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다니엘7 - 단 6장(사자굴)

JORC구원열차 2009. 7. 9. 10:10

6. 다니엘 6장 / 사자굴

 

최근에는 “...의 하루”라는 연속 간행물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책들은 어떤 유명한 사람의 생활에 있어서 전형적인 한 날을 소개하는 글들이다. 본 장에서 우리는 메대 바사제국의 총리인 다니엘의 생활 중 하루를 살펴 볼 것이다.

 

본 장에서 다니엘은 10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는 이제 80대에 들어선 사람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에 연령이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또한 유혹이나 시험에서 보호가 되는 것도 아님을 증명한다. 다니엘은 젊어서부터 믿음과 기도의 사람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여호와께 성실할 수가 있었다. 우리 함께 다니엘과 하루를 보내기로 하자.

 

1. 헌신의 새벽

 

국무총리의 하루는 여호와께 기도함으로 시작되었다. 6장 10절에서 우리는 그의 집 꼭대기에 특별한 “기도실”을 두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는 말을 들었다. 시편 55편 17절은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라고 말한다. 다니엘은 여호와와 더불어 하루를 시작하였는데, 그가 행한 이 일은 좋은 일이다! 원수들이 일어섰고, 다니엘에게는 그의 일생에 있어 직면해야 할 가장 큰 시험 중의 하나가 임박하고 있었다.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경고는 유익한 것이다. 다니엘의 삶에 있어서 기도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고 가장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는 기도하기 위하여 특별한 장소와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그가 종일토록 주님과 이야기하였다고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를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부르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9:23/10:11/10:19).

 

신약에서는 이 말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적용되었다. 다니엘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들”중의 하나로 만든 것은 그의 믿음있는 행실과 지속적인 기도 생활이었다(요 14:21-23). 여호와와 더불어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아브라함과 다윗이 이러한 습관을 가졌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셨다(창 19:27/시 5:3/막 1:35).

 

2. 현혹의 아침 (단 6:1-9)

 

하나님은 다니엘의 충성으로 인하여 그를 높이셨고, 사실상 그는 그 나라의 두번째 통치자였다. 그 땅의 지도자는 총 124명이었는데, 다리오왕과 세 명의 통령(다니엘이 제1통령이었다) 그리고 120명의 제후들이었다. 다리오는 다니엘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서 그를 공식적인 제 2인자가 되도록 계획을 세웠다. 바벨론에서의 다니엘의 승진은 신자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타협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마 6:33).

 

물론 122명의 다른 지도자들은 다니엘의 성공에 대하여 그렇게 기뻐하지 못하였다. 그 한 가지를 들자면 그는 외국인으로서 더구나 유대인이었다. 사단은 이미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있었으며 그들을 박해하고 제거하는 데 극단적이었다. 사악한 사람들은 언제나 의로운 사람들을 싫어한다. 물론 경건한 다니엘은 정직하였으며 나라의 일을 보살피는 데 주의깊었다. 다른 지도자들은 왕의 소유를 훔치고 계산을 틀리게 하여 도둑질을 은폐시키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다리오론 정부를 재조직하여 손상됨이 없게 해야 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사악한 자들은 거짓말을 한다. 이들은 다리오왕에게 모든 통령들이 이 계획에 찬성하였다고 말하였으나, 다니엘은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다리오가 자기의 가장 훌륭한 통령과 먼저 논의하지도 않고 칙령에 서명을 했던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던가! 역사는 다리오가 아첨에 쉽게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 그래서 사악한 지도자들은 다니엘을 그들의 권력 아래 둘 수 있다고 본 듯하다. 그는 어떻게 행할 것인가?

 

3. 결정의 오후 (단 6:10-13)

 

다니엘은 새로운 칙령에 대하여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들 중의 한 명으로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하였다. 물론 그의 거룩한 성품과 신령한 행실은 그를 대신하여 이미 결정을 하였다. 그는 여호와를 섬길 것이며 언제나 해 온 대로 여호와께 기도하기로 하였다. 핑계를 대거나 타협할 수도 있었다. 그 한 가지로는 “모든 사람이 다 하는데!”라는 변명도 있다. 그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여호와를 신실하게 섬겼던 노인이었다. 그의 생애의 종말에 처하여 하나의 작은 타협이 그렇게 대단한 손상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이 일은 그의 전체 간증을 파괴할 것이다). 죽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것이 여호와께 더욱 유용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다니엘은 타협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한 번의 기도 시간을 빠뜨리기보다는 사자들에게 먹히려고 할 것이었다.

 

그의 적들은 다니엘이 언제나 창문이 열려 있는 기도실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들은 다니엘이 손을 드는 것을 보았다. 이제 그를 붙잡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마음에 평화가 있었다. 기도하며 감사를 드리고 간구하였다. 이 기도의 방식은 그가 10대였을 때부터 해 온 것이었다. 우리가 젊었을 때 영적인 습관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4. 실망의 석양 (단 6:14-17)

 

왕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권력과 부를 가지고도 메대바사의 법을 변경시킬 수는 없었다. 또한 하나님은 다리오가 다니엘을 구하게 하고 싶지 않으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특권이었다. 다니엘도 왕에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았다(시 146:1-6). 그는 오래 전에 이미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사자의 굴에 들어가지 않도록 구하려 하심이 아니라, 사자굴 밖으로 구원하려 하셨다.

 

5. 구원의 밤 (단 6:18-23)

 

궁전에 있는 다리오와 사자의 굴에 있는 다니엘은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다리오는 평화를 소유하지 못하였으나 다니엘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 그리고 사자들과 완전한 화평을 누리고 있었다. 다니엘은 전적으로 안전한 장소에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기 계셨기 때문이다. 다리오는 적들에 의해 그의 침상에서 살해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리오는 다니엘을 심판에서 구원하려고 전날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였으나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한편 다니엘은 우주의 하나님께 단순히 말하는 것만으로 그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얻었다. 모든 면으로 볼 때 다니엘은 왕답게 다스리고 있었으며 다리오는 노예였다.

 

다니엘을 구원할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다(6:23/히 11:33). 그렇게 오랜 동안 우상을 섬기는 이방 나라에 살면서도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만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님과의 일상적인 교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믿음을 가졌으며 충성스러웠다(시 18:17-24).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여호와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 성공적인 기도 생활의 기본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며, 그가 자기의 말씀을 지키실 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타협하라는 많은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가장 안전한 길은 군중과 더불어 가는 길이라고 여길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위험한 길이다! 진실로 안전한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길이다. 다니엘은 왕을 예배하며 왕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잘못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 밖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죽기를 원하였다.

 

사단은 울부짖는 사자처럼 다가오며(벧전 5:8-9) 또한 사람들은 우리를 속이려고 한다(딤후 4:17).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라면 우리를 구해내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위험 가운데서 그의 자녀들을 구원해내시는 것은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의무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바쳤다. 그들이 받는 상은 참으로 굉장한 것이다(계 2:10).

 

6. 파멸의 아침 (단 6:24-28)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혼들은 어린 아이들을 포함하여 전체의 가족을 굶주린 사자에게 던진다는 착상에 저항감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 나라의 법이었으며 이 사악한 사람들이 다니엘에게 적용하려 했던 바로 그 법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무죄한 자녀들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으나, 죄에 대한 무서운 형벌은 이와 같다.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닌 자녀들은 어쨌든 주님과 함께 있게 되었으므로 이것은 이방나라에서 불신앙 가운데 성장하여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백성을 옹호하신다.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잠 11:8). 만일 박해를 통과하고 있을때 하나님이 정말 돌보고 계신 것인지 의심이 생기면 시편 37편 1-15절을 읽으라. 그리고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라.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다니엘에게 이러한 경험을 통과하게 하셨는지 알 수 있다(25-27절). 이 일은 하나님의 이름에 큰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베드로전서 3장 10-17절을 쓰게 했을 때 그는 아마도 다니엘을 생각했었을 것이다(이 구절들을 읽으라). 그리스도인이 유혹을 정복할 때 주님을 영화롭게 한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기”를 원했던 바울을 본받게 되기를 빈다(빌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