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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장별요약강해-구약

[겔 12장] 심판으로 임할 기근 예고

by JORC구원열차 2012. 10. 8.

[겔 12장] 심판으로 임할 기근 예고

 

[내용개요]

 

유다 백성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거짓된 낙관주의에 함몰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본장에서 일련의 징조와 메시지를 통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강조하며, 그릇된 희망을 포기하고 현실을 수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구를 옮김으로써 이스라엘 족속의 패주를 예언했으며, 먹고 마시고 떠는 행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할 기근과 궁핍을 미리 알려 주는 선지자의 두 가지 상징적 행위를 기술한 부분과(1-20절) 심판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두 가지 메시지를 소개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21-28절).

 

[강 해]

 

앞 장인 11장에서는 유다 방백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망치다 바벨론 군대에 잡혀 처참한 죽음을 당할 것을 말씀으로 선포하는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본장은 같은 내용이 에스겔의 상징적 행동으로 선포되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단지 덧붙여지는 것이 있다면 유다 방백과 함께 유다 거민들도 그 재앙에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과 도망하는 도중 공포에 떨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선포된 심판은 속히 시행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1. 이사의 비유

 

1) 패망을 의미

예레미야는 맑은 날에 홍수를 대비하여 배를 건조한 노아와 같이(참조, 창6:22) 예루살렘이 아직 평안한 가운데 있을 때에 마치 패전한 백성이 적군을 피해 도망하는 것같이 필수품만을 보따리에 싼 뒤 밤에 성벽을 뚫고 성 밖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 예레미야의 상징적 행동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패망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도망은 패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a. 예루살렘의 패망(렘4:20)

b. 유다에 이를 패망(겔7:25)

 

2) 밤중에 도주할 것을 의미

예레미야의 야간 이사 행동이 말해 주는 두번째 의미는 유다의 방백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전쟁에서 패한 뒤 실제로 개구멍을 통해 황망히 도주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온 유다 백성들이 적군 앞에서 비굴하게 수치를 드러낼 것을 이 상징은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만한 자에게 이처럼 비참에 빠지도록 벌하시는 법입니다.

 

a. 야반도주(왕하25:4)

b. 예루살렘 성에서 끌어내심(겔11:9)

 

3) 도망하다 살육 당할 것을 의미

도망하는 유다 방백들과 백성들 위에 그물을 치고 올무에 걸리게 한다는 것(참조, 겔12:13)은 그들이 도망에 성공하지 못하고 바벨론 군대의 추격망에 걸려 죽음을 당하거나 형벌을 당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조차 그들을 벌하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자들에게(참조, 겔9:9,겔11:3) 참혹한 죽음의 형벌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한편 이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어 도망하다 잡힌 시드기야는 눈이 뽑히고 그 아들들과 방백들은 살육 당하였습니다(참조, 왕하25:1-9,왕하25:18-21).

 

a. 도망하다 잡혀 죽음(렘52:27)

b. 뒤를 따라 칼을 빼심(겔5:2)

 

2. 떨며 식음하는 비유

 

1) 멸망의 근심 가운데 놓임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또 다른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 명령은 떨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음료를 마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번째 의미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공격에 의해 멸망을 목전에 두고 예루살렘 성내에서 근심하는 가운데 음식과 물을 마시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조국의 군대는 힘이 없고 침략군의 군대는 강성하여 언제 마지막 보루가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 하에서는 어느 때에 적의 칼에 죽을지 모르므로 극도의 불안과 공포 속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상황 속에는 결코 편안히 식음을 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a. 주의 얼굴을 가리우면 근심에 싸임(시30:7)

b. 민답 중에 물을 되어 마심(겔4:16)

 

2) 도망의 고통 가운데 놓임

도망자의 불안과 공포와 고통은 도망자만이 느낍니다. 도망은 잡히면 끝장이 되는 외길의 긴급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루살렘 함락과 함께 유다의 방백들과 백성들은 적군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 위해 도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도주를 보고 바벨론의 군대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그들을 추격합니다. 그때 그들은 예루살렘 성내에서 느낀 것보다 더 심한 불안과 고도의 고통에 시달릴 것입니다.

 

a. 두렵게 하심을 당할 때 황망함(시88:15)

b. 악인의 공포(계7:16)

 

3) 황폐함의 적막 가운데 놓임

유다는 바벨론 군대의 군화에 의해 짓밟히고 약탈당함으로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참조, 겔12:20). 황폐한 땅에서 느끼는 적막감 또한 불안과 공포 그것을 넘어 섭니다. 그것은 절망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다가 겪어야 할 이 모든 고통은 그들의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그들이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밖에 있는 자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듯이 말입니다(참조, 마25:30).

 

a. 가인의 공포(창4:14)

b. 하갈의 고통(창21:14-16)

 

3. 묵시의 필연적 성취와 속진성

 

1) 묵시 성취의 필연성

에스겔서의 전반부는 거의가 범죄한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대선지서들도 대부분 이스라엘과 유다가 받을 죄값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심판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심판은 없다고 떠들어댔으며 백성들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예언이 반드시 실행될 것을 힘주어 선포하십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한번 선포된 것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a. 경영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심(사14:24)

b. 여호와의 말이 불변의 보증(겔39:8)

c.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마6:10)

 

2) 묵시 성취의 속진성

하나님의 묵시는 반드시 이루어질 뿐 아니라 속히 이루어집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묵시는 이루어져도 더디 이루어지므로 아직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 하나(참조, 마25:47-51) 그것은 얕은 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는 인간이 생각치 못하는 때에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때 준비하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죽음의 고통을 맛보아야만 할 뿐입니다.

 

a. 악의 재앙은 속히 임함(잠24:22)

b. 도적같이 오는 심판의 날(벧후3:10)

c.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

 

결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리고 속히 악인을 심판하러 오십니다. 그때 심판의 주가 오시면 악인들은 하나님을 피해 도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서 도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사로잡혀 사단과 함께 지옥 형벌에 처해지게 될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입니다. 이 고통을 피하려거든 지금 당장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의 말씀을 따라 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단어해설]

 

6절. 얼굴을 가리우고. <hs;K:카싸>는 '숨기다, 덮다'를 뜻하는데 사물이나 사람을 분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왕 히스기야의 비참한 종말을 암시하고 있다.

 

10절. 예조라. '운반하다, 들어올리다'라는 동사 <ac;n::나사>에서 유래한 말인 <aC;m:맛사>는 '경고의 말' 즉 특별히 위협적이고 예언적인 말을 가리킨다.

 

18절. 떨면서. 이 단어의 기본형 <a['r":라아쉬>는 떨다, 흔들리다'라는 뜻으로 대부분 하나님의 주권을 묘사하는 문맥에서 사용된다. (참조,욥39:20).

 

22절. 날이 더디고. 여기서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때를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패가 지체되리라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28절. 이루리라. <hc,[;yEw]:웨예아세>의 기본형 <hc;[:아사>는 '하다, 만들다, 행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창조 기사와 관련하여 사용되고 인간의 행위에 관한 문맥에서도 빈번히 쓰여진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명령 또한 반드시 지체하지 않고 실현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신학주제] - 행구를 옮기는 에스겔.

 

에스겔은 짐 꾸러미를 가지고 포로들이 끌려가는 것과 같은 처량한 모습으로 처소를 옮긴다.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 갈 때 여행 도구를 준비해야 된다는 사실을 미리 보여 주셨다. 본장에서는 특별히 유다 왕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 갈 것에 대해 알려 준다. 이처럼 선지자가 왕을 지목하여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의 독특한 위치와 연관되어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왕은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그래서 성경은 왕을 '목자' 즉 하나님의 양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푸른 꼴로 인도하여 양육하며 돌보는 자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백성들을 의와 진리 가운데로 바로 인도하지 못하고 모범을 보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말씀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경고하기 위해 에스겔이 행구를 옮기는 행동을 한 것이다.

 

[영적교훈]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당시 이스라엘 족속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대신 잘못된 거짓 선지자들의 술수를 믿고 따랐다. 유다에는 헛된 술법을 사용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성행하여 백성들을 미혹하였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어지럽게 하는 많은 유혹들이 있다. 그 유혹들을 올바로 분별해 낼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갖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