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에스더 5-10장 / 하만의 몰락
이 장들에 나오는 사건들은 세 번의 잔치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
1. 환희의 진치 (에 5-6장)
유대인들은 3일 동안 에스더와 함께 금식하였다. 이제는 믿음으로 한 발을 내딛고 왕의 보좌 앞에서 중재해야 할 때이다. 동양의 왕들이 그들의 백성 앞에서 거의 신과 같은 존재인 것을 명심하라. 그들의 명령은 옳거나 그르거나 간에 순종되어야 하는 것이다. 에스더가 생명을 걸어야 했던 것은 물론이다. 아니, 하나님의 손에 위탁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왕좌가 있는 방 입구에 모습을 나타내자마자 왕은 그의 홀을 들어 그녀를 들어오게 했다!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있다”(잠 21:1). 에스더는 매우 현명하게 행동하여 크세르크세스에게 진짜 소원을 즉석에서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왕과 하만을 바로 그 날 잔치에 초대하였다. 그녀는 여자의 직관으로 왕이 음식과 술 앞에서 약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자기의 요청을 들어줄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하만을 포함시킴으로 그에게 안전하다는 거짓 감정을 유발시켰다.
음식을 충분히 먹은 후에 술을 마실 시간이 되고 왕은 예외적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는 에스더의 마음속에 무슨 문제가 있음을 알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왕비는 다른 날로 미루었으며 왕은 그녀의 지혜에 굴복하였다. 하만은 이러한 왕과의 상류급 잔치를 즐기게 된 것으로 인해 마음이 교만에 부풀어 의기양양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평화와 안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잃어버린 죄인들처럼 하만은 이미 정죄 아래 있었다.
하만이 그날 멸망을 당해야 한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는 문에서 모르드개를 보고 지나가야만 했는데 모르드개는 그에게 절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교만으로 진노하여 모르드개에 대한 어떤 허물을 날조하기로 결심하였다. 아담처럼 하만도 아내의 말을 들었으며 그녀의 충고를 따랐다. 그는 75자의 십자가를 세웠으며 모르드개를 거기 매달아 죽이려고 하였다(“장대”란 히브리어로는 “나무”를 의미한다. 바사 사람들은 올가미에 매달아 죽이지 않고 그 희생자를 죽여서 시체를 나무에 매달거나 말뚝에 찔러 놓거나 또는 십자가에 달아 놓았다).
나무의 높이는 온 성이 그 희생자를 볼 수 있을 정도였으며 7장 3-10절은 왕의 종들이 왕궁에서도 볼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하만의 세속적인 환희는 오래 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6장에서는 모르드개가 마침내 왕의 생명을 구원한 것에 대하여 상을 받게 된 것을 본다.
모르드개는 아마도 시편 37편 1-15절을 묵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느 날 그의 착한 행실을 인하여 그를 높이실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일이 하만에게 얼마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 이 사건은 그를 겸손케 하여 그의 사악한 계획을 변화시키게 해야 했을 것이다. 사실 그의 아내도 유대인들을 이길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 하만과 그의 아내가 이 일을 논의하고 있을 때에 종이 와서 두번째 연회에 하만을 데리고 갔다.
2. 응보의 잔치 (에 7장)
하만과 모르드개의 대결, 그리고 하만의 결과적인 몰락은 시편 37편의 완전한 예화이다. 이 시를 주의깊게 읽고 어떻게 적중하는지 보자(시 73편 참조). 하만은 잔치에 왔으며, 그의 마음이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그의 죄가 그를 찾아내고 있었다(잠 16:18/잠 18:12 참조). 왕은 에스더에게 그녀의 요청을 말하라고 했고, 에스더는 마음을 열어 자기 백성의 구원을 간청하였다.
4절에서 그녀가 왕의 포고령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에 유의하자(3:13 참조). 의심할 나위없이 그녀는 포고령을 자주 읽었을 것이며 “여호와 앞에 펼쳐 놓았을 것이다”. 왕은 그녀가 유대인임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았다. 그가 놀란 것은 그처럼 사악한 사람이 그의 신하라는 점이었다. 그 원수가 하만이라는 것을 알고는 충격이 훨씬 컸다. 이 군주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참된 성품에 대하여 얼마나 소경이었는가! 그는 경건하고 지혜로운 모르드개를 문 밖에 두고 하만은 궁궐을 출입토록 허락했던 것이다. 그가 나중에 암살을 당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잠언 16장 14절에는 “왕의 진노는 죽음의 사자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음이 몹시 혼란하여진 아하수에로 왕은 잔치하는 홀을 떠나 정원으로 나갔다. 이로 인해 악한 하만은 왕비 앞에 엎드려 빌며 자비를 구할 기회를 얻었다. 육신과 얼마나 닮았는가! 육신이 우리의 생활을 조절할 때에 죽이는 일을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심판할 때 육신은 참으로 겸손하며 결백해진다! 바울이 “육신을 의지하지 말라”고 썼던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빌 3:3).
하만은 용서를 구하는 데 너무도 열성적어서 왕비의 침상에 쓰러지는데, 이것은 왕에 대하여 지나친 일이었다. 왕은 그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했으며, 그가 모르드개를 위하여 준비해 두었던 그 나무에 달리게 하였다. “의인은 환란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잠 11:8). 구약의 헬라어 역본(70인경)에는 9절 끝이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종들은 이 말에 기꺼이 순종하였다. 왜냐하면 하만은 이기적이고 교만한 행정을 하여 많은 적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3. 추억의 잔치 (에 8-10장)
하만이 일단 제거되자 궁정에는 평화가 깃들었으며 모르드개는 하만이 누렸던 권세를 얻었고,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에스더가 유대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권력의 변화는 그리스도인의 승리에 대한 아름다운 예화이다. 한 번 육신이 못박히면(롬 6-7장) 하나님의 평화와 능력이 우리의 삶을 다스릴 수가 있다(롬 8장).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왕은 이 칙령을 철회할 수가 없었으며 아홉달만 있으면 유대인들은 약탈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었다(8:9/3:13 비교). 제비를 뽑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함을 우리는 볼 수 있다(3:7). 왜냐하면 왕이 전체 제국에 새로운 칙령을 내릴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더는 한 번 더 왕에게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영을 내릴 것을 간구하였다.
왕은 모르드개에게 왕을 대신하여 영을 내릴 권세를 주었다. 새로운 칙령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방어하고, 유대인의 원수 하만과 같은 사람들을 멸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왕은 옛 법을 철회하지 않았으며 다만 그것을 대신하는 새로운 영을 내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죄와 죽음의 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정복되었다(롬 8:1-12).
10-14절은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예화이다. 이것은 생명과 죽음의 문제이다! 서기관들은 서둘러 메시지로 썼으며 사무대신들은 왕국 곳곳에까지 서둘러 전하였다. 만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심정의 반만큼만 가져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조될 것이다(잠 24:11-12 참조).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에 많은 다른 사람들이 고용되었던 것에 유의하자. 이는 마치 오늘날 하나님께서 많은 일군을 사용하심과 같다. 물론, 유대인들이 그 메시지를 듣고 믿었을 때 이것은 그들에게 큰 기쁨과 구원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바사 사람들이 그들을 대항하여 싸움으로써 왕의 진노를 사려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상 많은 바사인들이 형벌을 피하려고 할 때에 “자신들을 유대인이라고 불렀다.”
12월이 되었을 때(9장), 유대인들은 승리할 준비를 갖추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편에 왕의 칙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대인의 적들이 살해되었으며, 하만과 열 아들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9:6-10). 히브리 성경에서는 이 열 아들의 이름들이 장대처럼 긴 난에 열거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8장 11절의 칙령에 명시되어 있었으나 전리품을 취하지 않았음에 유의하자. 적들은 물론 왕의 명령대로 유대인의 재물을 취했을 것이지만(3:13)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이 적보다 낫다는 것을 입증해야했다.
16절에는 75,000명 이상의 적들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달 14일에 유대인들은 안식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즐거워하였다. 모르드개는 이 큰 구원을 기념하기 위하여 12월의 14, 15일을 축일로 정하게 하였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이 날을 부림절로 지켜온다.
26절은 부림의 뜻을 설명한다. 이것은 “부르”(Pur)의 복수인데 “부르”는 “제비뽑기”를 의미한다(3:7). 이 절기에 대해 구약의 인준은 없으나 이 절기는 수천 년 동안 지켜오고 있으며,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은혜와 능력의 본이 되어오고 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담대히 행동한 믿음의 사람 모르드개의 승진과 번영을 기록함으로 끝맺고 있다. 우리는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에스더를 잊을 수 없다. 에스더서 전체는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능력과 섭리에 대한 놀라운 간증이다.
로마서 8장 28절은 이 책으로 말미암아 입증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어서 핵심 성경 연구 시가서 중 <욥기 편>이 계속됩니다.
'구원의 이정표 > 핵심성경연구-구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욥기2 - 욥 1~3장(욥의 재난) (0) | 2009.07.03 |
---|---|
욥기1 - 욥기 서론/개요 (0) | 2009.07.03 |
에스더2 - 에 1~4장(왕관을 쓴 에스더) (0) | 2009.07.03 |
에스더1 - 에스더 서론/개요 (0) | 2009.07.03 |
느헤미야4 - 느 8~13장(말씀의 회복) (0) | 2009.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