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요한복음16 - 요 16장(보혜사)

JORC구원열차 2009. 7. 13. 10:47

16. 요한복음 16장 / 보혜사

 

이 장은 성령의 사역에 관해 중점을 두고 있다. 제자들은 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떠나셔야만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 성령의 오심으로 더 큰 축복들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점을 보이신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육신의 힘으로 유지될 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려 한다면 하나님의 영이 필요하다. 우리 주님은 믿는 자를 통해서 일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묘사하신다.

 

1. 세상을 책망하는 성령 (요 16:1-11)

 

세상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친구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오는 그의 핍박에 대해 경고하셨는데, 마침내 그 때가 이르자, 그들은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변화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바울은 2절에서 묘사하는 것의 완전한 표본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사실을 좀 더 일찍 말씀하지 않으신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도는 그들을 떠나려하시면서, 그들을 격려하는 말씀을 주셨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핍박에 대해 말씀하셨으나(마 5:10-12), 그 출처(종교적인 사람들)와 이유(세상의 무지와 증오)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이제 불신앙의 세상 속에서 교회를 통해 행할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설명하신다. 성령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14:17) 잃어버린 세상에 오셨다는 점을 명심하라.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바로 그 사실이 세상에 대한 고소이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세상에 계셔서 왕으로서 통치하셔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이제 성령께서 여기 계시며 인류에게 그들의 가공할 무서운 죄를 깨닫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세상에 대해 삼중의 책망을 하신다.

 

1) 죄에 대해서-

이것은 불신앙의 죄이다. 성령께서는 개인적인 죄들에 대해 세상을 책망치 않으신다. 이것은 양심이 할 일이다(행 24:24-25). 성령께서 세상에 계심은 세상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증거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대신 계셔야만 한다. 영혼을 정죄하는 죄는 불신앙, 즉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다(요 3:18-21).

 

2) 의에 대해서-

이것은 불의함, 즉 잃어버린 영혼의 죄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대한 성령의 책망에 대해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인격적인 적용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불신자에 대한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세상에 계신다는 것은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에 대한 증거이다. 이 땅에 계신 동안 그리스도는 사기꾼처럼 법을 어기는 자요 죄인으로 비난받으셨다. 그러나 이 땅에 성령께서 계시다는 사실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일으키시고 하늘로 받으셨다는 증거이다.

 

3) 심판에 대해서-

이것을 사도행전 24장 25절의 “장차 오는 심판”과 혼동하지 말자. 여기서 그리스도는 미래의 심판이 아니라 십자가에서의 과거의 심판을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12장 31-32절에서 사단과 세상을 심판하실 일에 대해 말씀하셨었다(골 2:15 참조). 세상에 성령이 계심은 사단이 심판을 받았고 패배했다는 증거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이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심판을 개인적인 불신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의 불신앙의 죄와, 의의 필요성과, 그가 사단에게 속해 있으므로(엡 2:1-3), 잃어버린 편에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신다. 성령께서 주도하는 책망이 없이는 구원이 없으며, 성령께서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책망하시는 데에 말씀을 사용하신다.

 

2. 그리스도인을 가르치는 성령 (요 16:12-15)

 

제자들은 말씀에 대한 그들의 무지함을 느꼈음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의 가르치는 사역을 설명하심으로써 그들을 안심시키셨다(14:26/15:26).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으심”은 성령께서 자신에 대해 말하거나 자신에게 주의를 끄는 일을 결코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령께서 성경을 쓰신 분이며, 성경의 각장에는 성령에 대한 많은 참고 구절들이 있다. 이 구절은 성령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것을 성도에게 가르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지시를 얻으려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부터 진리를 가르치시며 그렇게 행하심으로써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신다.

 

가이 킹(Guy King)이라는 사람은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

성령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책을 썼다.

성령은 믿는 자를 그리스도와 닮게 만든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신부를 찾는다.

 

그리스도께 굴복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성령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시편119편 97-104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겸손한 그리스도인을 가르치실 수 있는지를 보라. 측정기는 나이와 경험, 교육이 아니라 말씀을 배우며 말씀으로 살려고 자원하는 마음이다.

 

3. 성도를 위로하는 성령 (요 16:16-22)

 

그리스도께서 떠나신다고 말씀하신 것 때문에 제자들은 대단히 불안해하며 낙심하였다. 16절은 역설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다시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여기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먼저, 그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그리스도를 다시 보며, 그들은 또한 성령께서 그들에게 강림하셨을 때에 그리스도를 본다. 그들은 육체적인 안목을 영적인 시각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령의 가르치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히 2:9).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고난당할 일을 아이의 탄생에 비유하신다. 그것은 기쁨이 뒤따르는 진통이다. 이사야 53장 11절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은 울고 슬퍼하지만 그들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슬픔과 고난을 갖지만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그것은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는 종류의 기쁨을 주신다.

 

4. 성도의 기도를 돕는 성령 (요 16:23-33)

 

“그 날에”는 아마도 성령이 오셔서 그들 가운데서 그의 사역을 시작할 날에 대해 언급하는 듯하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제자들은 그들의 질문과 필요를 개인적으로 그에게 얻는 데 익숙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가셨을 때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을 도우며(롬 8:26-27) 아버지께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셨다. 성경의 기도는 아버지께, 아들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서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26절).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요구에 응하시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27절).

 

기도는 굉장한 특권이다.

기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다른 말씀들을 숙고하자(요 14:13-14/15:7/15:16). 믿는 자는 성령께서 자기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도록 허락함으로써 그의 기도생활에서 성장한다. 왜냐하면 기도와 성경은 동반하기 때문이다.

 

유다서 20절은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기도할 것”을 명한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지 않은 것들을 구하는 기도, 육적인 기도가 너무도 많다(약 4:1-10).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짐을 지우실 때 받아들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롬 9:1-3). 성령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일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일들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붙잡는 것이다.

 

제자들의 간증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기쁘게 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다가오는 실패를 경고하신다(32절). 비록 아버지께서 마침내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 버리실지라도 주님께서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일은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그리스도께서 체포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시며, 그들에게 승리를 약속하신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성령께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특별한 임무를 가지신다. 우리는 성령께서 그의 길을 갖도록 허락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