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시편1 - 시 1편(복있는 사람)

JORC구원열차 2009. 7. 3. 14:24

1. 시편 1편 / 복있는 사람

 

본 시편의 주제는 경건한 사람의 복됨과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이다. 1절은 이렇게 번역해도 좋을 것이다. “오, 한 사람의 행복함이여!” 성경의 그 어느 곳을 펼쳐도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시며(시련의 한복판에서라도)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슬픔을 주신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룩한 사람들과, 그리스도 밖에 있는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로 이분하여 보신다.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 구원을 받았거나 아니면 “아담 안에” 있어 잃어버림을 당하는 둘 중의 하나이다(고전 15:22/고전 15:49 참조). 이 두 부류의 사람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 (1-3절)

 

태초의 창조로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축복하셨다(창 1:28). 저주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다만 인간의 불순종을 통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온 후였다(창 3:14-19).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하고 계신다. 에베소서 1장 3절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모든 영적인 축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부유한가!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기업을 누리지” 못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들을 즐기지 못한다(옵 17절). 이 구절들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수 있는 종류의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

 

1) 세상과 분리된 사람(1절)-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걷는 것으로 비유된다(엡 4:1/엡 4:17/엡 5:2/엡 5:8/엡 5:15 참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일보를 내딛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시작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걸음을 더멀리 걸어갈 때 성장하게 된다. 걷는 일은 행동을 뜻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일상생활에 성경의 진리들을 적용함에 있어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 밖에서 “어두운 가운데” 행할 수는 없다(요일 1:5-7 참조).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은 자기의 행실을 삼가한다.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일들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그의 행실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일련의 대조점들을 살펴보자.

●걸음-논의-불경건함(악인, 하나님을 닮지 않음)

●서있음-길-죄인들(목표에서 빗나감, 도달하지 못함)

●앉음-자리-경멸함(거룩한 것을 업신 여김, 조롱함)

 

젊은이가 죄 가까이 걷다가 죄를 생각하느라고 서있고 마지막으로는 “잠시 죄의 낙을 누리려고” 앉게 되는 일은 상상력을 많이 동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히 11:25 참조). 우리는 베드로의 불순종에서 이러한 슬픈 과정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으나(요 18:8), 그는 예수를 따라 걸어갔다(요 18:15). 다음으로는 그가 그릇된 군중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본다(요 18:18).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는 불 곁에 앉아 있다(눅 22:55).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곧장 유혹을 향해 걸어갔으며 세 번 주님을 부인하였다. 그리스도인이 거룩하지 못한 논의(충고, 계획)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는 머지않아 그들의 생활방식에 서 있게 되고 마침내는 주저앉아 그들에게 동의하게 된다.

 

2)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사람(2절)-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은 죄와 세상의 일들을 기뻐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즐거워한다. 말씀을 향한 사랑과 순종은 우리의 생활에 축복을 가져온다(수 1:8 참조).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매일 연구하고, 암송하며, 읽을 뿐 아니라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조절을 받는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고 성령 안에서 행하게 된다. 영혼에 있어서 “묵상”은 곧 몸의 “소화기능”과 같다. 묵상이란 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을 우리의 '생활에 적용하며 속사람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이다(렘 15:16/겔 3:3/계 10:9 참조).

 

3) 물가에 있는 사람(3절)-

마실 물이란 하나님의 성령을 비유하는 말이다(요 7:37-39 참조).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마른 땅 밑 깊숙한 곳에 숨겨진 샘으로부터 물을 얻는 나무에 비유된다. 이 세상은 헌신한 신자에게 있어서는 사막과 같아서 결코 만족을 줄 수가 없다.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일들에 영적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영적인 생명수를 끌어 올려야 한다(렘 17:7-8/시 92:12-14 참조). 뿌리가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뿌리보다는 잎사귀와 열매에 대해서 보다 더 관심을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많다. 뿌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말씀으로 매일 시간을 보내며 성령께서 자신을 먹이시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면 유용성의 면에 있어서는 말라서 죽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생명을 끌어내는 신자는 열매를 맺을 것이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열매 맺기를 멈추면 그것은 뿌리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막 11:12-13/막 11:20/눅 13:6-9 참조). 우리가 맺어야할 열매에 대해서는 다음 구절들을 찾아보라(롬 1:13/롬 6:22/갈 5:22-23/히 13:15/골 1:10).

 

1-3절에 제시된 거룩한 사람에 대한 완전한 모범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길이요(1절) 진리요(2절) 생명이시다(3절/ 요 14:6 참조).

 

2.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사람(4-6절)

 

“그렇지 않음이여!” 참으로 무서운 심판이다. 이 말은 거룩한 사람들이 즐기고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불경건한 사람들의 생활에서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건한 사람은 강하고 영구적이며 아름답고 유용하고 열매맺는 나무에 비유되어 있다. 그러나 불경건한 자는 겨이다! 그는 뿌리가 없고 바람에 날려가며, 하나님의 계획에 아무런 쓸모도 없을 뿐 아니라 아름다움도 결실함도 없다.

 

세례(침례)요한은 마태복음 3장 10-12절에서 이와 유사한 비유를 사용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탈곡 마당에 찾아와서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시키는 추수꾼으로 비유한다. “그는 겨를 불사를 것이다!”(시 35:5/욥기 21:18 참조) 이 땅에서의 전 생을 겨와 같이 보내야 하는 사람의 비극은 어떠하겠는가?

 

미래의 심판이 있는가? 5절에 보면 심판이 있다고 되어 있다. 물론 구약에는 우리가 신약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미래의 심판에 대한 온전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에게는 심판이 없다(요 5:24/롬 8:1 참조). 하지만 불신자에게는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있다(히 10:27 참조).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심판은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에 설명되어 있다. 그 무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은 없을 것이며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만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는 사악한 사람들 그대로의 본성, 즉 쭉정이로서 가치없이 잃어버려진 영혼임이 드러날 것이다. 5절은 악인이 심판 때에 서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들이 심판의 자리에 없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책이 펼쳐질 때 이들은 무릎을 꿇고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빌 2:9-11 참조)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비록 이 세상에서 종교적인 모임의 회원이었을지라도 천국 의인의 회중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 7:21-23 참조).

 

성경의 “안다”라는 단어는 보통 “나는 열 두 제자들의 이름을 안다”고 말할 때의 지적인 이해보다 훨씬 더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에는 다음 구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선택과 관심”이라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며...”(딤후 2:19 참조). “내가 내 양을 알고...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같이...”(요 10:14-15 참조). 예수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다(마 7;23 참조). 여호와는 의인의 길을 직접 계획하셨고 설계하셨으므로 알고 계신다(엡 2;10 참조). 주님은 의인들이 이 계획된 길을 갈 때에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 거룩한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다. 그가 하는 말, 그가 행하는 일, 그가 가는 곳, 이 모든 것에는 영원한 결과가 따른다.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각기 제 길로 갔다”(사 53:6 참조). 의인의 가는 좁은 길은 영광으로 향하지만(잠 4:18 참조), 경건치 못한 사람들의 길은 망할 것이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이 땅에서 낭비하는 삶을 살며, 오는 세상에서는 멸망을 받는다! 얼마나 큰 낭비인가!

 

6절은 “두 가지 길”에 관한 잘 알려진 교훈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이 비유로 끝맺으셨다(마 7:18- 이하). 또한 잠언 전체를 통하여 이러한 내용을 볼 수 있다(잠 2:20/잠 4:14/잠 4:24-27 등). 거룩하지 못한 사람이 잃어버림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순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뜻”(행 20:27 참조)보다도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의 의견을 더 좋아한다. 그는 의인의 회중보다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과의 교제를 더 좋아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지 않으며 하루 종일 죄를 생각하며 보낸다(창 6:5 참조). 그는 이 땅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신자가 시편 1편 1-3절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주님께 양보함으로 시작된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매일 양도하는 것이다(롬 12:1-2 참조).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이 생활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생활을 하는 것이며(물론 고립이 아니라 그 더러움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 하나님의 숨겨진 자원들을 빨아올리는 뿌리를 가진 생활이다. 얼마나 축복된 생활인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참된 만족을 주는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