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9장] 악인에 대한 심판과 메시야의 도래
[내용개요]
본장에서는 여호와의 경고가 나타나는데, 특히 유대인의 불의한 이웃들인 수리아인들, 두로인들, 블레셋인들, 그리고 그 밖의 이웃들을 치는 예언이 나타난다(1-6절). 그러나 그들 중 회개하는 몇몇에 대한 긍휼도 암시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의 약속이 있다(7-8절). 한편 그들의 의로운 왕 메시야 에 대한 예언과 메시야의 강림에 대한 서술, 그리고 메시야의 왕국과 그 왕국의 성격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9-10절).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하여 짊어지게 된 의무에 대한 설명과(11-13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큰 구원 예표로 허락하신 이스라엘의 승리와 성공에 대한 예언이 나타난다(13-15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위해 풍부한 기쁨의 약속들을 마지막 부분에 제시하고 계신다(16-17절).
[강 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이방국들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시면서도 이방인들도 구원에 동참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또한 메시야가 왕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하시며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에게 영광이 임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즉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속의 비밀을 예언한 것입니다.
1. 이방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
1) 불에 삼키울 바다 권세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문다는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 예언입니다. 이방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는 곧 이스라엘의 구원의 때가 임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받았지만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상황에서 앗수르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에 대하여 심판을 선포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교만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의 바다 권세를 치시어 불로 삼키게 하실 것을 선언하심으로 교만한 자가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교훈을 주셨습니다.
a. 열왕을 풍부케 한 무역(겔27:33)
b. 진노의 날에 무익한 재물(잠11:4)
2) 교만으로 심판받을 블레셋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민족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는 두로와 시돈을 경유하여 블레셋의 여러 성읍들을 삼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블레셋도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임을 예언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징벌이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고 회개시키기 위한 징계의 채찍이 될 것임을 교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구원할 자를 택하시고 여러 가지 역사를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주이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실 뿐 아니라 자비와 긍휼이 한없으신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a. 하나님을 모욕한 블레셋(삼상17:36)
b. 받은 재물을 누리지 못함(전6:2)
3) 멸망받게 될 노학자
하나님께서는 포학한 자가 다시는 이스라엘 지경으로 지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눈으로 친히 보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본문에서 다시는 이스라엘이 포학자들에게 유린당하지 않을 것임을 예언하였는데, 이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구원과 그 백성의 승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악인을 이 땅에서 몰아내시어 그 백성으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a. 젊은 사자의 어금니가 꺾임(시58:6)
b. 압박하는 자가 꺾임(시72:4)
2. 왕으로 오실 메시야
1) 유다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
본문에서 시온의 딸에게 크게 기뻐하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심은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그들의 필요를 책임져주심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왕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임하심은 곧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심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한때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이방의 포로가 되는 고난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다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거하게 되었고 다른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a. 시온에 서신 왕(시2:6)
b. 다윗의 위에 앉으신 왕(사9:7)
2) 겸손한 왕으로 오실 메시야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이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사역 말기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나귀 새끼를 타심으로써 성취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겸손하심으로 구속을 이루시고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며 그들의 왕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 보좌 우편을 버리고 스스로 낮아지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처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으로 구속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a.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심(마11:29)
b. 나귀 새끼를 타심(막11:7)
3) 화평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으시겠다고 예언하심으로 전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전쟁이 사라지고 오직 평화와 안녕만이 임할 것을 약속하신 것으로, 메시야 시대에 임할 이러한 평화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화평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 사람에게 전해집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평화의 복음이 세상에 널리 전파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영적인 평화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a. 화평의 복음(행10:36)
b.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심(엡2:16)
3. 구원받은 자들에 대한 번영 약속
1) 보장으로 돌아올 구원받은 자
본문에서는 언약의 피를 인하여 이스라엘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물 없는 구덩이는 고난을 상징하고 있는데 곧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는 압박과 억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이 보장으로 돌아오게 될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이는 고난 중에도 절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가지고 구원을 갈구하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심을 의미합니다. 즉 이방의 포로 되었으나 믿음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 경건한 자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복음을 믿는 모든 성도를 의미합니다.
a. 시온에 올라가게 하심(렘31:6)
b. 큰 안위를 받게 하심(히6:18)
2)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다고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을 이방인들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삼으시어 이방 세계를 멸하시고 이스라엘로 승리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심으로 이스라엘은 막강한 이방 군대를 초개와 같이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전쟁은 외면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간의 싸움이었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이방 나라들이 섬기는 우상들과의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심은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히 지키심이었습니다.
a. 약한 자가 다윗 같음(슥12:8)
b. 힘으로 띠 띠우심(시18:32)
3) 면류관의 보석같이 빛날 백성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를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날에 구원받은 여호와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땅 가나안에서 면류관의 보석같이 빛날 것이라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보석같이 빛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에 거할 때에 모든 일에 형통함이 있을 것임을 약속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풍요와 영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a. 인자하심이 보배로움(시36:7)
b.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시50:2)
결론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따라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영광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실망치 말고 믿음 안에서 구원의 소망을 품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2절. 지혜. 원어 <hm;k]j;:호크마>는 '지식, 앎, 기술'을 가리키는데 경험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모든 지식을 총칭한다.
6절. 잡족. '혼혈아, 나그네, 이방인'을 나타내는 말로 아스돗이 멸망하여 그 땅에 아스돗의 토착민 대신 여러 혼잡 민족들이 살게 될 것임을 나타낸다.
9절. 나귀. 나귀는 노새나 말이 전쟁과 관련되는 것과는 달리 평화나 겸허와 연관된다(참조,삼하19:27). 따라서 본문에서 나귀를 탄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임할 메시야가 평화를 가져올 겸손한 분임을 암시한다.
14절. 번개. 구약에서 번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그분의 현현을 암시하는 말이다.
15절. 호위하시리니. 원어 <@n"G::가난>은 '막다, 보호하다'는 뜻으로 어떤 대상의 위를 덮어 그 대상을 위험에서 보호하는 행위를 나타낸다.
[신학주제] - 메시야의 겸손.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는 이 세상 권세를 가지고 임하시는 이가 아니고 도리어 지극히 미천한 자리에서 겸비를 그 처소로 하시는 분이다. 아담이 범죄하여 인류를 고난에 빠뜨렸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께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깊은 실연의 골짜기가 놓여지게 되었고,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조금도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사망 가운데 놓여 있는 상태를 구원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직접 인간의 자리에까지 내려오시는 겸손을 보이셨다. 인류를 구원하려는 그 구원자가 인류의 지극히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셨다. 인간의 자리에까지 내려오시는 것만도 말할 수 없는 겸손이요 비하인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인간들보다 비천한 상태에 태어 나지고 성장하셨다. 말구유는 이 비천함을 가장 극대화시켜 보여 주는 물건이다. 비천하게 태어나신 예수는 인간으로 처절한 수난을 받으셨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몸소 감당하셔야 했던 겸비요 겸손이었다. 예언서는 언제든지 이와 같은 메시야 곧 구원자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 메시야는 겸손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왕으로 등극하셨다. 메시야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으심 모두는 하나님의 겸비하심 그 자체이다. 구원자 예수는 십자가 위에 수난을 당하심으로 사람과 하나님을 화목케 하여 신자의 마음에 진정한 화평을 건설하셨다. 전쟁과 무력으로 평화를 가져오시지 않았다. 몸소 비천해지고 겸손해짐으로 화평을 가져오신 평강의 왕이다.
[영적교훈]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는 폭력이나 전쟁에 의한 것이 아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의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킨 평화이며, 모든 인류에게 본을 보이신 평화이다. 이 평화는 스스로 낮아져 희생하신 평화이다. 신자들의 평화는 겸손히 나를 낮추고 희생할 때 찾아온다. 나를 높이고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는 남의 희생을 통해 내가 유익을 얻으려는 이기적인 관계이다. 가장 비천한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의 겸손과 낮아짐이 우리 삶에 적용될 때 신자들의 상태는 윤택해진다. 비록 외적인 화려함과 세상적인 풍요로움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영적인 만족과 평화가 찾아올 수 있는 비결은 사랑과 긍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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