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과 그리스도
차례
01. 성막에 대한 서론적 이해
02. 성막의 명칭들
03. 성막의 위치와 건축 및 재료
04. 성막뜰의 울타리와 출입문
05. 번제단
06. 물두멍
07. 성소와 지성소
08. 성소로 들어가는 문
☞ 09. 진설병상
10. 순금등대
11. 향단
12. 지성소의 기구들
13. 지성소의 휘장
14. 경건의 시간의 위한 제언
제9장 - 진설병상
1. 상(床)과 떡
진설병상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말씀을 주목해 보자.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정금으로 싸고 주의에 금테를 두르고..."(출 25:23-24).
이미 살펴본 대로 조각목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는 정금으로 싸여졌다. 나무와 금의 만남은 그리스도의 신인(神人)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을지라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의 본성을 갖고 있지 않으셨다. 성경은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고 말한다.
한편 하나님께서 진설병상에 대해서 모세에게 지시하실 때에 "상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출 25:3)라고 명하셨다.
여기서 상 위에 놓인 이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아름다운 상징이다. 떡은 으깨어지는 과정을 거친 고운 분말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공생애 기간 동안 이 세상에서 받으셨던 고난을 나타낸다.
떡은 또한 뜨거운 열에 노출되어 구워져야 한다. 이것은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이스라엘에게 받으신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떡에는 효모(yeast)를 넣지 않았다. 성경에서 효모는 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효모를 넣지 않은 떡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아름답게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떡은 밀을 베어 내어 그것을 으깨어 분말로 만든 후, 뜨거운 오븐에 굽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그것은 죽음과 고통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을 거친 산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찢어지는 듯한 괴로움과 갈보리 언덕에서의 타오르는 고통을 경험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던 모든 고난이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길이었음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 피방울 같이 흘리신 그리스도의 땀과 십자가 위에서의 고난을 우리가 진정으로 알게 된다면, 예배의 형식만 갖춘 빈껍데기 신앙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겪으신 것들을 깊이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주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데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게 될 것이다.
로마서 12:1-2은 모든 성도들에게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떡
성막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것이고, 그 준비하심은 특히 영혼의 양식을 상징하는 진설병상에서 두드러진다.
이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출애굽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스라엘 민족은 어린양의 피로 장자 재앙시 심판으로부터 구원되었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에서 애굽 민족과 구별되었다.
성경에서 애굽은 종종 세상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역시 세상에 거하고 있었을지라도 그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들은 필연코 애굽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메마른 광야를 행진해 나갔는데 단지 하나님의 권능만이 그 행진을 가능케 했다. 광야는 그들이 영원히 거주할 장소는 아니었다. 그곳은 단지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가지 위해 거쳐야 할 장소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을지라도 세상을 통과하여 지나가야 하는 성도들의 이 세상에서 삶을 예표한다. 성경은 아브라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준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9-10).
구약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행하실 것을 믿음으로 내다보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전까지는 믿음으로 드리는 동물 희생 제물의 피의 번제를 받으셨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라고 히 11:13에서 계속한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우리 각자는 세상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항상 반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태도는 딛 2:11-13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따라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갈 1:4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구속사역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예수께서는 죄의 정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의 주장으로부터도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지만 거기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이 세상에서 비록 우리가 많은 고난을 겪게 될지라도 그 때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따라서 성막 안에 예비되어 있는 진설병상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의 광야 생활을 도우셨는지를 계속적으로 기억하게 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계속적으로 영혼의 양식을 준비하고 공급하셨으며 그들이 그것을 먹음으로써 광야 생활을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요 6:51)이시라. 즉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10:10) 태초부터 하나님이 예비해 두셨던 생명의 떡이시다. 그리고 성육신하심으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이 되셨고, 우리는 그 말씀을 섭취함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 말씀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영적인 성장을 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구약의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했다. 특히 성경 중 가장 긴 장으로 이루어진 시편 119편에서 기자는 신자의 삶에서 차지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비중에 대해서 거듭 강조하며 이야기한다. 이 웅장한 시편에서 몇 구절을 살펴보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다"(시 119:9).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재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시 119:30).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10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시 119:104).
이 모든 말씀은 우리들이 세상을 사라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말씀의 떡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교훈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예표로서의 떡
성소 안의 상 위에 놓여진 떡은 매일 매일의 하나님의 직무를 수행했던 제사장들의 식량으로 주어졌다. 그것은 생명의 떡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하늘로부터 내렸던 만나보다도 더 참 떡이 되셨던 자신을 보이시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같은 맥락 안에서 주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 6:48).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요 6:51).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말씀의 중요성은 요 6:63절에서 잘 나타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또 당신의 살을 먹는 것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사실적인 육체의 살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말씀하셨던 것을 믿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은 생명력 있게 주어진다. 우리는 지금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현재도 우리에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역사한다. 성도들의 양식은 살아있는 말씀(예수 그리스도)과 기록된 말씀(성경) 모두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한편 성막의 떡은 규칙적으로 새것으로 갈아 놓았는데 이것은 우리가 매일 매일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할 필요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전에 받았던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체가 이전에 하루 섭취했던 영양분을 가지고 그 다음 날까지 견딜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어제 아무리 말씀을 공부하는 데에 전념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오늘을 살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자라가고 그 지식에 젖어들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사도 바울은 그 자신을 완전함에 도달한 자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이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2-14)라고 말한다.
매일 매일 신선하게 말씀을 섭취해야 할 필요성은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때 매일 매일 섭취했던 만나에서 가장 잘 보여진다. 예수께서도 구약 시대의 만나를 먹는 것에서 그분의 말씀을 섭취하는 것을 비유하셨다(요 6장).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서 만나를 내리실 때 모세에게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출 16:7)라고 말씀하셨다.
만나는 아침에 하늘로부터 내렸고, 아침에 거두어 들여야 했다. 저자에게는 이것이 하루를 시작하기 전 이른 아침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할 필요에 관한 아름다운 상징으로 다가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만나에 대해서 이렇게 지시하셨다.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출 16:16). 각 사람은 그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 거두어야 했다.
필요한 정도 이상을 거두어들인 만나를 다음날 아침까지 보관할 때에는 그것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출 16:20). 여기에는 중요한 교훈이 내재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날 그날의 양식을 섭취해야 한다. 오늘의 영양을 어제 섭취한 양식에 의존해서도 안 되며, 내일 먹을 양식을 오늘 한꺼번에 섭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4. 떡을 먹는 자의 자세
성막의 성소 안에는 의자가 놓여 있지 않았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선 챌 떡을 먹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구출받은 날 밤에 유월절 어린양과 발효시키지 않은 누룩없는 떡을 먹었던 방식을 기억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언제라도 신속히 애굽을 떠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언제라도 응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분의 즉각적인 부르심에 응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섭취하고 그것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께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고 하신 말씀을 체험하게 된다.
당신은 생명의 떡이니 그리스도를 섭취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분께 헌신되어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셨을 때 우리가 그분을 더욱 많이 알려는 열정보다 한낱 종교적 모임이나 조그마한 교리문제에 대한 논쟁에 빠져 있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울 것인가.
열두 살밖에 안 되셨던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보라. 마리아와 요셉이 유월절을 맞아 전례대로 예루살렘에 어린 예수와 함께 올라갔다가 절기를 마치고 집으로 출발하였다.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중에 어린 예수가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예루살렘 돌아왔더니 예수는 성전에서 율법 선생들과 함께 앉아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고 계셨다. 마리아는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 이 어린 예수처럼 성도인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함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고 있는가?
예수께서는 생명의 떡이 되신다(요 6:35).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이에 관한 시편 기자의 고백을 들어보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여호수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성도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말씀이 된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매일 매일 말씀의 양식을 섭취하여 우리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를 위한 섬김의 제사로 드리기를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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