한 치리 방법에 띠를 두른다.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고 하와보다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다(고전 11:8-9 참조). 머리됨의 원리는 자연의 한 과정으로 기록되어 있고, 인간이 이러한 원리를 위반하면 그 결과는 언제나 혼란이다. 고린도교회가 혼란을 일으키며 육신적으로 된 것은 여인들이 남자들보다 우선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데에도 부분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울은 이 원리의 두번째 이유를 설명한다. 즉, 사단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쉽게 속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14절/ 고후 11:3 참조)는 것이다. 하와는 사단에게 속아서 죄를 범하였으나, 아담은 눈은 뜨고 죄를 범하였다. 아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든지 그의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을 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아담은 죄인으로서 아내와 함께 있을 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였다.

 

이러한 면을 고려할 때 아담은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이다(고전 15:45).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의지적으로 영광을 제쳐두고 우리를 위하여 죄인이 되셨기 때문이다(빌 2:5-8).

 

15절에 나오는 “해산”이란 말은 창세기 3장 16절의 저주를 가리키는 것 같다. 거룩한 여인은 위험한 해산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출생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헬라어 원어는 “그 해산을 통하여”라고 되어 있는데 즉, 매우 특별한 아이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첫번째 의미가 아마도 가장 좋은 해석일 것이다(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