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02(금)
악에 더 익숙해진 백성들 (렘 13:20-27)
예루살렘의 심판이 그들의 죄 때문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거듭된 경고에도 조금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 완고함은 피부색을 바꿀 수 없듯이 도저히 바꿀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0,21절
유다의 친구를 유다를 다스리는 자로 바꾸십니다. 유다가 아시리아에 대항하려고 바벨론의 손을 잡았지만, 결국 그 바벨론의 노예가 되게 하실 것이란 뜻입니다. 유다에게 맡긴 아름다운 양 떼가 그들에게 살육을 당하고 붙들려가게 하실 것입니다. 나는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시고 나를 친구로 불러주신 예수님께 신실합니까? 그분의 친구인 것을 누구에게나 자랑해도 좋을 만큼 자랑스럽게 여기십니까? 내게 맡겨주신 양 떼(자녀, 이웃, 친구 등)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도록 잘 양육하고 돌보고 있습니까?
25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대신 거짓(바알과 우상숭배의 거짓)을 더 신뢰한 유다에게는 심판만이 합당한 몫이요 분깃이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떠난 삶은 우상숭배의 삶이요 하나님을 망각한 삶이기에,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사망을 그 몫으로 받을 것입니다. 유다의 분깃이던 하나님을 유다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비하신 분깃이 무엇일지는 그분께 대한 내 삶이 결정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2~24절
백성들은 산고의 고통 같은 심판을 당하고 갖은 수치를 겪으면서도 그 이유를 모를 만큼 영적으로 둔감했습니다. 차라리 피부색을 바꾸고 표범의 반점을 변하게 하는 것이 더 쉬웠을 것입니다. 선지자의 눈에는 악을 행하는 데 능숙하고 익숙한 이 백성을 주께로 향하게 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던 것입니다. 악인 줄도 모른 채 악을 행하고 수치를 뒤집어쓰고도 자신에게 도취되어 부끄러운 줄 모르는 영적 치사상태에 이르기 전에, 그래서 사막 바람에 흩어질 뿌리 없는 초개가 되기 전에, 자신의 실상에 직면하여 정직한 대화를 나누어보십시오.
26,27절
선지자는 발정기의 짐승처럼 우상숭배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유다가 다시 정결해질 것이라고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을 수치 가운데 두는 일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정결한 삶을 추구하지 않고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할 길은 없습니다.
기도
가망 없는 저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셨으니, 이젠 거짓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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