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장별요약강해-신약

[눅 10장] 복된 삶

JORC구원열차 2014. 9. 30. 13:04

[눅 10장] 복된 삶

 

[내용개요]

 

예수께서 전도 사역을 위하여 칠십 인의 제자를 2인 1조로 짝지어서 각동 각처로 파송하였다(1-16절). 칠십 인이 전도 여행 후 놀라운 신유와 축사의 능력이 일어남을 보고하였고, 예수께서도 기쁘게 보고를 받으셨다(17-24절). 어떤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려는 의도로 영생에 대하여 질문했으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역으로 질문하심으로써 그 율법사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율법의 핵심임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자 율법사는 다시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을 했는데 예수께서 이에 대해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25-36절). 그 후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유하실 때 말씀을 듣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셨다(37-42절).

 

[강 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진정한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함께하는 사람이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 이끄는 곳에는 저주와 심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행복이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참 행복을 찾아서 인생의 여정을 바르게 걸어가야 합니다.

 

1. 칠십 인의 제자들을 보내시다

 

1) 칠십 인을 파송하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과 함께 칠십 인의 제자들을 여러 동네에 보내십니다. 그들은 가는 곳에서 예수께서 명하신 일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전하고 그들에게 이 나라에 들어오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기를 전하는 종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다른 것을 가지고 가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희망이요, 보장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준행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a. 복음을 널리 전함(롬10:14).

b. 복음을 전함(엡4:11).

 

2) 저주받은 도시

예수께서 보내신 제자들과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많은 기적과 이사를 행하신 도시들이 오히려 복음을 받지 않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저주와 심판이 임하리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의 일들이 일어납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말씀이 선포되었다면 그 곳에는 이제 선택의 일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과, 하나님을 대적하고 멸망을 길을 가든가 자신이 선택해야 합니다. 저주받은 도시들은 이미 예수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서 멸망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a. 의도적인 불순종(렘44:17-18).

b. 마음이 완고함(요12:37-40).

 

3) 칠십 인의 보고

칠십 인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명을 감당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는 것은 그들이 한 일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이루신 일들에 대한 감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사단이 권세를 잃고 멸망당하는 것을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단에게 세상 권세를 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기뻐할 것은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받아야 할 것은 외적인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신분이 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멸망의 자리에서 벗어나 생명의 자리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 만물을 다스리심(암4:13).

b. 원하시는 것을 다 행하심(시115:3).

 

2. 진정한 행복

 

1)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은혜는 진정으로 겸손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들에게는 구원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서 구원의 길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예수께 나아와서 자신의 모든 죄된 본성을 내어 놓고 용서함 받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철저히 의뢰하는 사람들이 그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비밀이며 감추어진 것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메시야의 오심이 아직도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겸손한 전적인 의뢰로 하나님의 이루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a. 기묘하고 광대함(사28:29)

b. 위대함(렘32:19)

 

2) 제자들의 복

제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며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생활하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의 사랑을 받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원했던 일입니다. 선지자들이 원했고 믿음의 선진들이 바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제자들은 진정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비밀한 것들을 설명하시고 감추어진 일들을 밝히 드러내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제자들은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그 무엇으로도 그들의 행복을 대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초대에 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a. 하나님의 나라 백성 된 자(시33:12)

b. 지혜를 얻은 자(잠3:13-14)

 

3. 올바른 삶

 

1)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인간의 가장 큰 문제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허무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께 질문을 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율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요 삶의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은 바로 율법의 실천입니다.

 

a.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됨(신8:3)

b. 믿음으로 얻음(요5:24)

 

2) 사마리아인의 비유

강도를 만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를 도와준 사람은 외적인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유대인의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말뿐인 사람보다 실천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 진정한 이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은 마찬가지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말로 베푸는 선행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실천으로 보여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의미 있는 행동이 됩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진정으로 자비를 베풀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a. 믿음이 있어야 함(딛1:15)

b. 바르게 행해야 함(행24:12-13)

 

3) 마르다와 마리아

마르다하 마리아는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나무랄 데 없었습니다. 누구도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선택은 예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입니다.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예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다른 것들보다도 중요하고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그의 곁에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인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a. 생명의 말씀(요6:68)

b. 간구함(마15:27)

 

결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말하는 것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러한 일반적인 것에 대해서 거의 맹목적으로 따라다니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뒤로 하고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우리의 길은 언제 어떻게 잘못될지 모릅니다. 항상 주님께 나아와 우리의 모습을 내어 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단어해설]

 

3절. 어린 양. 겸손과 연약함을 비유하는 말. 즉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영적인 능력이 아직 미숙함을 염려하고 계시는 것이다.

19절. 뱀과 전갈.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응징되는 사단을 상징하는 말이다.

33절. 사마리아인. 이방인을 상징하는 말로 예수께서는 형식적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을 질타하고 이방인도 하나님 나라에 초대받았음을 암시.

 

[신학주제] -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예수님의 비유에는 한 가지 의도가 있다. 그 의도를 무시하고서 영적으로만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비유의 핵심을 오히려 놓쳐 버리게 된다. 본 비유는 내 이웃이 누구냐는 율법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라고 이웃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으셨다. 그 대신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가서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본 비유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불쌍한 자의 이웃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들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이야말로 율법이 명하는 바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한 본보기이다.

 

[영적교훈]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과연 누가 진정한 우리의 이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만 하느라고 이웃을 돕는 실제적인 일을 소홀히 하는 잘못을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누가 이웃인가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이웃이 되어주는 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셨다. 백 마디의 탁상공론보다는 한가지의 실천이 소중함을 기억하고 항상 실천하기를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