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다니엘5 - 단 4장(나무의 꿈)

JORC구원열차 2009. 7. 9. 10:06

4. 다니엘 4장 / “나무의 꿈”

 

본 장은 왕 자신이 기록한 사실상의 바벨론 공식 문서로서, 그가 나눈 대화의 내용과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본 장은 경험을 한 후 7년 만에 기록한 것임을 명심하자. 따라서 1-3절과 37절은 하나님께서 왕에게, 그리고 왕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느부갓네살이 공식적으로 간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끝부분에서 이 구절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왕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1. 꿈을 꿈 (단 4:4-28)

 

하나님께서 왕에게 이러한 꿈을 보내셨을 때는 평화로운 번영의 시기였다. 왜냐하면 이 꿈은 그의 죄가 마침내는 그를 사로잡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이기 때문이다. 그는 안정을 누리고 있었으나 예수께서 부자 농부에 대한 비유에서 묘사하신 것과 비슷한 거짓 안전이었다(눅 12:15-21). 이 사악한 세계가 “평화와 안전”에 머물러 있을 때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때이다(살전 5:3). 참된 안정과 안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꿈은 이러하였다. 그는 온 땅을 그늘지게 하며 새들이 깃들고 동물들이 그 아래서 피난처를 찾는 거대한 나무를 보았다. 그는 “이 나무를 자르라!”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그 나무는 잘리워졌는데, 젖은 풀 위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었으며 일곱 해 동안 철로 띠를 띠고 있었다. 왕이 이 꿈으로 인하여 마음이 대단히 어지러웠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특별히 그는 왕국의 초기에 그의 통치의 미래에 대한 또 다른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왕은 그의 박사들을 호출하였으나 그들은 해몽할 수 없었다. 2장 6절에 나타나 있는 장담하는 말을 기억하자.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그러나, 이번 꿈은 그들에게 말해 주었어도 해석할 수가 없었다. 세상적인 지혜는 그 위대함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전 2:14-15). 왕은 이 문제를 풀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곧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이었다. 그래서 왕은 그를 보좌로 불렀으며 그를 번민하게 만든 꿈으로 그를 끌어들였다. 느부갓네살은 권세와 부와 영광을 지녔지만 장래를 열 수는 없었다. 가장 가난한 그리스도인이라도 그보다는 부자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말씀 안에서 장래를 위한 계획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꿈이 계시됨 (단 4:19-27)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그 꿈의 의미를 계시해 주심으로써 다시 한 번 그를 “어두운 중에 비취는 그의 빛”으로 사용하셨다. 그러나, 선지자는 계시를 받고도 얼마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이 왕의 역사에 있어서 그때는 가장 오래 기다린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강의 메시지가 숙연한 내용임을 다니엘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꿈을 가볍게 취급하거나 부주의한 태도로 그 해석을 전하지도 않았다. 참 선지자는 언제나 그 메시지와 같은 심정을 가지는 것이며 다니엘은 이 꿈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달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인 지혜와 지식이 반드시 기쁨과 대화로 인도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은 슬픔과 침묵으로 인도해 가는 경우가 많다. 다니엘 10장 1-3절을 보고 70년의 유배 생활에 대한 진리에 대하여 다니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자.

 

그 해몽은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나무는 느부갓네살과 그의 위대한 왕국이다(20-22절). 하나님은 종종 왕국을 나무의 모습으로 비유하신다. 에스겔 31장은 그 한 예이며 마태복음 13장 31-32절도 그러하다. 나무는 이 땅의 왕국을 나타내는 데는 좋은 상징이다. 왜냐하면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양분과 안정성을 땅에 의존하고 살기 때문이다. 보호를 받기 위하여 바벨론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들은 그 나무에, 그리고 나무 아래 거하는 짐승과 새들로 비유되어 있다. 물론 바벨론은 위대하고 강한 왕국을 이룩하였지만 이 일은 느부갓네살이 자랑할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보좌와 왕국을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군주가 가혹한 방법으로 배워야 했던 교훈이 바로 이것이었다.

 

“순찰자와 거룩한 자”는 물론 하나님의 천사이며 바벨론 왕국에서 일하도록 지명된 천사들이다. 다니엘 9장 10절과 10장 4-20절은 이 세상 나라들의 일에 매우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천사들은 선포하였다.

 

나무를 베어라-느부갓네살왕을 보좌에서 내려라! 그는 이제 어떤 경험을 겪게 되는 것일까! 인간답게 사는 것을 멈추고 7년간 짐승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나무는 베어졌으며 철로 동여 매어져서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심판은 영속적인 것이 아니었다. 느부갓네살은 7년 후에 다시 인간적으로 되고 이성을 되찾을 것이며, 큰 영광 가운데 그의 보좌로 올리워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왕의 생애를 이런 식으로 다루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게 겸손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신상의 꿈”에서 그가 황금의 머리로 상징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3장에서 왕은 자신을 숭배하고 찬양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전체가 황금으로 된 우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교만한 군주에게 실제로는 마음이 짐승같음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었다.

 

7장에서 다니엘은 모든 제국들이 들짐승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주는 환상을 보게 된다! 다니엘은 왕에게 회개하고 그의 방법들을 변경시키라고 경고한다. 다니엘은 간청하였다. “죄악을 깨뜨리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시고 주님을 섬길 날들을 주실지도 모릅니다.” 결국 하나님은 두 가지 다른 경로, 즉 2장의 꿈과 3장의 용광로 이야기를 통하여 왕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귀머거리의 귀를 들이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3. 꿈이 실현됨 (단 4:28-36절)

 

그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이 경고에 대하여 생각하고 죄에서 돌이키도록 꼬박 일 년이란 시간을 주셨으나 왕은 마음에 간직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의 성공으로 인하여 더욱더 교만하여졌다(전 8:11/잠 29:1 참조). 그런데 심판의 날이 임하였으며, 왕의 참된 짐승같은 본성이 드러나 모든 사람이 보게 되는 날이 왔다. 사람들은 그를 궁전에서 몰아내었으며 들짐승과 같이 7년 동안 살며 소처럼 풀을 먹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왕을 겸손케 하기를 원하실 때는 신속하고 철저히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다.

 

하지만 그 일이 영원토록 지속된 것은 아니었다. 7년 후에 느부갓네살은 개심하였다. 첫단계(왕이 기록하고 있는 대로)는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였다(34절), 이 일이 생기기 오래 전에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 참으로 유감된 일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 고백은 여호와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애가 변화된 사람의 소리로 들린다! 왕은 그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하나님은 모든 것이라는 교훈을 배웠다.

 

34-35절을 읽고 느부갓네살이 이러한 낮아짐의 경험을 통하여 실천적인 교훈을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알아보자. 오늘날 세계의 교만한 통치자들이 “자신들을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모든 것임”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다. 17절은 이 교훈을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들을 다스리신다.”

 

이제 1-3절로 돌아가자. 이 강력한 독재자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며 평강을 전하고 있다! 느부갓네살은 평화로운 활동들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잔혹한 전쟁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절을 읽어 보면 베드로나 바울이 쓴 무슨 서신류 같은 느낌이 든다. 2-3절에서 그가 어떻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리며 여호와의 위대하심의 덕택으로 돌리는지 살펴보자.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이 땅 독재자의 말 같지가 않다. 그는 7년 전만 해도 “이것이 내가 세운 위대한 바벨론이다!”라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한 마디의 찬양이나 감사의 말도 없이 자기의 능력과 자기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변화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신 일에 대하여 개인적인 증거를 삼기 위하여 공식적인 서류를 작성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37절은 위대한 절정이다. “나는...나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칭송하고 존경하노니...”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시느니라”(37절). 우리는 본 장에서 말세에 나라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미리 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위대함과 영광을 자랑하게 될 즈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7년 간의 무서운 심판을 내리실 것이며 그들을 낮추실 것이다.

 

이 환란시대의 종말에 그리스도는 이 땅에 돌아오셔서 그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나라들은 영광스러운 왕국으로 들어갈 것이며 그 밖의 나라들은 내던짐을 당할 것이다. 느부갓네살처럼 이들은 교만과 불신앙에서 개심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