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욥기4 - 욥 38~42장(욥의 구원)

JORC구원열차 2009. 7. 3. 14:23

3. 욥기 38-42장 / 욥의 구원

 

이제 우리는 본 서의 절정에 이른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무대에 등장하신다! 욥은 하나님이 그와 대면하여 말씀하실 것을 요청하였는데(9:35/13:22/31:35-37), 이제 바로 그렇게 되었다. 하나님이 행하신 첫번째 일은 하나님의 목적들을 어둡게 하며, 이 상황에 전혀 아무런 빛을 비추지 못한 엘리후의 헛된 생각을 쓸어버리는 것이었다(2절은 언제나 바르게만 말했다고 볼 수 없는 욥에게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하나님은 개인적인 방법으로 그의 종을 처리하는 일을 진행하신다.

 

1. 하나님이 욥을 겸손케 하심 (욥 38:1-42:6)

 

하나님은 욥에게 우주와 그 운행에 관한 간단한 질문들을 하신다. “네가 여호와에 대하여 그처럼 많이 알고 있는 듯하니 내가 만든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꾸나!” 이 부분에 나오는 핵심을 찌르는 일격이다. “네가 나에게 도전해 왔는데, 이제는 내가 너에게 도전을 해야겠다.”

 

하나님은 창조로부터 시작하신다(38:4-11). 물론 지구에는 어떤 “기초”는 없다. 하나님은 과학적인 용어들이 아니라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신다.

 

사실, 욥기 26장 7절은 세계가 무엇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힌다. 이 구절은 학식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이 거대한 거북이나 다른 피조물로 말미암아 지탱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에 기록된 것이었다.

 

26장 10절은 지구가 구형임을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는 빛과 어두움 사이의 깊은 경계를 넘어 원을 그린다”(버클리역본). 이 구절 역시 지구의, 한 쪽이 어두울 때 다른 한 쪽은 빛 가운데 있음을 가르친다.

 

욥기 38장 7절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 천사들이 기뻐한 것을 말한다. 12-15절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태양이 동터옴과 빛의 퍼짐에 대하여 질문하시며, 16-21절에서는 땅과 바다의 측정에 대하여 물으신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를 측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다음으로 하나님은 무생물의 자연, 곧 눈과 우박, 비와 얼음으로 방향을 돌리신다(22-30절). 22절은 “눈의 보물창고”라고 번역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눈과 우박을 숨겨두는 비밀 창고이다. 그러나, 눈이 참으로 보물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눈은 공기 중의 질산칼륨을 모아 두었다가 땅에 저축하는 일을 돕기 때문이다. 어디에 비가 오고 눈이 와야 할 것을 결정하는 책임을 지고 싶은 사람이 누구겠는가! 하나님만이 이 우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모든 일들을 조화있게 만들 수가 있으시다. 31-38절에서 하나님은 구름, 비와 더불어 별과 별자리에 대하여 질문하신다.

 

하나님은 다음으로 동물의 생태에 대하여 질문하신다(38:39-39:30). 인간이 사자를 먹이기 위하여 사냥하는가? 까마귀는 음식물을 위해 인간을 의존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 24절에서 이에 답하신다. 산에 있는 들염소, 평지에 사는 들나귀, 들소(9-10절)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공급해 주실 것을 바란다. 자기의 둥우리가 어디 있는지 가끔 잊어 버리는 타조조차 전능하신 분의 돌보심을 즐긴다(13-18절). 18절은 타조의 굉장한 속력을 상기시킨다. 19-25절의 말(馬)은 전쟁에서 원수를 직면했을 때의 모습이다. 26-30절에는 매와 독수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욥이 생태계를 바라볼 때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역사하고 계신 손을 보게 된다.

 

“이제, 네가 나를 비난하고 나와 논쟁을 했는데 네 대답을 들어보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욥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한 가지뿐이었다(40:3-5).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이제 축복으로 한 걸음 가까와졌으나, 아직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을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질문을 계속하신다. 이번에는 두 마리의 큰 짐승, 즉 하마(짐승 /15:24 절)와 악어(괴물/41장)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이 짐승들은 둘 다 욥 당시에 대단한 감탄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짐승들이다. 이들은 팔레스틴이 원산지는 아니다.

 

여기 나오는 하마에 대한 헬라어는 단지 “큰 짐승”이라는 뜻인데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것이 하마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추정한다. 물론 욥은 이러한 짐승을 본 일이 없을 것이며 상상으로 창안해 냈을 것이다! 악어도 마찬가지이다. 욥은 감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없었고 일을 시킬 수도 없었으며 애완용으로 여길 수도 없었다(41:1-8). “그 만드신 자가 피조물보다 강함이 확실할진대 내 앞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18절에 나오는 재채기는 “경멸하다”는 말의 고어이며, 악어가 씩씩거리는 모습을 가리킨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18-21절에서 고래가 물을 내뿜는 것을 연상한다. 어찌 되었든지, 본 장 전체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의 위대함을 나타내어 결국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로 욥은 자신을 겸비케하고 회개하였다(42:1-6).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이 고발한 내용에 대해서는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셨다. 그러나, 자신을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의 빛 가운데서 살피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 욥의 종교적인 체험은 이제는 더 이상 간접적인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뵙게 되었고 이 일은 그의 모든 고난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2. 하나님이 욥을 높이심 (욥 42:7-17)

 

이제 욥이 자신을 낮춤으로써 하나님은 그를 높이실 수가 있으시다(벧전 5:6/약 4:10 참조). 하나님이 하신 첫번째 일은 그의 친구들을 꾸짖는 일이었다. 엘리바스가 친구들 중에서 연장자였으므로 책임이 가장 컸다. 하나님은 그들의 많은 논술들에 과오가 있음을 분명히 하셨다. 이들은 하나님도, 욥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친구들에게 번제를 드리게 했으며, 욥에게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지시하신다. 그토록 자신을 지독하게 대했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려면 은혜로운 마음이 필요했을 것이 분명하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자신을 위하여서가 아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욥의 매인 바를 풀어 주셨고 그의 몸을 고치셨다.

 

욥의 친구들을 꾸짖으신 다음, 하나님은 욥의 번영을 회복시키셨다. 하나님은 욥이 겸손한 종으로서, 부와 명성을 의지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계셨다. 7-8절에서 네 차례나 “나의 종 욥”이라고 부르신 것에 유의하자. 하나님은 욥에게 전소유의 두 배를 주셨다(1:3/42:12 참조).

 

하나님은 욥에게 14명의 아들들과 6명의 딸들을 주셨다(전에 가졌던 수의 두 배/ 1:2). 전에 죽은 열 자녀들은 천국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7명의 아들들과 3명의 딸들을 주심으로써 총 수는 전에 가졌던 자녀의 두 배가 된다. 이것은 사후의 삶에 대한 구약의 증명들 가운데 하나이다.

 

일단 그의 번영이 회복되자 욥의 친구들과 면식있는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다시 돌아왔다. 이 사람들 중의 더러는 의심할 나위 없이 과거에 그를 비판하고 심판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끝이 났다. 이들은 욥에게 선물을 가져왔는데, 이는 아마도 과거의 실수에 대하여 진지하게 슬퍼한다는 증거로 가져왔을 것이다. 행복한 때에 선물을 주는 것은 동양 나라들 가운데 행해지는 풍습이었다.

 

욥의 딸들의 이름은 재미있다. “여미마”는 “비둘기”란 뜻이고 “긋시아”는 “계피” 게렌합북는 “눈화장용 상자” 또는 “화장품 상자”라는 뜻이다. 이들 각 이름들은 이 소녀들이 매력적이고 높임을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욥은 이 딸들에게도 아들들과 더불어 유업을 주었다. 욥은 그 후로 140년을 더 살았으므로(모든 것을 두 배로 환산할 때)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가 70세 때인 듯하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고난을 당하는 모든 성도들이 이 땅에서 그처럼 높임을 받는 것은 아니다(벧전 3:17 참조). 욥기의 주된 교훈은 고난이 끝나면 부유해지고 권세있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다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목적을 가지고 계시며 어떤 것이라도 그 목적을 방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단조차도 하나님의 통치에 머리를 숙여야만 하였다. 욥은 죄로 인하여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며, 그의 고난은 그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고난을 받은 후에 하나님은 그를 크게 높이셨고, 사람들을 가르칠 만한 기록된 성경이 없던 시대에 증거로 삼으셨다.

 

현 시대에서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서 보상받지 못할 수 있으나, 내세에서는 상급을 얻게 될 것이다(롬 8:18-39/고후 4-5장/벧전 4:12-19 참조). 욥의 생애에서 하나의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이다(약 5:11). 그는 사단과 환경, 친구들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그의 믿음이 때로는 요동하며 때로는 하나님을 힐난하였으나, 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분을 보이는 것같이 여기며” 견디었다.

 

이어서 핵심 성경 연구 <시편 편>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