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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요한일이삼서3 - 요일 4장(하나님의 자녀와 세상)

by JORC구원열차 2009. 8. 4.

3. 요한일서 4장 /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

 

당신은 요한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빛, 사랑, 그리고 진리에 대한 주제는 이 짧은 서신 전체를 통해 교차되어 나타난 듯하다. 4장은 누구든지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면 그의 사랑으로 그것을 입증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요한이 3장에서는 순종의 동기로 내세운 것을 본 장에서는 사랑의 동기로 같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된 신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서로 사랑할 것이다.

 

1. 우리에게는 새로운 상품이 있다 (요일 4:1-8)

 

요한은 세상에 있는 거짓 영들에 관하여 경고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 당시에는 신약이 완성되지 않았을 뿐더러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음과, 신약 성경이 완성될 때까지는 지교회들이 신령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의 사역에 의존했음도 아울러 잊지 말자(고전 12장).

 

믿는 자는 어떤 설교자가 하나님께로 난 자인지 아니면 마귀에게서 난 자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무튼 사단은 모방자이다! 요한은 거짓 영들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전 12:3 참조). 거짓 이단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그를 인간에 지나지 않거나 영감받은 선생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새로운 성품을 소유하고 있어서, 이러한 요인들이 그에게 이길 힘을 준다.

 

오늘날 세상에는 두 가지 영이 있다. 곧, 영감된 진리의 영과, 거짓말을 가르치는 사단의 영이 그것이다(딤전 4장).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서 온 말씀을 말할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것들을 알아볼 것이다. 반면에 사단의 일꾼들은 세상의 지혜에 의존하여 세상에서 들은 말을 말할 것이다(고전 1:17-2:16).

 

참된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요 10:1-5/요 10:27-28). 또한 서로를 알며 서로를 사랑한다. 사단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이며 파괴자이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그들을 하나 되게 하신다.

 

2.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요일 4:9-11)

 

세상은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진실로 믿지 못한다. 이들은 세상에서 죄가 저지르는 무서운 파괴의 맹위를 보고는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필요가 결코 없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입증하셨다.

 

성경은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진술한다. 즉,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며(요일 4:9), 그를 위하여 살며(고후 5:15), 그와 더불어 살 수 있도록(살전 5:9-10)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논리는 명백하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십자가는 “더하기” 기호이다. 십자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며, 사람들을 서로간에 화해시킨다. 만일 두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이미 십자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3.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신다 (요일 4:12-16)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으나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볼 수는 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성취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롬 5:5).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성령께 굴복할 때에 우리에게서 넘쳐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좋은 특성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나쁜 특성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임하신다 (요일 4:17-18)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하나님께 대해 담대함을 갖는다(3:21-22). 서로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는 때에도 담대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가 강림하실 때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2:28).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에서 서로 나란히 마주 대하게 될 것인데, 여기 있을 때부터 서로 사랑하기를 시작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 대한 참된 사랑이 있는 곳에는 미래의 심판을 두려워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이생에서 사랑으로 우리를 마땅히 징치하실 수는 있으나, 그가 돌아오실 때 그분 대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부끄러워할지는 모르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하여(4:1) 우리 안에서(4:12), 그리고 이제 우리와 더불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흠뻑 젖어 있는 생활이다. 이러한 류의 사랑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하며, 세상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심판의 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랑의 증거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결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17절의 끝에 나오는 놀라운 진술에 주목하자.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현재 하늘에서) 우리도 그러하리라(현재 이 땅에서)!” 주님은 하늘에 계시며 하나님 앞에서 나를 대신하고 계시는데 이 땅에 있는 죄악된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대신하고 있다. 주님이 하늘에 계시는 한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서 하시는 것처럼 이 땅에서 일을 잘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할 분은 아니다. 사단과 죄가 등장하기까지는 이 땅에 두려움이 없었다(창 3:10). 아담을 두려워서 숨었었는데, 오늘날 사람들도 두려워한다.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심판이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딤후 1:7/롬 8:15).

 

5.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요일 4:19-21)

 

3장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 말로 본 장을 끝맺고 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죄인들은 사랑에 대하여 거의 아는 바가 없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보여 주셨고(롬 5:8) 우리 마음에 사랑을 심으셨다(롬 5:5/요일 4:10).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로마서 3장 11절은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창 3장),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눅 19:10) 사람을 찾으러 오셨다.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와는 반대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여기 이 땅에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저 하늘나라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요한은 본 서신에서 “형제들” 또는 “형제”라는 말을 17회나 사용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3:11/요 13:34-35/요 15:17/골 1:4 참조). 우리의 마음이 이처럼 냉랭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의무를 다시 말씀하시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된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란 어떤 형제가 생각하거나 행하는 모든 것에 동의해야만 한다는 뜻이 아님을 명심하라. 우리는 그의 개인적인 성격의 어떤 면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대신 이기심이 다스릴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려면 야고보서 4장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