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요한복음11 - 요 11장(생명을 주는 분이신 그리스도)

JORC구원열차 2009. 7. 13. 10:38

11. 요한복음 11장 / 생명을 주는 분이신 그리스도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이전 요한이 기록한 기적들 중의 일곱번째의 것으로서, 구원의 계획을 보여 준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여 생명을 얻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음을 본다. 요한복음이 생명에 대해 얼마나 많이 말하고 있는지를 성구사전을 사용해서 알아보라. 나사로는 일곱 가지면에 있어서 잃어버린 죄인의 구원을 상징하고 있다.

 

1. 그는 죽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병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이다(엡 2:1-3/골 2:13). 사람이 육체적으로 죽을 때에 육체적인 것들, 즉 음식이나 기온, 고통 등에 반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죽으면 영적인 것들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과 성경, 그리스도인, 교회 등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불순종이 죽음을 가져올 것임을 경고하셨는데(창 2:15-17), 이는 영혼이 몸과 분리되는 육체적인 죽음과,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영적인 죽음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4절은 지옥을 두번째 사망, 영원한 죽음이라고 부른다. 실로, 죄인에게는 교육이나 의약품, 도덕성 또는 종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필요하다.

 

2. 그는 부패하였다.

 

복음서에는 주님의 부활 이외에 세 번의 부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리스도는 방금 죽은 열 두살된 소녀를 살리셨으며(눅 8:49-56),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난 청년(눅 7:11-17)과, 무덤에서 4일이나 지난 노인(요 11:1-)을 살리셨다. 여기서 우리는 죄인들의 각기 다른 세 종류의 상징을 보게 된다.

 

① 어린 소녀-아직 공개적으로 부패되지는 않았다.

② 청년-외부적으로 부패됨이 보이기 시작한다.

③ 노인-외부적으로 부패된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요점은 이들 모두가 죽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죽어 있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차이점은 부패된 정도에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죄인들에게도 사실이다. 도덕적인 교회 회원도 나사로처럼 부패되어 있지는 않을지라도 여전히 죽어있는 것이다.

 

3. 그는 일으켜져 생명을 받았다.

 

누이들의 유대 친구들은 다만 동정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데에는 그리스도를 요한다. 종교 체계는 결코 생명을 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생명을 주셨는가? 그는 말씀을 하셨을 뿐이다. 이것은 위에 언급된 세 명의 죽은 이들을 살려 내는 데에 사용하신 방법이다(요 5:24/엡 2:1-10).

 

그리스도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며(5, 36절),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다(4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죽어서 지옥에 가기에 마땅하지만, 그리스도는 그의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엡 1:3-14/ 엡 2:1-10).

 

구원은 규범이 아니라 생명임을 기억하자(요 3:14-21/요 3:36/요 5:24/ 요 10:10/요일 5:10-13). 이 생명은 한 인격으로서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죽은 죄인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믿을 때에 그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요 5:25). 말씀을 거절하는 자는 영원히 죽게 된다.

 

4. 그는 매임에서 풀려졌다.

 

나사로는 손발을 묶였으므로 스스로는 자유롭게 될 수가 없었다. 신자는 옛 생활의 수의로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새 생활의 자유로움 안에서 행해야 한다. 골로새서 3장 1-15절은 그리스도인이 수의를 벗고 새 생활의 “은혜의 옷”을 입었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옛 생활의 일들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가련한 간증이다.

 

5. 그는 다른 이들에게 증거했다.

 

11장 45절, 12장 9-11, 17절에서, 우리는 나사로가 그 지역에 물의를 빚어 놓았음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그리스도를 믿었다. 사실상, 그는 걸어 다니는 기적이었는데,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종려 주일에 거대한 군중들이 모였던 이유는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나사로 때문이기도 하였다. 12장 11절에서 우리는 나사로가 다른 이들을 그리스도의 구원의 지식으로 인도하였음을 보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며 의무이다.

 

6. 그는 핍박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나사로가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납득시켰기 때문에 그를 미워하였다(12:10-11). 중심적인 제사장들 중의 다수가 사두개인들이었으며,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는데, 나사로는 그들의 어리석은 논의에 있어서 산 대답이었다.

 

하나님에 의해 그 제사장들이 조정을 받지 않았다면, 그들은 갈보리에 나사로를 위한 특별한 십자가를 세웠을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다(딤후 3:12). 사단은 항상 살아 있는 기적과 싸운다.

 

7. 그는 그리스도와 친교하였다.

 

12장 1-2절에서 우리는 나사로가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에 앉아 축연을 즐기고 있음을 본다. 이는 “일으켜져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게 된”(엡 2:5-6) 그리스도인이 있을 올바른 장소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 나사로는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에 감사를 보이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면서 증거할 새 힘을 얻었다. 구원의 기적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생명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와 매일 교제를 나누어야만 한다.

 

베다니의 온 가족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 주고 있음에 주목하는 일은 흥미 있다. 마리아는 늘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다(눅 10:38-42/요 11:32/요 12:3). 그리고 마르다는 봉사의 상징으로서, 항상 그리스도를 위해 바삐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나사로는 간증하며 날마다 그리스도께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한다.

 

이 세 가지 실례 곧 예배(마리아), 봉사(마르다), 행함(나사로)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경험에 있어야 할 일들이다.

 

▣ 부가적 연구

 

이 기적의 또 다른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본향으로 데려가시려 돌아오실 날을 예시하는 것이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성도이며 나사로는 잠들어 있는 자들을 상징한다(요 11:11-14/살전 4:13-18).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오듯, 살아 있는 성도들은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것이다.

 

나사로는 “큰 소리”에 의해 불려졌는데(43절),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에도 “외침”이 있을 것이다(살전 4:16).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 탄식하셨는데, 오늘날 모든 피조물들은 탄식하며 마지막 구속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롬 8:8-25).

 

그리스도의 오심이 지연되는 것은 오직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함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그 자매들은 왜 주님께서 나흘씩이나 지체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사야 30장 18절은 그 대답을 주고 있다.

 

예수께서 이 때 외에 눈물을 흘리신 다른 두 번의 경우를 눈여겨보라(눅 19:41/히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