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사도행전15 - 행 14장(돌에 맞은 바울)

JORC구원열차 2009. 7. 16. 13:40

14. 사도행전 14장 / 돌에 맞은 바울

 

본 장은 제 1차 전도 여행을 완료한 내용을 기록한다. 잘 된 지도를 가지고 이 여행을 추적해 가면 좋겠다.

 

1. 선교사들이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함 (행 14:1-20)

 

복음이 전파되어 믿는 사람이 생긴 곳에서는 어디나 분열과 방해가 있음을 알게 된다(요 7:43/요 9:16/요 10:19/눅 12:49-53 참조). 그러나, 반대가 있다고 해도 바울과 바나바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였다. 이들은 그 성에 머물며 계속해서 전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허락하심으로써, 이들의 믿음을 영화롭게 하셨다 이러한 기적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명했으며(고후 12:12), 유대인들(고전 1:22)과 이방인들에게(롬 15:18-19) 영향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을 돌로 치려는 음모가 드러났으므로, 이들은 루스드라와 더베로 떠나 그곳에서 말씀을 전파하였다(마 10:23 참조).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널리 알려진 절름발이를 고치는 큰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베드로와 바울의 사역을 비교해 보자.

 

-두 사람 다 절름발이를 고쳤다-사도행전 3장 1-8절 / 14장 8-12절

-두 사람 다 사단을 사칭하는 사람을 처리하였다-사도행전 8장 18-24절/ 13장 4-12절

-두 사람 다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벗어났다-사도행전 12장 5-10절 / 16장 25-29절

-두 사람 다 죽은 사람을 살렸다-사도행전 9장 40절/ 20장 12절

-두 사람 다 특이한 기적들을 행하였다-사도행전 5장 15-16절/ 28장 8절

 

이방 거민들은 이 기적을 통해 바울과 바나바를 지상에 임한 그들의 신(神)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바나바를 “쓰스”(Zeus, 쥬피터-신들의 우두머리)라 하고, 바울은 “허메”(Hemes, 머큐리-신들의 사자)라고 하였다. 그 지역의 “쓰스”의 사제는 이들에게 제사를 드릴 준비를 다 갖추었으나, 선교사들이 공식적으로 이들을 중단시켰다.

 

바울은 군중이 모인 이점(利點)을 살려 말씀을 전파했다. 바울이 회당에서 했던 것처럼 구약 성경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근거하여 이방인들과 더불어 이성적으로 추리해가고 있음에 유의하자. 이 짧은 설교를 바울이 아덴에서 행한 메시지와 비교하고(17:16-34) 슥 로마서 1장 20절 이하에 나오는 그의 진술을 살펴보자. 자연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역사는 이방인들을 “핑계하지 못하게” 한다.

 

그의 메시지는 거절당했고 백성들은 바울에게 돌을 던졌으며, 죽은 줄 알고 버렸다. 그는 자신이 유대인들을 주도하여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게 했던 일을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후에 바울은 “한 번 돌로 맞고”라고 썼으며(고후 11:25),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그는 자기의 몸에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고난의 “흔적” 또는 표시를 가졌다고 언급했다. 어떤 이들은 이 때 바울이 실제로 죽었으며 기적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것이라고 믿어, 바울의 “삼층천” 경험이 이때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제안한다(고후 12:1-4). 몇 년이 지난 후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러한 고난을 상기시켰다(딤후 3:11). 디모데가 이때에 그리스도께로 개심했을 가능성도 있다(행 14:6/행 16:1).

 

2. 선교사들이 교회들을 확립시킴 (행 14:21-24)

 

복음 전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씀으로 가르치고 격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하신 곳이면 어디나 바울이 지교회를 세운 이유가 이것이다. 지교회는 신자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영적인 음식을 얻고,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발견하며, 봉사의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오늘날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좋은 복음 전도적인 기관들과 프로그램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대부분의 지교회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으면 내일에 가서는 실패하게 될 것이다.

 

용감하게도, 선교사들은 그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던 도시들로 되돌아 왔다. 이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는 생명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행 5:26).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영적인 도움과 인도를 필요로 하는 귀한 새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했다.

 

이들이 있던 도시는 바울의 고향인 다소에서 160마일(약 257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바울은 고향을 다시 방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자신의 욕망을 제쳐 두었다. 또한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를 통과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대한 참된 헌신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하였다. 헬라어에서 “임명하다”는“인기투표에 의해 선출되었다”와 “지명하다”는 뜻의 이중의 의미가 있다. 분명히 사도들은 최선의 후보자들을 선출하였고(딤전 3:1-/딛 1:5- 에 자격이 나옴), 그리고 전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투표를 하였다. 이 방법은 마땅한 방법이다.

 

성경에는 주교나 대주교 또는 추기경 등 “영적인 성직자”에 대한 말은 없다. 디도서 1장 5절과 7절, 그리고 사도행전 20장 17절과 28절을 비교한다면 “감독”과 “장로”라는 용어가 같은 직분으로서, 목사의 직분을 가리키는 것을 보게 된다.

 

바울이 여행에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지도자들에게 인수하지 않았음에 유의하자. 이것은 그들에게 시험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라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계시킨다(딤전 5:22). 영적인 지도자는 초신자, 즉 새로 입교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딤전 3:6).

 

3. 선교사들이 본 교회에 보고함 (행 14:25-28)

 

선교부나 교파별로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법적인 면 또는 기술적인 면을 지원할 수는 있으나, 최종적인 책임은 지교회에 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신자들에게 보고를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일을 하도록” 파송한 사람들이었다(13:2/14:26/15:38 참조). 이 첫선교사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하는 모임은 얼마나 축복된 것이었을까!

 

사도행전은 예수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후에 “계속해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행 1:1). 그러므로 이 일은 사실상 주님이 하신 일이다.

 

제 1차 선교 여행을 고찰해 보면 바울이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데에 준수했던 근본적인 원리들을 볼 수 있다. 성령께서 바울의 사역을 인도하셨으며, 이 원리는 오늘날 우리도 따라야 할 중요한 원리이다.

 

1) 주요 도시에서 일함-

대개의 경우 바울이 일한 곳은 여러 지방에 있는 주요 도시였다. 바울은 고립된 구석에 '자신을 묻어 둔 것“이 아니라, 인구가 많은 중심지들을 공격하였다.

 

2) 지교회들을 설립함-

그의 사역은 중앙 사령부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면 되는 “1인 체제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영혼들을 지도자가 있는 지교회의 구성원으로 조직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것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친다는 뜻이며, 또한 믿음으로 육성한다는 뜻이다. 이 일은 다음과 같은 일을 이끌어 낸다.

 

3) 신자들에게 일하는 방법을 가르침-

바울은 선교사의 직책이 스스로를 무용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을 훈련하여 그들이 직접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결국 어느 지교회에 속한 100명은 한 명의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의 100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를 알고 있다!

 

10년 후에 로마서를 쓸 때에(15:19/15:23) 바울은 전 지역이 복음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었을까? 그는 개심자들을 얻어 지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데살로니가전서 1-2장에서는 또 다른 예를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선교 기관”의 슬픈 결과를 추수하고 있는데, 이 기관에서는 “백인”(白人)이 모든 일을 다 했으나 피선교인으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전도하도록 하는 데는 실패했다.

 

우리의 목적은 복음화하는 데 있다. 간단히 말하면, 복음을 들을 최소한 한 번의 기회를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에게 준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는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 번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에 대해서 들을 수 있게 기회를 주어야 할 빚을 지고 있다.

 

바울은 인쇄, 신문, 라디오 방송국이나 TV, 비행기, 또는 우리가 대단히 필수적으로 생각하는 현대적인 장치들을 하나도 가지지 않고도 로마 세계를 복음화하였다. 과학의 기적을 이룬 오늘날에는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가!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