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요한복음13 - 요 13장(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JORC구원열차 2009. 7. 13. 10:43

13. 요한복음 13장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본 장을 1장 11-12절, 12장 36절과 대조해 보면, 이제 요한복음의 새로운 부분에 들어섰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땅(세상)에 오셨으되 자기의 백성이 그를 거절하였다.” 이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공적 사역으로부터 떠나셔서 개인적으로 “자기의 사람들”, 즉 제자들과 함께 계신다.

 

13-17장은 제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다락방 사역”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으심과, 그 후에 제자들이 해야 할 사역에 대해 준비시키셨다. 13장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3가지의 중요한 교훈이 담겨져 있다.

 

1. 겸손에 대한 교훈

 

발을 씻기신 것은 규례가 아니라 한 모범이었다(15절). 동양에서는 노예들이 방문자의 발을 씻겼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종의 위치에 서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가 그들의 발을 씻길지라도 그들의 주님이실진대, 그들이 서로의 발을 씻기며 서로 겸손히 대해야 한다는 점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하신다(13-16절). 이것은 열 두 제자들에게는 따끔한 꾸지람이었다. 이들은 바로 그 날 저녁에 누가 가장 큰 자인가를 놓고 다투었기 때문이다(눅 22:24-27 참조).

 

1-5절에서의 그리스도의 행동은 그가 하늘을 떠나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을 때에 하신 일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그의 보좌에서 일어나셔서, 그의 영광의 외모를 버리고 종이 되어 사람들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셨다. 빌립보서 2장 5-11절에는 이 단계들이 아름답게 요약되어 있다. 발을 씻기신 후에 그리스도는 옷을 입고 자리에 앉으셨는데(12절), 이것은 그의 부활과 영광으로의 승귀와 아버지의 우편 보좌에 오르심을 상징한다.

 

베드로는 수 년 후에 베드로전서 5장 5-6절에서 이 겸손에 대한 교훈을 회고해야만 했다(이 구절들을 주의깊게 읽어 보라). 오늘날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정받기와 지위를 위해서 쟁론하는데, 이 겸손에 대한 교훈을 회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거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2. 거룩함에 대한 교훈

 

8절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중요하다. “만약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교제)이 없느니라” 성경에서 연합(union)과 교제(communion)에는 차이점이 있다. 베드로는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람들” 중의 하나로 그리스도와 연합(union)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죄는 주님과의 교제(communion)를 파괴하였다.

 

“아들됨”과 “친교”에는 차이가 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도록 내어맡김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친교를 나누며 그의 임재하심과 능력을 누릴 수 있다.

 

10절에서 그리스도는 “씻음”과 “깨끗함”에 대해 중요한 구분을 짓고 계신다. 직역을 하자면 “온 몸을 한 번 씻은 사람은 발밖에 더 깨끗케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된다.

 

동양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공중목욕탕을 사용하는데,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에 흙길을 걸어가므로 발이 더러워진다. 집에 도착하면 그들은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으나 다만 발만은 씻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신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구원받으면 그는 온 몸을 목욕한 것이다(고전 6:9-11/딛 3:5-6). 그가 일상적인 죄들을 주님께 고백할 때에 그는 그의 행함(걸음)이 깨끗하도록 그의 발을 씻는 것이다(요일 1:7-9).

 

구약의 제사장들이 임명받을 때에 온 몸을 씻는다는 것을 기억하자(출 29:4). 이것은 우리가 온 몸을 씻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물대야를 준비하셔서(출 30:17-21), 그들이 손발을 씻는 데에 매일 사용하도록 하셨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그 말씀의 물로 그의 교회를 깨끗케 하신다(엡 5:25-26/요 15:3).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말씀을 읽음으로써 그 말씀이 자신을 찾아내도록 맡기며(히 4:12), 그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그는 발을 깨끗케하여 빛 가운데 행하게 된다(시 119:9).

 

이렇게 매일 깨끗케 함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교제하도록 유지해 준다. 이 교훈이 구원을 얻거나 “잃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기억하자.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친교의 문제이다. 많은 무지한 신자들이 베드로가 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범했다(9절). 그들은 다시 구원받기를 원한다.

 

3. 위선에 대한 교훈

 

유다는 그리스도의 사람들 중의 하나인 양 가장하고 다락방에 있었다. 10-11절에서 그리스도는 그들 중의 한 명은 구원받지 못했음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유다의 속임수는 매우 교묘해서 다른 사람들은 그가 위선자인 것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먼저 시편 41편 9절을 인용하셔서(18절) 그가 배반당할 것을 알리셨다. 그리스도는 유다의 발을 씻기셨으나 이제 유다는 그리스도를 향해 발꿈치를 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유다를 도구로 사용한 사단을 패배시켰다(2, 27절). 사단은 먼저 마음속에 생각을 심어 두었고, 그의 삶을 조절하기 위해 그에게로 들어간다. 그리스도는 열 두 제자에게 그들이 불신앙 속에서 비틀거리지 않게 하려고 이 구절을 인용하셨다(19절). 말씀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에 의해서 낙심하게 될 수가 없다.

 

21절에서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들 중의 한 명이 그를 배반하리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다. 사실상, 이 선언은 유다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였다. 그리스도는 그의 발을 씻기셨고, 그에게 말씀을 인용하여 들리셨으며, 이제 공개적으로 그를 경고하셨으므로, 유다에게는 그의 마음을 바꿀 만한 모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그 비밀을 알아내고, 베드로에게 그것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그들 중의 누구도 주님의 말씀의 참 뜻을 명백하게 이해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28절). 그리스도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있던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비밀을 발견한다는 데에 주목하기란 재미있는 일이다.

 

유다가 적신 빵조각을 받았을 때, 그는 마침내 사단에게 굴복하였고, 사단이 그에게로 들어가 유다를 마귀의 자녀로 만들었다(요 8:44). 성령의 사역처럼, 사단은 인간의 몸을 통하여 그 안에서 사역하며 그에게 굴복하게 한다. “밤이었더라”(30절)는 것은 유다의 마음이 어두운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실상, 이때는 어두움의 권세가 활동할 때였다(눅 22:53).

 

유다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마가복음 14장 21절에서 예수께서는 “차라리 그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다는 그리스도인인 체하였고, 죄와 더불어 활동하였으며, 구원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어떠한 사람도 그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유다를 둘러싼 불가사의한 일들이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즉, 유다는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 고의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요한복음 6장 66-71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유다에게 경고하시며 “마귀”라고 부르시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베드로는 유다가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는 다가오는 베드로의 실패에 대하여 그에게 경고하셨다. 24절에서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찾아내는 데에 열심이었으나, 이제는 자기의 죄를 직면해야 했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베드로의 교만은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었음을 보여 준다. 자기 확신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위험한 것이다. “네가 후에 나를 따를 것이라”(36절)는 말씀은 아마도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말씀하신 듯하다(요 21:18-19/벧후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