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양육 자료실/제자 훈련 교재

<성경탐구 40일>08. 침묵시대

JORC구원열차 2009. 10. 26. 15:32

<성경탐구 40일>

08. 침묵시대

 

“나 참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이것이 침묵시대를 표현하는 한 마디의 말입니다.

노아 홍수 후에 남은 그들조차 썩었음을 확인하고는, ‘그래 이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라고 독백처럼 되뇌이시던 하나님은 포로 귀환 후에 벌어지는 약속의 땅에서의 여러 가지 상황을 보고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데 어떻게 선지자가 나오겠습니까? 그냥 캄캄하던 시기 400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서 계시던 그 3일처럼, 이 400년도 아무 의미도 없는 오직 캄캄하기만 한, 그런 시간들은 아니었습니다. 그 무덤 속의 3일이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듯이, 이 침묵의 시대 속에서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실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 400년으로 돌입하는 마지막 예언이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어 회개운동을 일으키겠다(말4:5-6).’였던 것처럼, 긴 침묵을 깨고 빈들에서 들린 외침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사자(눅1:17)’의 회개를 촉구하는 외침이었습니다(막1:1-5).

 

1. 줄거리 요약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던 영적으로 캄캄한 시기였으나, 그 속에서 메시아 대망이 싹트고 있었다.

 

2. 내용 전개

침묵시대에는 네 개의 주요 개념이 있다.

①세력의 변천 ②정치적 당파들 ③종교적 당파들 ④메시야 대망

 

①세력의 변천 : 주변 세력의 숨가쁜 변천 속에 내부적인 분리가 일어남.

바사에서 헬라로(주전333년 알렉산더에 의해), 그 헬라가 넷으로 갈라져서 이제는 그 중에 하나인 ‘톨레미’에게, 그 다음에는 ‘셀류커스’에게, 그러다가 로마에게 지배를 받는다. 이것이 유대 백성의 부끄러운 식민지 이력서이다. 이런 외부적인 변화 속에서 내부적으로는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인’과 사마리아 중심의 ‘사마리아인’이라는 두개의 분명한 집단으로 나누어지고 있었다.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사마리아인은 ‘그리심산’에 세운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다(요4:20).

 

②정치적 당파들 : 마카비안, 열심당, 헤롯당

이 기간 중에 두드러진 정치적 세력이 있다면 다음 셋이었다.

 

(1)마카비안 : 셀류커스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종교적 탄압에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 세력으로 ‘모데인’의 제사장인 ‘마타디아’로부터 시작되어, ‘마카비(=쇠망치)’라는 별명을 가진 그 아들 ‘유다’로 이어졌다. 결국 주전 164년 12월 14일에 성전을 재 헌당할 수 있었고, 이때를 기념하여 ‘하누카(=수전절)’라는 절기가 지켜지게 되었다.

 

(2)열심당 : 주로 로마를 상대로 암살, 테러를 하며 투쟁하던 그룹들이다. 이들은 ‘셀롯인’, ‘갈릴리 사람’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시카리(sicarii ; 자객)'는 이 열심당 가운데 특별한 집단이었다.

 

(3)헤롯당 : 유대 지역 분봉왕인 에돔사람 헤롯의 가문, 특히 헤롯 안디바를 추종하던 세력으로 정치적으로는 타협주의 자요, 실리주의자들이었다. 종종 사두개인들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③종교적 당파들 : 사두개파, 바리새파, 엣세네파

- 이 기간 중에 형성된 종교적인 세력들로는 다음의 셋이 있다.

 

(1)사두개파

정말 개와 같은 탐심을 종교적으로 위장하고 있는 무리들이었다. 이들은 다윗에 의해 세워졌던 ‘사독’의 후예라고 자칭하면서, 마카비안의 변질된 후예인 ‘하스몬’왕가를 지지하고 헬라화를 주창하면서 부와 권력을 추구했던 귀족주의적, 세속주의적 당파였다. 신학적으로는 육체의 부활이 없다고 보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마 22:23, 행 3:8).

 

(2)바리새파

이들은 사두개파와 달리 하스몬 왕가가 세운 대제사장을 반대했으며, 평민중심이었고, 경건주의자들이었다. 특히 부활에 대한 신학적 견해에 있어서는 사두개파와 정반대였다. 일명, ‘백성의 선생’으로 불렸으며(요3:10), 백성들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었다. 하지만 율법주의에 빠지면서 내면적으로는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형식주의자들이 되고 말았다(눅16:14).

 

(3)엣세네파

극단적인 경건주의자(하시디안)들로 광야에 가서 집단생활을 하던 무리들이었다. 세례 요한이 이 엣세네파의 일원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은 ‘사해사본’이라는 인류에게 귀중한 유산을 남겨 주었는데, 이것 외에는 그 당시에는 별로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한 채 사라졌다.

 

④메시야 대망 : 핍박과 혼란 속에서 경건한 사람들은 메시야를 기다림.

‘메시아’ 또는 ‘구세주’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리라고 구약 전반에 걸쳐 예약된 분이다. 이 메시아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만 이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영적으로만 이해하는 등 많은 혼란이 있지만, 여하튼 메시아가 오시면 잘못된 모든 것을 고치시고, ‘회복’하시리라는 기대를 갖고 간절히 기다린다는 면에서는 공통적이었다. 이 400년의 침묵 시간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1) 언어의 통일

헬라 문화의 영향으로 지중해 연안의 모든 세계가 헬라어라는 공용어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2)행정의 통일

로마 제국이 모든 지역을 다스리므로 국경이 없었고, 또 잘 발달된 도로로 인해 여행이 용이한 상태였다.

 

(3)영적 준비

유대인들이 심한 핍박과 정치적 모멸을 당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폭발할 정도가 되었고, 또 이 마음을 가진 유대인들이 각 나라로 흩어져 살면서 이 소식을 전하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