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율법주의자의 계산
마태복음 18:21-19:12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 18:21,22).
일견 율법주의는 의로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주의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엄격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킨 경우 자신이 선한 존재라고 자부하는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주의자는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대적했던 바리새인들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신들이 충족시켜야 할 율법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싶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요구사항만 충족시킨다면 더 이상 지킬 것이 없다고 자부하며 안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의 환상을 깨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도 결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완전해질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베드로는 용서의 문제에 대해 율법주의적인 계산을 했습니다. 그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되 몇 번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그의 어리석은 사고방식을 지적하시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용서는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한 번은 바리새인들이 이혼에 대한 분명한 규칙을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분은 남녀의 결혼 관계에 적용되는 근본적인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예수님이 특정한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셨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한 경건한 사람이 “누가 우리의 이웃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원수에게도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유한 사람에게 그가 가진 소유의 18.5%를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그 소유의 전부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육체적인 성행위만을 간음으로 보지 않으셨고 마음속으로 음욕(淫慾)을 품는 것도 간음으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형제에게 분노하는 것도 곧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주의, 즉 인간의 행위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는 생각을 가차 없이 비판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스러운 점은 그들이 복음의 핵심을 놓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구원을 베푸신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몇 번이고 용서하는 것이 어려웠던 때는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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