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822(토)
허비하는 사랑 (고후 12:14-21)
바울은 세 번째 방문계획을 알려주면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이번 방문에서 우려되는 상황들을 미리 알립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4,15절
고린도 방문을 앞둔 바울의 관심은 재물이 아니라 성도의 영혼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미끼로 탐욕을 채우려는 삯꾼이 아니라, 아낌없이 내어주고도 아까워하지 않는 부모였습니다.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처럼(요한복음 10장 12,15절) 자기 자신까지 허비하기를 기뻐하는 사랑을 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성도의 영혼보다 말씀을 전해서 얻을 내 유익에 마음이 쏠린다면(아니 초연할 수 없다면) 어서 회개해야 할 신앙의 적신호가 분명합니다.
16~18절
바울은 재정 후원을 받든지 그러지 않든지 간에 오해와 비방, 곤란을 겪었습니다. 자신이 방문할 때도 재정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고, 바울 대신 방문한 디도 역시 전혀 경제적인 이득을 구하지 않고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도 대적자들은 바울이 “겉으로는 후원금을 거절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헌금을 가로채는(8장1~6절) 이중인격자(1장 17~18절)”라고 모함했습니다. 마땅한 대가를 포기한 신실한 삶의 대가가 냉담과 오해였던 것입니다. 지도자나 누군가를 향한 내 비판은 정당하고 공평합니까? 내 진의가 곡해되었다 할지라도 진실한 삶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성도입니까?
19절
바울의 성실한 설득은 자기변명이 아니라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거짓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말한 것이며, 자기 사랑이 아니라 성도들을 향한 사랑에서 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자기정당화에 익숙하고 또 능합니다. 내 입장만을 강변하거나 진실을 가리고 악을 은폐하는 자기합리화로 공동체를 어렵게 하지는 않는지 돌아봅시다.
20,21절
바울은 대적자들에 의해 부당하게 실추된 사도적 권위 때문에 고린도 교회가 자신의 엄한 경고와 명령을 거절할까 염려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공동체로 인해 세 번째 방문이 기쁨의 교제가 아닌 엄한 책망만 가득한 시간이 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방문하실 때 나와 우리 교회를 보시고 어떻게 회계하실까요? 성경을 통해 들려주신 안타깝고도 애절한 회개의 호소에 잘 응답하고 있습니까?
기도
주는 사랑에 만족해 하지 말고 바울처럼 내어주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섬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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