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821(금)
떠나지 않는 가시, 떠나지 않는 은혜 (고후 12:1-13)
바울은 사도직을 의심하는 이들에게 셋째 하늘에 다녀온 신비적인 경험을 간증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약함 때문에 주의 능력이 자기 몸에서 드러난 것을 더 자랑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7절
바울을 통해 하실 일보다 "바울"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여러 큰 계시를 주셔서 사역의 절정에 이를 무렵, 그것 때문에 자고하지 않도록 육체의 가시를 보내 바울을 치셨습니다. 탁월하지만 교만하여 어리석은 사역자가 되기보다는, 부족하지만 겸손하여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더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시련이 내게 보내신 “사탄의 사자”는 아닐까요?
8,9절
바울의 뜻이 아닌 하나님 자신의 뜻을 따라 응답하셨습니다. 자식을 고통 가운데 두시면서까지 자식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고 싶으셨기에 거절 자체가 그분의 은혜고 응답이었습니다. “나”의 건강을 통해 내 능력을 발휘하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몸은 연약해도 겸손하고 강건한 영혼으로 “주”의 능력을 발휘하길 원하셨습니다. 응답되지 않는 기도보다 기도를 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더 가슴을 쳐야 하지 않을까요? 거절의 은혜를 통해 나를 더 낮추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묵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6절
바울은 14년 전 실제로 겪은 신비적인 경험을 소개합니다. 그는 셋째 하늘과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 알 수 없는 말을 듣는 등 주께 환상과 계시를 받았습니다. 거짓 사도들과 견줄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었지만, 그는 마치 이 일이 자신과 무관한 제삼자( “한 사람”)의 일인 듯 담담히 진술하고 있습니다. 자랑할 만한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사도가 정말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질그릇 같이 깨어지기 쉬운 자신의 약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선물로 받은 체험들 때문에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지 못할까 우려했습니다. 방언이나 신유, 예언 자체가 나를 전혀 다른 사람이 되게 한 듯 착각하거나 자신만의 전유물로 여겨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11~13절
표적과 기사보다 “오래 참는 사랑”을 사도의 표로 여깁니다. 십자가의 삶은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표적과 기사는 사탄도 능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떠나지 않는 가시 속에서 떠나지 않는 주의 은혜를 보게 하소서. 그 은혜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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