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탐구 40일>
06. 분열왕국시대
1. 들어가기
지금 우리나라와 그 때의 이스라엘 사이에는 몇 가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일 두드러집니다. 더구나 그 분열의 이유가 또 비슷합니다. 내부적 계층 간 갈등이라는 요인, 주변 국가들의 정략, 그리고 영적인 이유 이 세 가지 면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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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
한국 |
내부적 계층간 갈등 |
유다지파(기득권 계층)와 그 나머지 지파 사이의 갈등(노동계층) |
전통적인 지주 및 기득권 계층과 소외 되어 왔던 계층 간의 갈등 |
주변 국가의 정략 |
애굽 바로가 이스라엘의 세력을 꺾으려고 공작을 폄(왕상11:14-) |
소련, 미국의 이해관계가 분단의 주요 요인이 됨. |
영적인 이유 |
솔로몬의 범죄(우상숭배)가 왕국분열의 원인(왕상 11:31-33) |
해방 직후 벌어진 교계 내부의 분열 (신사 참배 처리 문제) |
이렇게 분열된 나라는 북 이스라엘이 북한과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고, 남 유다가 남한과 유사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북한의 유사점 -둘 다 북쪽이 위치했다. -영토가 남쪽보다 넓다. -영적으로 더 타락했다. |
*남유다와 남한의 유사점 -둘 다 남쪽에 위치했다. -영토가 작다. -영적인 정통성을 유지했다. |
단, 남한이 북 이스라엘과 비슷한 면이 있는데, 그것은 인구가 많다는 것과 사회가 사치와 향락에 훨씬 더 물들었다는 면입니다.
2. 줄거리요약
북 왕국은 줄기차게 멸망의 길로 가고, 남 왕국은 갈팡질팡하며 멸망을 향해 갔습니다.
3. 내용 전개
분열왕국 시대는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공부할 수 있습니다.
①왕국분열의 이유 ②북 이스라엘 ③남 유다
①왕국 분열의 이유 : 솔로몬의 범죄와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 분열(왕상11-14장)
왕국이 분열한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앞에 이야기 한 것을 좀 더 보충함).
-지파공동체의 문제점이 드러남(유다지파 주도의 통치에 다른 지파가 반발).
-애굽의 바로 ‘시삭’이 이스라엘, 특히 중계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솔로몬의 왕국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정치적 공작을 폄(反 솔로몬 체제 사람들을 후원함).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정치적인 미숙함.
그러나 역시 이 모든 현상적인 이유의 저변에는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계셨고, 결국 하나님이 분열시킨 것입니다. 왜? 솔로몬의 범죄 때문에, 그나마 왕국이 망하지 않고 분열만 된 것은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②북 이스라엘 :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갔던 불의한 왕국(왕상15-왕하17장)
북 이스라엘의 운명은 첫 왕인 여로보암에 의하여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왕국이 분열되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어서 백성들이 절기 때에 그곳에 갔다가 변심할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는 중요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백성들로 하여금 섬기게 한 그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악한 길’그것이 북 이스라엘의 왕들을 재는 척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기고 북 왕국의 번성기를 열었던 ‘오므리’왕과 그 아들 아합도 북 왕국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왕들입니다. 나라는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온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의 우상, 특히 아합의 왕비였던 이세벨을 통해 들어온 두로와 시돈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를 음란히 섬기게 한 죄가 큰 왕들입니다.
북 왕국의 또 하나의 특징은 정변이 무수히 일어났다는 것입니다(6~7번). 이는 정통성이 없는 왕들이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 왕국은 250년간을 계속되다가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했습니다(왕하 17:22-23)
③남 유다 : 다윗의 의로운 길을 따르다가, 벗어났다가 하던 변덕스러운 왕국 (왕상15-왕하25장)(대하10-36장)
남 왕국의 관건은 왕들이 다윗의 길을 따라 가는가, 아닌가였습니다. 남유다에서 대표적으로 다윗의 길을 따른 왕은 ‘히스기야’와 ‘요시아’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왕으로 성전을 보수하고, 우상숭배를 타파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의 산헤립의 공격해 왔을 때 하나님만 의지하여 물리쳤던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요시아도 역시 신실한 왕으로 특별히 성전을 보수하다가, 잃어버렸던 신명기 원본을 찾아 그것에 의한 종교 갱신을 일으켰던 왕이었습니다. 그는 히스기야의 개혁에서 남은 부분이었던 산당까지 모두 없애는 개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와 시대를 읽는 정치적 감각은 좀 부족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애굽왕 바로 느고와 싸우러 나갔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했습니다.
이 외에도 남 유다에는 신실한 왕들이 많았으나 다윗처럼 그렇게 일관되게 신실하지 못하고 중간에 하나님을 떠나는 왕들도 많았고, 혹은 처음부터 악한 왕들도 있었습니다. 남 왕국의 특징은 정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변이 일어나도 결코 성공하지 못하는데(두 번 정도의 시도가 있었으나 오히려 정변을 일으킨 자가 백성에 의해 축출 됨), 이는 다윗의 신실함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400년을 지속되던 남 왕국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때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남은 자가 되어서 신앙을 지켜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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