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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그리스도의 십자가

12-3. 국가의 권위

by JORC구원열차 2009. 11. 22.

12-3. 국가의 권위

 

로마서 13장을 주의 깊게 연구해 보면 국가가 항상 옳다고 단언하면서 국가를 신성시 하는 것과 국가가 항상 틀렸다고 단언하면서 국가를 악마화 하는 것의 두 극단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나온 국가의 권위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그 기원, 그것이 주어진 목적, 그것이 시행되어야 하는 수단, 그리고 그것이 받아야 하는 승인 등의 네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요약해 보겠다.

 

첫째, 국가의 권위의 기원은 하나님이시다. “가가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1절상).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1절하).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거스림이니”(2절). 이러한 관점은 이미 구액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의 기능을 오직 ‘권위’라는 면에서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봉사’라는 에서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관원’(이는 정치가로부터 재판관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모든 관리를 포함하는 총칭적 언급인 듯하다)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4절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4절하)이다. 그리고 우리가 공세를 바쳐야 하는 이유는 당국이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기’(6절)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국가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양심’이 되는 이유는 그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5절).

 

결배는 하나님 한 분께만, 그리고 모든 정사와 권세의 주시며(엠 1:21-22) ‘땅의 임금들의 머리’(계 1:5; 참고. 19:16)이신 그리스도께만 돌려져야 한다. 국가는 신적 제도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에 대해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는 일은 우상 숭배가 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국가에 권위를 주신 목적은 선을 보상하고(그럼으로써 그것을 증진하고) 악을 처벌하기(그럼으로써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한편으로 국가는 국가가 그 뛰어난 국민에게 부여하는 영예에 의해, 선을 행하는 자들을 ‘칭찬’(그것을 인정한다는 표현)하며(3절) ‘네게 선을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4절). 그것은 분명 선한 정부가 주는 모든 사회적 유익, 곧 평화를 수호하는 것, 법률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 인권을 보호하는 것, 저의를 증진하고 궁핍한 자를 돌보는 것 등을 포함한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그리고 그분의 진노의 대행자로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법에 비추어 처벌한다(4절).

 

사도 베드로가 아마도 로마서 13장을 반영하여 그리고 분명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에서 핍박을 받기 시작한 후에 글을 쓰면서 국가의 동일한 신적 기원과 그 건설적 목적을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벧전 2:14) 것이라고 단언할 때, 그 역시 이러한 것들을 일괄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다.

 

셋째, 국가의 권위가 시행되는 수단은 그 목적이 차별성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통제되어야만 한다. 무죄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죄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분명 때로는 강제력이 사용될 필요가 있다. 권위는 힘을 의미한다. 비록 우리가 통제되지 않고 원칙이 무시된 힘을 사용하는 폭력과 악행하는 자를 체포하고 구속하며 재판하고, 유죄가 선고되면 그들에게 형벌을 가하기 위해 사용되는 통제되고 원리에 입각한 힘이 사용되는 강제력을 구별해야 하지만 말이다.

 

넷째, 국가의 권위에 대한 올바른 승인을 해야 한다. 국민은 통치 당국을 하나님이 제정하셨기 때문에 그 권위에 ‘굴복’해야 한다(1절). 따라서 대항해서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며, 그분의 심판을 초해한다(2절). 그러나 단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선한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굴복’할 필요가 있다(5절). 그렇다면 우리의 ‘굴복’에는 무엇이 포함되는가? 분명 우리는 법에 순종하고(벧전 2:13), 세금을 내야 한다(6절). 우리는 또한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딤전 2:1-2). 본을 보이는 것, 납세, 기도는 국가가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다하도록 격려하는 세 가지 방법이다.

 

우리의 순조에는 한계가 있어야만 한다. 비록 이론상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지만’(3절), 바울은 로마의 한 행정관이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했으며, 자기 자신도 이따금 로마의 불의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만약 국가가 하나님의 사자가 되지 않고 마귀의 사자가 되고, 교회를 보호하는 대신 교회를 핍박한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라 용에게서 유래한 악한 권위를 행사한다면(계 13장)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자녀들이 악한 부모를 존경해야 하는 것처럼 여전히 국가를 존경해야하지만 굴종적인 순종은 그들에게 요구되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 있다.

 

국가의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국가에 주어졌으므로 우리는 국가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되는 바로 그 시점까지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 그 점에서 만일 국가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명하든가 아니면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금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국가에 불순종해야만 한다. 사도들이 공회에 말했듯이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국가의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하지만 숭배해서는 안 된다. 그 권위의 목적은 악을 처벌하고 선을 증진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전제적인 국가가 존재할 구실은 없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는 강제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차별적 폭력이 아니라 최소한도로 필요한 강제력이다. 우리는 국가와 관리들에게 무비판적이 비굴함이 아니라 분별력 있는 순종을 하면서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