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1장]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한 비애
[내용개요]
본서는 예루살렘의 현재 닥친 파멸의 참담함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면서 느끼는 아픔과, 민족적 회개를 기대하는 열망을 시적 형태로 애절하게 표현했다. 본장에는 유다의 실존적 상황이 탄식조로 묘사되어 있고, 본서 전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석적인 단서를 제공해 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의 언약적 관계에 있어서의 신분을 밝히고 현재의 부정적인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종교적인 이유를 제시해 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북받치는 슬픔을 느끼고 있는 예레미야 자신의 애가(1-11절)와 예루살렘 성을 의인화시켜 슬픔을 노래하는 부분(12-22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시인은 바벨론에 의해 비참하게 밟힌 예루살렘 성으로 인해 애통하였습니다. 원수들이 예루살렘 성을 조롱함을 인하여 슬퍼하는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공의로 판단하셨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보응받음같이 그 대적들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보응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1. 예루살렘의 멸망과 비참
1) 위로자가 없는 몰락한 예루살렘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의 몰락을 보면서 슬퍼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도성으로서 열국 중에 크고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열방으로부터 조공을 받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황금기라 칭하는 다윗과 솔로몬 왕 때에는 그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과부와 같이 처량한 신세가 되게 하셨고 이방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때 아무로 위로해 줄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유일한 위로자이신 하나님을 배반하였을 때 그들은 위로를 받을 어떤 친구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리석게도 애굽을 의지하여 바벨론의 침입을 막아 보려 했지만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었으므로 애굽이 바벨론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a. 시온이 땅에 앉음(사3:26)
b. 열방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애2:9)
c. 치욕을 당함(렘24:9)
2) 모든 영광이 떠난 도성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남을 당하여 열방에 흩어져 거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평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평강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와 같은 비참한 처지가 된 것은 그들의 많은 죄 때문에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당하는 고난은 자신들의 행위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바벨론 제국이 그와 같이 강하여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보응하시려고 바벨론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진멸시키게 하심으로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한때 열방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예루살렘의 영광이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a. 대적에게 패함(레26:17)
b.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됨(사1:21)
c. 모든 원수가 비소함(애2:16)
2. 여호와의 진노로 인한 슬픔
1) 여호와의 진노의 날
예루살렘이 모든 영광을 잃고 비천하게 되어 열방의 조롱거리가 된 것은 여호와의 진노하신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심임을 예레미야는 증거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골수에 불을 보내시어 이기게 하시고 발 앞에 그물을 베푸사 종일토록 곤비케 하셨다는 진술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할 수 없는 바벨론의 손에 그들을 붙이셨고 이스라엘의 죄악의 멍에를 더하사 피곤케 만드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바벨론을 당할 수 없었던 것은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죄의 멍에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a. 맹렬한 불이 야곱을 사름(애2:3)
b. 뼈가 열기로 하여 탐(욥30:30)
2) 유다를 술틀에 밟으심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하시고 소년들을 부수셨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는 바벨론 군대에 의해 이스라엘의 용사와 소년들이 무참히 살육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다는 말은 포도가 술틀에 밟혀 으깨짐으로써 포도주가 만들어지듯이 유다가 무참히 밟혀 으깨짐을 당했음을 뜻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당한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망시키신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멸망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a. 그 시체가 밟힘(왕하9:33)
b. 주께서 다 멸시하심(시119:118)
3) 위로받지 못하는 슬픔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태를 인하여 눈물이 물같이 흐르도록 운다고 진술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을 소생시키실 하나님께서 멀리 떠나셨으므로 위로받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사면에 있는 대적들을 명하시어 예루살렘을 치게 하셨으므로, 예루살렘이 열방 중에 불결한 자같이 되어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임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예언하신 대로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에 대해 마땅한 보응을 하셨던 것입니다.
a. 광야 목장을 위해 슬퍼함(렘9:10)
b. 공의로우신 하나님(신32:4)
3. 대적들에 대한 심판을 구함
1)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패역이 심히 크므로 환난 중에 마음이 괴롭고 번뇌한다고 진술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마음에 고통이 되었던 것은 이스라엘의 대적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자체에 있는 죄악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밖으로 칼의 살육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보아 달라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의 회복이 칠십 년 후가 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a. 창자가 끓으며 간이 쏟아짐(애2:11)
b. 마음이 수금같이 소리를 발함(사16:11)
2) 대적에 대한 심판을 구함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일을 인하여 원수들이 기뻐함을 탄식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적들이 주께서 반포하신 날이 이를 때에 이스라엘이 당한 것과 같이 수치와 치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악을 징벌하심같이 대적들의 죄악을 징벌하여 주실 것을 구하면서, 자신의 탄식이 많고 마음이 곤비함을 아뢰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대적에 대한 심안 간구는 개인적인 한을 풀어 달라는 요청이기보다는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여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벌하셨지만 결코 그들이 의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하나님 앞에 공의로 심판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자가 차별 없이 자신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마지막 심판 때에 완성되어질 것입니다.
a. 지나가는 자마다 박장함(애2:15)
b. 행한 대로 보응받음(시9:16)
결론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받음을 슬퍼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구원을 간구하였습니다. 민족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슬퍼하는 예레미야 자세는 하나님 백성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줍니다. 성도는 죄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하나님 백성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적막히 앉았는고. 적막히는 '홀로, 외로운, 쓸쓸한'이라는 뜻으로 고립되고 분리된 상태로 고독한 삶을 의미한다.
본문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7절. 돕는 자가 없고. 돕는 자가 없다는 말은 도울 만한 능력이 있는 자가 없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침공한 바벨론의 힘에 대항할 나라가 전무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11절. 비천하오니. '가볍다, 무가치하다, 낭비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은 결국 이방 나라에게도 조롱거리가 되었음을 증거한다.
13절.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뼈, 골수'를 뜻하는 <!x,[,:에쳄>은 인간이 당하는 육체의 고통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된다.
'불'을 나타내는 <va:에쉬>은 본문에서 바벨론의 잔인한 침탈을 가리킨다.
고적하여. '허약하다, 병에 걸리다'라는 뜻으로 육체적 또는 영적으로 무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22절. 곤비하니이다. '한숨 쉬다, 신음하다, 헐떡거리다'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스라엘의 비참함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신학주제] - 예루살렘 성의 애가.
저자는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을 의인화하여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방식은 예루살렘 성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삶을 총체적으로 함의하고 있다는 신학적인 이해에 근거한다.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자행했기 때문에 다른 이방인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의 현재 상황이 외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한다. 이러한 호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죄를 근본적으로 용서해 주시고 언약을 완전히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저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는 애가를 부른 것이다.
[영적교훈]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파괴된 사실에 대해 심각한 슬픔을 느꼈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하나님을 떠나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욱 충실하도록 먼저 노력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이웃에 있는 불신자들을 하나님의 섭리 안으로 이끌어 들여야 하는 것이다. 각 교회를 부흥시켜야 된다는 근시안적인 전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전도를 해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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