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마태복음 20장 / 일꾼에 대한 비유
이 비유와 그 다음에 나오는 사건들은 19장 16-30절에 나오는 젊은 부자와의 만남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 비유는 처음과 나중에 대한 주님의 역설적인 언급을 주께서 설명하시는 것이다(19:30/20:16).
1. 포도원의 비유 (마 20:1-16)
1) 배경-
부자 관원은 자기 소유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따를 것을 거절하였다. 그래서 주님은 부유함의 위험에 대하여 제자들을 경계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과 그의 동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은 것을 자랑하며 담대하게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은 동기가 잘못되었음을 드러내었다. 그가 그리스도를 섬긴 것은 무엇을 얻을 수 있기 위함이었고, 충성과 사랑의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보기에 “처음된 자”들은 최종적인 계산에서 “나중된 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2) 의미-
이 비유에 나와 있는 모든 것이 무엇인가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려는 주된 영적인 진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에 대하여 그 봉사의 동기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다루실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라 봉사에 관한 것이다. “데나리온”은 구원이나 영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이란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엡 2:8-9/딛 3:5-6 참조).
그리스도는 봉사에 대한 상급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섬김에 따라 다르게 보상하실 것이다(고전 3:8/요 4:36). 만약 “데나리온”이 상급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공정하지 못한 분이시다. 모든 일꾼들이 동일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20장 10절을 19장 27절에서의 베드로의 말과 연관시키면 이 비유의 교훈을 알 수 있다. “첫번째 온 사람들”, 즉 처음된 자들은 그들이 더 많이 받게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베드로가 하려는 말이 그것이 아닌가? 그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렸는데,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됩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분명히 자신에게 “우리는 더 받을 것이 분명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다음의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에게 자신이 기쁘신대로 대할 권리가 있으시며, 그릇된 동기(악한 소견 / 15절)는 죄이다.”
3) 생활-
그리스도는 우리를 불러 주님을 위해 일하게 하셨다.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는데도 하루 종일 빈둥거리고 서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 이 비유는 우리가 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충성에서 그리스도를 섬겨야 함을 상기시킨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종들에게 은혜로 상을 주실 것이다(고전 3:12-15). 우리의 마음에 상 자체가 아니라 상 주시는 이가 채워져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봉사 사역을 위한 우리의 동기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잘못된 동기가 있으면 일이 잘 되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며 우리에게서 축복을 훔쳐간다. 우리가 칭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최종적인 계산을 할 때에 그들의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나중된 자”가 될 것을 생각할 때 숙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동기를 판단할 수는 없다(마 7:1-3).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판단할 수는 있다.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2. 명예를 구하는 기도 (마 20:17-28)
1) 알림(20:17-19)-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실 일에 대하여 세번째로 알리는 구절이다(마 16:21-/마 17:22-23).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맞이하게 될 위기에 대처하여 그들을 준비시키셨다. 주님이 첫번째로 십자가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주님을 힐책했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이기적인 기도를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십자가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느린가!
2) 요청(20:20-21)-
이 여인의 주님께 대한 믿음과, 또한 마태복음 19장 28절에 나오는 왕국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그녀의 동기는 옳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영광을 위하여 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구했기 때문이다.
3) 응답(20:22-23)-
예수께서는 그 어머니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제자들(야고보와 요한)에게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그들이 어머니를 졸라서 구하게 한 것임을 암시해 준다. 물론, 그들은 예수께서 “잔”과 “세례”(침례)라고 말씀하실 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잔과 세례(침례)는 갈보리에서의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26:39-42/눅 12:50 참조).예수께서는 그들도 주님의 잔과 세례(침례)를 맛볼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또한 맛본 것이 사실이다. 야고보는 첫번째로 순교한 제자였다(행 12:2). 요한도 참혹한 박해를 받고 밧모섬에 유배당하였다(계 1:1-).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주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께서 우리가 했던 말 앞에 우리를 세우실 것이다(전 5:1-6).
4) 결과(20:24-28)-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라고 야고보서 3장 5절은 말한다. 신자 한 사람의 입장에서 나온 이기심이 다른 사람의 삶에 괴로움을 끼치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기회를 사용하여 제자들에게 겸손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진실로 위대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섬긴다. 그리스도 자신은 이 교훈의 본보기이셨다(빌 2:1- 참조). 이 세상의 사람들처럼 “주인 정신”을 행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정신에 있어서는 이질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지도자들이 “감독의 역할”을 하지만(행 20:28/벧전 5:2), 그들은 자기 뜻과 교만으로 다스리지 않고 “목자들 밑에 있듯이” 겸손하게 치리한다.
3. 병고침의 기적 (마 20:29-34)
마가복음 10장 46-52절은 소경이 한 명이었음을 시사하는 반면, 마태복음은 두 사람이라고 언급한다. 두 사람 중에서 바디매오(마가복음에 언급된)가 더 잘 알려진 사람이었던 것 같고, 그가 예수께로 인도되어진 사람인 듯하다.
이 기적은 구원의 아름다운 상징이다. 그들은 눈먼 소경들이었으며 모든 잃어버려진 죄인은 소경이다(고후 4:1-6). 이들은 가난한 거지들이었으며, 잃어버려진 죄인들은 그리스도를 떠나 빈곤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눈을 뜨게 할 유일한 분이신 그리스도께 외쳤으며, 주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나타내 보이셨다. 그들이 고침을 받은 것은 기도를 했거나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 아니었다. 군중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했다. 오늘날 세상은 죄인들이 그리스도께로 오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손을 대심으로 그들을 고치셨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삶이 변화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여기 경륜적인 한 교훈이 있다. 소경들은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이심을 알고 있었으나, 이 민족은 바로 다음 장에서 주님을 거부한다. 이 나라는 소경이었고(고후 3:14-16/롬 11:8-10) 왕을 거절함으로써 소경으로 남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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