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편 8편 / 인간은 무엇인가?
당신이 이 아름다운 시를 처음 읽을 때 “오늘날 현실적인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이 시는 창조에 나타난 인간의 지위에 대한 시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빙산과 같이 이 시에 숨겨진 교훈은 크다고 하겠다.
시편 8편에 대한 신약의 관련 성구들의 도움에 힘입어 여기서 발견되는 몇 가지 교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시를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하려 한다.
1. 역사적인 배경
시편의 제목들이 역사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의 두 가지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을 눈여겨 보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시편 8편의 서두에서 “다윗의 시-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다. “깃딧”이란 “포도주틀”이란 뜻으로, 아마도 추수 때에 사용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인 듯하다. 그러나 음악적인 지시사항은 하박국 3장에서와 같이 앞에 나오는 시의 끝부분에 속한다고 결론짓는 성경학자들도 있다. 이 말은 9편의 처음에 나오는 “뭇랍벤”은 사실상 시편 8편의 끝에 속한다는 뜻이다.
“뭇랍벤”이란 용어는 “챔피언의 죽음”이라는 뜻으로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을 가리킨다(삼상 17장). 젊은 다윗이 거인을 죽인 후, 그 날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신 그 관심에 놀라워하며 하나님과만 홀로 지새우는 것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다윗은 거인에 비교하면 “젖먹이요 풋나기”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젖먹이”를 사용하시어 적을 잠잠케 하셨다.
사무엘상 17장 4절에서 골리앗은 “챔피언”으로 불리워졌으며 40일 동안 교만스럽게도 도전하며 유대인들에게 겁을 주었다(삼상 17:16). 다윗이 적을 침묵시킬 때 사울은 이렇게 말했었다. “너는 소년이다”(삼상 17:33 ,젖먹이요 풋내기이다).
사무엘상 17장과 시편 8편 사이의 또 다른 유사점은 “공중의 새”와 “들의 짐승”(삼상 17:44/시 8:7-8)이라고 한 말이다. 또한 시편 8편이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는 사실도 유사하다(8:1/8:9).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패배시켰다(삼상 17:15).
따라서, 우리는 이 시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승리로 인해 여호와를 찬양하는 젊은 다윗을 보게 된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하나님은 왜 한 목동에게 관심을 기울이셨는가? 다윗에게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토의 놀라운 모형을 본다. 이들은 둘 다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다. 둘 다 목자였으며, 둘 다 일시적으로 형제들에게 거절을 당하였다. 또한 둘 다 광야에서 적을 직면했으며 승리를 거두었다. 왕이 되기 전에 추방을 당했으며, 유배되어 있는 기간 동안 신부를 취하였다. 그리고, 둘 다 “사랑의”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이란 이름은 “사랑받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 교리적인 의미
신약에서 시편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에게 적용할 때는 언제나 메시야와 관련된다. 시편 8편은 신약에서 몇 차례에 걸쳐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있다(2절/ 마 21:16/히 2:6-8/고전 15:27/엡 1:22 참조). 이 관련성구들을 조심스럽게 읽자(특히 히브리서 2장).
시편 8편으로부터 인출되어 히브리서 2장과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주된 교훈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는 아담이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모든 것을 도로 찾으셨다. 그리스도는 하늘 위에 높이 올리워지셨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다(엡 1:19-23/히 1:1-3 참조). 하나님의 영광은 이제 더 이상 천막이나 성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저 위에” 있다. 그리고 신자들의 마음에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셨을 때에는 제사장이나 왕들에게 찬양을 받지 못하셨다. 성전에서 그에게 찬양을 돌린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창세기 1장 26-28절을 주의깊게 읽고 하나님은 처음 사람에게 바다의 고기와 새와 가축들을 다스리게 하셨음을 알아보자. 사실상, 인간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리도록 위임을 받았다.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그는 이 왕권을 잃었다. 로마서 5장은 “왕들”에게 변화가 있음을 지적한다. 죽음이 다스리고(롬 5:14 /롬 5:17) 죄가 다스렸다(롬 5:21). 아담은 자기의 왕권을 잃었으며, 왕은 고사하고 노예였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오셨을 때 그는 아담이 잃은 주권을 행하셨다. 그리스도는 물고기를 다스렸고(눅 5:1-6/마 17:24-27/요 21:1-6), 새를 다스렸으며(눅 22:34), 짐승들을 다스리셨다(막 1:13/막 11:1-7 참조).
오늘날 지상의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행하신 대로 자연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셨을 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방문하시는 것”이었다(시 8:4/눅 1:68/눅 1:78 참조). 다윗이 밤의 경치를 묘사하고 있는 것에 유의하자(3절). 왜냐하면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는 영적으로 밤이었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낮추시고 종이 되심으로,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으며, 잃어버린 사람들과 잃어버린 세계를 값주고 구속하셨다.
히브리서 2장 8절은 “우리가 만물이 아직 인간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홍수가 나고 지진이 있고 재앙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본다(9절).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은 그가 재림하실 어느 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영화롭게 된 이 땅을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우리는 오늘날 영적으로 주님과 함께 통치한다(롬 5:17/롬 5:21 참조). 또한 주님의 왕국에서 육신적으로 그의 통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계 1:6/계 20:4 참조).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다만 아담의 죄를 풀어주어 본래의 아담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훨씬 더한 것을 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이 만든다! 로마서 5장 9-21절에서 “더욱“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눈여겨 보자.
3. 실전적인 생활
1) 찬양-
만일 다윗이 자기의 지위와 승리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주님을 찬양하여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야 했던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하늘로 우리를 데리고 올라가시는 것인가?
2) 지위-
이 시는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인다. 5절은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다”라고 읽어야 한다. 인간은 분명히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가르침은 인간을 동물로 낮춘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혼란하다. 야고보서 3장 9절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음을 기억할 때 보다 나은 대우를 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내적으로 대단히 불안하고, 심히 잔인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폐위시키고 인간을 저하시켰으면서도 왜 혼란 가운데 있는지 의아해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피조물로서의 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러한 형상 가운데서 새로워진 성도로서의 책임도 잊어서는 안 된다(골 3:9-10/롬 8:29 참조).
3) 능력-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 이 말은 우리가 왕으로서 통치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다스리며(롬 5:17), 죄와 유혹을 이기고 승리를 얻는다. 우리는 죽음도 다스리며(고전 15:54-57),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리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에 세울 주님의 왕국에서 통치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우리가 섬겨야 할 위치는 오늘 여기서의 생활과 충성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마 25:14-30/눅 19:12-17 참조).
4) 약속-
이 시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마음을 쓰고 계심을 명백히 밝힌다. 또한 히브리서 2장 6-9절에 나오는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피조 세계를 죄의 속박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시사한다(롬 8:18-24 참조).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보며 그와 같이 될 때 “우리 몸이 구속될 것”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롬 8:23/요일 3:1-3/빌 3:20-21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보좌에 계시다는 사실은 어느 날 모든 피조 세계가 구속을 받을 것에 대한 증거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약속인가!
물론 시편 8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만 적용된다. 불신자는 “하나님의 지으신 것”을 찬양할지 모르나(3절),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의 팔”의 능력을 경험하였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사 53:1). 하나님은 자기의 손가락으로 우주를 창조하실 수 있으셨다. 그런데 그 우주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의 팔을 뻗쳐야 하셨다! 하나님이 이 땅에 찾아오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눅 19:44 참조).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 이 땅을 찾아오실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였는가? 당신은 그분이 당신의 생활을 다스리시도록 허락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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