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베드로후서 2장 / 거짓 교훈들에 대한 경고
본 장은 복잡한 장으로서 유다서와 비교될 만한데, 똑같은 구절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거짓 교훈의 위험은 너무도 큰 것이어서, 성령께서는 우리를 경고하시기 위하여 베드로와 유다를 사용하셨다.
거짓 선생은 몰라서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도행전 18장 24-28절에서 우리는 아볼로가 모르고 거짓 교리(요한의 세례(침례)를 가르쳤던 것을 보는데, 그는 거짓 선생은 아니었다. 수 세기 전 교회의 위대한 지도자들 중에서도 우리가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고 믿는 교리들을 주장한 사람들이 많았다(교회와 국가의 결합 등).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거짓 선생들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거짓 선생은 진리를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가르치며 그의 동료들로부터 재정적인 이득을 얻으려 하여 자신을 선전하는 자들이며(2:3/2:14), 그는 마음대로 범죄하며 살 수 있는 자들이다(2:10/2:13-14/2:18-19). 속임수를 쓰며(2:1/2:3), 자기의 공상들을 짜 맞추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킨다.
1. 그들의 정죄 (벧후 2:1-9)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아 결박될 것이라는 점을 단언함으로써 이 부분을 시작한다. 1절은 거짓 선생들의 방법을 완전히 요약하고 있다.
① 이들은 교회의 회원들로서 사람들 중에 나타난다.
② 이들은 위선의 탈을 쓰고 은밀히 역사한다.
③ 이들은 참된 교훈과 나란히 거짓 교훈을 들여오며 나중에는 자기들의 말로 대신한다.
④ 그들의 삶은 자기들이 입으로 가르친 바대로 살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해서, “이단”은 그저 거짓 교훈일 뿐만 아니라 거짓 교훈에 기초한 거짓 생활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양의 옷을 입은 이리들”이라고 표현하신다(마 7:15/고후 11:13/고후 4:1-2). 불행히도 거짓된 길은 참된 길보다 더욱 인기가 있다(2절).
그런데 예수님은 또한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고도 하셨다(마 13:33). 사람들은 거짓 선생들을 선택하여 따를 것인데 그것은 거짓 선생들이 자신들을 그리스도보다 더 높이기 때문이며, 또한 사람들이 인기 있는 성공한 사람들을 숭배하려 하기 때문에 그렇다. 거짓된 길은 신앙 생활하는 중에서도 죄 가운데 빠져 살게 하기가 십상이다.
2장 3절에 나오는 “지은 말”이란 “흉내 내는 말” 혹은 “만들어낸, 짜 맞춘 말”이란 뜻이다. 헬라어로는 “플라스토스”인데, 여기서 영어의 “플라스틱”(pl-astic)이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이 성경에 있는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떠나(고전 2:9-16), 그들의 이론에 적합하도록 그들 자신의 말들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또는 오늘날 복음주의자인 것처럼 위장하는 “신정통주의자”들과 같이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 말씀들을 사용하여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 낸다. 이들은 우리의 어휘들을 사용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사전은 사용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의미이다.
창세기 6장에 죄를 범하여 지금은 타르타루스(깊은 구렁)에 갇혀 있는 천사들(4절에서는 지옥으로 번역되었지만, 지옥에 가 있는 자는 아직 아무도 없다)과 홍수 이전의 세계,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인용한다. 이러한 경우들에 연루된 사람들은 종교의 형태는 가졌지만 활력을 불어넣는 참된 믿음은 갖지 못했다(딤후 3:5).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기 앞서 세상에는 굉장히 많은 “종교”가 있게 될 것이지만 주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또한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 롯과 같이 그의 참된 성도들을 보존하시고 구원하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노아는 환란을 통과하여 보존을 받게 될 믿는 유대인들의 표상이며, 롯은 멸망이 임하기 전에 “데려감을 받을”교회의 성도들을 표상한다. 이 거짓 선생들은 성공한 것처럼, 그리고 안전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어느 날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2. 그들의 특성 (벧후 2:10-16)
1) 교만(10-11절)-
이들은 어떤 종류의 지배나 통치라도 경멸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정부, 여자에 대한 남자의 머리됨,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머리됨, 목회자의 지도력 등 이 세상에 “통치권”을 세우셨다. 그러나 거짓 선생들은 그들 자신의 길로 “달리고” 싶어한다. 천사들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들을 경멸하지는 않는다(유 1:8-9).
2) 무지함(12절)-
오늘날 거짓 선생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의도적으로 얼마나 어두운 체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벧후 3:5). 그러나, 이들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무지한 자들이여!” 또는 “구시대인이여!”라고 한다.
3) 탐욕(13-14절)-
그릇된 교훈과 그릇된 삶은 잘 조화된다. 이 사람들은 사치스럽게 살았고 굳세지 못한 사람들을 그들의 가르침으로 “유혹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님을 발견하도록 도우면서도 자신은 죄 가운데 살았던 “종교적인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이름이 수치를 당해 왔던 것은(2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4) 탐심-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종교적인 “돈벌이”가 성행하고 있다. 3절은 그런 선생들이 사람들을 상품화하기 위하여 그럴 듯한 말을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18절은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종교적인 수다쟁이들이 사실은 그들의 주머니를 터는 소매치기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을 따르기를 기뻐하는 견고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베드로는 한 예로서 발람의 경우를 든다(민 22-25장). 그는 자기의 은사를 돈을 버는 데에 사용했고 이스라엘을 죄 가운데로 인도했던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3. 그들의 주장들 (벧후 2:17-22)
이들은 그 추종자들에게 만족을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그들의 영적인 갈증을 해소시키지는 못한다. 물 없는 우물보다 더 쓸 데 없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허탄한 자랑의 말(종교적인 선전)을 하는 이 선생들은 겉으로 보아서는 진실한 것 같고 도움을 줄 것 같지만 바람에 떠도는 구름, 곧 아름답긴 하지만 목마른 사람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는 구름으로 드러나게 된다. 오늘날 수백만의 사람들이,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은 하나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그런 거짓 종교들을 따르고 있다.
이들은 자유를 약속하지만, 사람들을 속박으로 인도해 간다. 베드로는 여기서 약간 빈정거리는 수법을 사용한다. 자신들이 죄의 노예들이면서 어떻게 그 누구를 자유롭게 할 수가 있는가! 12절에서 그는 이러한 사람들을 “이성없는 짐승“이라고 불렀고, 이제 그들을 개, 돼지들로 칭한다.
베드로가 “구원을 잃은” 어떤 사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만일 그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라면 그가 베드로전서 1장 3-5절에 쓴 것과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양으로 비유하지 개나 돼지들로 비유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성품을 받았으며(벧후 1:4) 세상의 부패와는 무관하게 되었다. 양이 토한다거나 더럽혀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은 양이 깨끗한 동물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베드로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묘사하기를, 그들이 외적으로는 불결한 것을 씻어냈으나(종교적인 개혁) 내적으로는 새로운 성품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하고 있다. 사실상, 개나 돼지를 씻을 수는 있어도 그 본성을 바꿀 수는 없다. 이 사람들은 의의 길을 알며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지는 못하였다.
이들은 외적인 불결함은 씻어냈으나 내적인 부패는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이기는 하나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이 아닌” 이런 자들은 구원을 경험한 것 같았지만 때가 되면 그들의 본성에 맞는 생활로 되돌아가 표류하였다. 개는 토한 것을 도로 먹으며 돼지는 다시 진창으로 돌아가야만 한다(잠 26:11 참조).
우리는 거짓 선생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대신에 자신을 높이며 흉내 내는 말과 “허탄한 자랑의 말”을 함과, 돈 버는 것을 강조하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과대한 주장들을 하며, 그리고 정욕과 죄가 감추어진 삶을 사는 것으로 그들을 간파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가르치는 길 외에는 달리 이들과 싸울 수가 없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들을 밝히 드러낼 것이며 심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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