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3장] 회개를 촉구하심
[내용개요]
두어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자에 대해 질문하자 예수께서는 실로암 망대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다(1-5절). 또 무화과나무 비유도 들려주셨다(6-9절). 또 안식일에 십팔 년 동안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 주셨고(10-17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를 말씀하셨다(18-20절). 예루살렘 여행 중에 구원에 대한 질문에 답변해 주셨다(21-30절). 어떤 바리새인들로부터 헤롯의 예수 체포 음모를 전해 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메시야적 사역을 선포하시고 예루살렘을 위하여 애곡하신다(31-35절).
[강 해]
본장은 다섯 개의 작은 단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 이들 소단락들은 서로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나름대로 짜임새가 있는 구조를 보여 줍니다. 본장의 전개는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반감을 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1. 죄를 회개하라
1) 회개하라
예수님 당시 로마 총독인 빌라도가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고 있는 몇몇 갈릴리 사람을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죽은 갈릴리 사람들이 그들의 죄악 때문에 당연히 죽은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 사건을 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갈릴리인이 다른 갈릴리인보다 더 악한 죄인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며 회개하지 않는 자마다 결국 멸망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a. 각양 더러운 악(고후12:21)
b. 화를 당함(마11:21)
2)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
예수님은 빌라도가 제물에 피를 섞은 사건 및 실로암의 망대 파건 등 두 가지 실화를 들어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이어서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비유로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본서의 독특한 자료에 의한 것으로, 마21:18-22과 막11:12-14에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과 병행합니다. 그 내용은 전연 다르나 취지는 같습니다. 주인이 관심을 갖고 사랑했던 무화과나무는 삼년 동안이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열매를 맺지 못하고 땅만 버리는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명했습니다. 이에 과원지기는 1년 만 더 기회를 주도록 간청했습니다. 과원지기의 간청을 들은 주인은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할 기회를 더 주신다는 뜻이었습니다.
a. 과실을 있게 하려고 성도를 택하신 주님을 교훈해 줌(요15:16)
b. 심판을 유보시킴(출34:9)
3) 안식일의 치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때 그 곳에는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율법주의적 선입관에 얽매여 있는 회당장은 안식일에 치유하신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분을 내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과 그를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해주셨습니다.
a. 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임(막2:27-28)
b. 선행으로 무식한 말을 막음(벧전2:15)
2. 예수의 교훈
1) 겨자씨 비유
예수님께서는 메시지의 핵심이 되는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겨자씨를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앗으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작은 겨자씨에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한 것은 그 나라의 시작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보잘것없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데 그 강점이 있습니다. 겨자씨는 크게 자라서 나중에는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이게 됩니다.
a. 사람이 밭에 심은 씨(마13:31-32)
b. 거할 곳은 전능자의 그늘임(시91:1)
2) 누룩 비유
예수님께서는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누룩 비유 역시 겨자씨 비유에서와 같이 큰 결과를 대조하는 의미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누룩은 대체로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누룩은 그 급속한 활동력으로 음식을 빨리 부패하게 하므로 악의 전염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러한 급속한 활동력이 선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적은 누룩이 가루 서 말을 부풀리듯이 그와 같은 역동적인 힘을 성도들이 발휘해야 합니다.
a. 잘못된 교훈(갈5:7-9)
b. 하나님의 나라(마13:33)
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예수님께서 각 성과 각 촌을 돌아다니시면서 전도 여행을 할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구원 얻는 자의 수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좁은 문은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교훈하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집주인이 한번 문을 닫게 되면 그 문은 절대로 다시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a.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함(마7:14)
b.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가야 함(창7:15-16)
3. 탄식하시는 그리스도
1) 행악자들
예수님은 슬피 울며 이를 갈 자들은 행악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행악은 단순한 윤리적 차원의 악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행악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의 비유를 통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언약 백성으로 일찍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받은 자였지만 교만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a. 불의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얻지 못함(고전6:9)
b. 구원 축복을 이방인에게 넘겨주었음(롬11:11)
2) 고난을 각오하심
예수님께서 심판에 관하여 가르치시고 있을 때 한 바리새인이 나아와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므로 여기를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전언 내용을 들으신 주님은 헤롯을 가리켜 '여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헤롯을 통렬하게 경멸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께서 헤롯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죽을 것임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역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a. 죄인의 손에 죽음 당함(마17:22-23).
b. 미리 예언된 사실임(행3:18)
3) 탄식하시는 예수
주께서 예루살렘을 반복하여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며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비극의 성읍인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이십니다. 더 나아가서는 전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안타까움의 탄식이십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파송된 자들을 돌로 쳤습니다. 예루살렘은 주님의 간절한 초청과 호소를 거절한 채 의로운 피를 흘린 죄의 대가로 멸망당할 운명에 처하였습니다.
· 선지자를 죽인 성(마23:37)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 회개를 촉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악한 자들이라도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는 일을 하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3절. 회개. 전인격적인 변화 즉 결단하여 회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13절. 안수하시매. 손을 얹고 기도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안수는 무엇보다 상대방을 편안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24절. 좁은 문. 이것은 진리를 따르는 자가 당할 당연한 고난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암시하는 것이다.
27절. 행악. 이 말은 일차적으로 윤리적인 무당 행위를 가리키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모든 행위들이 포함되는 것이다.
33절 .여우. 교활함의 대명사인 짐승으로 여기서는 헤롯을 가리키고 있다.
[신학주제] -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
예수께서 별다른 설명 없이 실로암 망대 사건을 언급하신 것으로 보아 이 사건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무척 알려진 사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이 언급을 현대적인 언어로 바꾸면,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서울 시내에 거주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런 참변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실로암 망대 사건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건 같은 대참사가 발생한 것은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희생당한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대리적인 고난과 죽음을 당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희생자들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고 희생자들의 죽음은 나의 죽음인 것이다. 그들은 내가 받을 고통을 받았고 내가 당할 죽음을 죽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하여 희생자들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하나님의 세상을 향하신 뜻을 깨닫고 우리의 죄악된 행실을 돌이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적교훈]
어떤 사람이 구원에 대하여 질문하자 예수께서는 그와 관련하여 하나님 나라와 성도 개개인의 책임에 관하여 가르치셨다. 예수의 말씀을 요약하면 첫 째, 성도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둘째, 준비되지 못한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여기서 준비되지 못한 자란 주의 이름으로 일하였으되 악행을 즐겨 일 삼던 자들이다. 셋째, 지금은 나중된 자이지만 장차는 먼저 될 자도 있다는 내용이 다.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도리를 잘 깨닫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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