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1장] 기도에 관한 교훈
[내용개요]
제자들이 예수께 기도문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다(1-4절). 그리고 연이어 벗이 강청하는 비유를 들어 기도의 자세를 가르쳐 주신자(5-13절). 예수께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을 본 사람들 중에서 예수를 비난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 집안끼리 분쟁하면 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어찌 귀신의 왕이 귀신을 내쫓을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셨다(14-26절). 무리가 모였을 때 예수께서 이 악한 세대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 줄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27-32절). 그리고 등불 비유도 말씀하셨다(33-36절). 한 바리새인이 식사 초청을 했는데 예수께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이상히 여기자 예수께 서는 사람의 마음이 깨끗한 것이 더욱 중요함을 가르쳐 주신다(37-44절). 그리고 율법사가 이에 대하여 이의 제기를 하자 예수께서는 율법사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짐을 더 무겁게 한다고 책망하셨다(45-54절).
[강 해]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그에게 도전을 합니다.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모함하려고 시도합니다. 메시야가 자기의 나라에 왔으나 그의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정말 모순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또 다른 놀라운 구원의 일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워서 우리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1. 기도를 가르치시다
1)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모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르게 기도하고 바르게 간구할 수 있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우리에게는 행복과 즐거움이 됩니다. 기도를 모르고 우리의 영혼이 윤택할 수 없으며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없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우리가 성장하는 길이며, 영혼이 윤택해지는 비결인 것입니다.
a. 기도에 관한 첫 기록(창4:26).
b. 기도의 필요성(시65:2).
2) 기도에 대한 가르침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간구하는 것을 모른 체 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이 간구하는 것은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따라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와서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며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진실된 마음과 간절한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의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향해서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a.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영교임(시91:14).
b. 영혼의 호흡(롬12:12).
2. 유대인들과의 논쟁
1) 바알세불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많은 기적과 이사를 행하시자 이에 시기하며 음해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능력 행하시는 것이 귀신의 힘을 입어서 가능한 것이라고 모함합니다. 이것은 예수를 심각하게 해하려는 박한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이 귀신의 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고 그들의 일을 없애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사단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며 사단과의 싸움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제 공중 권세 잡은 자와 메시야와의 결전이 이루어집니다. 메시야의 승리와 사단의 멸망은 정해진 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사람이라면 앞으로의 일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a. 하나님 앞에서 양방이 같이 섬(신19:17).
b. 여호와가 이스라엘과 쟁변하심(호4:1).
2) 참된 행복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의 모든 것이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래에 대한 보장이 없습니다. 오직 불안과 어려움 가운데 생을 마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따르며 지키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의 사랑을 받는 비결은 바로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열려 있으며 누구에게나 보장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며 단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a. 여호와의 규례를 지킴(신10:13).
b.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심(롬4:6).
3) 요나의 표적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합니다. 예수가 메시야라면 표적을 보여서 믿을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표적은 필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메시야를 정치적인 왕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가르침이 필요할 뿐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그들에게 메시야가 어떠한 분이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지고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그를 따를 때 그로부터 구원을 받게 됩니다.
a. 그리스도 부활의 예표(마12:39-40).
b. 회개케 함(욘3:9-10).
3.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
1) 몸의 등불은 눈
사람들이 자신이 옳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려고 여러 가지 외식을 행하지만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은 자신의 삶과 행동을 통해서 이웃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그 마음속에서 빛이 비추어 다른 사람에게 비추이는 등불같이, 선한 사람은 그의 선함으로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이요, 의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른 삶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온전한 모습을 갖추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a. 근면(잠31:18).
b. 사람 앞에 비춤(마5:15).
2) 외식하는 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마음의 모든 것까지 깨끗해야 합니다. 외식으로 모습을 꾸미고 위장한다고 해서 그 마음의 악독한 것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진정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본성이 변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형식에 매여서 본질을 왜곡시키고 다른 이들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내용이 없어지면 형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릇에는 내용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여러 형식들은 내용을 전하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진정한 마음으로 형식에 우리의 내용을 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a.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함(막7:6)
b. 예수가 정죄하심(마23:15)
3) 다른 이의 길도 막는 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율법 학자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짧은 지식으로 예수를 평가하고 판단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저주하시되 의로운 피에 대한 값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죽음과 멸망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고 완전히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멸망에 이르게 하는 자들이라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a. 망령된 행위(삿20:10)
b. 허물과 죄악(렘30:14)
결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의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과 규례를 지키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복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항상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그에게 나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향하여 복 주실 것입니다.
[단어해설]
2절. 거룩. 종교적,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상태보다 다른 것과 구별되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이름은 여타의 이름들과는 구별된 특별한 것임을 보여 준다.
8절. 강청. 원어적으로는 '협박'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모든 체면을 벗어 던지고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것을 가리킨다.
12절. 전갈. 독을 가진 짐승으로 여기서는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는 행위를 의미한다.
15절. 바알세불. 원어적으로는 '높은 왕'을 뜻한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을 모두 귀신의 능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20절. 손을 힘입어. '능력을 받아'를 뜻한다.
28절. 지키는 자. 원어적으로 '파수하다, 따르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32절. 니느웨 사람들. 요나의 전도를 받고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이들은 완악한 유대인들에 대조되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38절. 손 씻지 아니함. 예수께서 율법에 명시된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42절. 공의.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이 없는 의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형식적인 예물만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의를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학주제] - 주기도문.
예수 당시에는 많은 랍비들이 있었고, 그 랍비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학파가 형성되어 있었다. 각각의 학파마다 독특한 기도문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이 우리도 기도문을 만들자고 요청했고 예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주기도문에는 마태판(6장)과 누가판(11장)이 있는데 이 양자를 비교해 보면 주기도문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첫째, 마태판이 길고 누가판이 짧다. 이로 보건대 대체로 누가판이 원형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여러 상황에서 여러 번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주기도문의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생겼을 수도 있다. 둘째, 마태판과 누가판은 내용의 차이는 없으나 표현상의 차이는 약간 있다. 이는 제자들이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 문자 하나 하나에 중요성을 두지 않고 자유스럽게 활용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셋째, 주기도문이 제시된 양자의 문맥이 다르다. 마태판은 기도에 관한 가르침을 베푸시면서 기도의 모범으로 주기도문을 제시하고 결론적으로 용서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참조, 마6:5-15). 그러나 누가판에 의하면 제자들의 요청에 의하여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다. 이로 보건대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한 번만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가르쳐 주셨을 가능성이 많다. 한편, 주기도문의 전체적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을 부름, 둘째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문제, 셋째 인간 세상에서의 수평적인 문제, 넷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다. 주기도문은 모든 신자들에게 영원한 모범 기도서이다.
[영적교훈]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외식에 대해 여섯 가지를 지적하시면서 화가 있으리라고 경고하신다. 그 내용은 첫째 지나친 형식주의와, 둘째 교만과, 셋째 위선과, 넷째 실족케 함과, 다섯째 무자비함과, 여섯째 배타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식들은 바리새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 성도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형식적인 예배와 영적인 교만과 배타적인 선민주의 등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 성도들이 진정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면 모든 외식과 위선의 탈을 벗어 버리고 사랑과 평화와 겸손의 삶을 살아나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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