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린도후서 6장 / 분리
6-9장에서는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일련의 사랑의 권고로 구성되어 있다. 6장 1-13절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자기의 생애와 사역을 검토해 보고 마음을 넓혀 그를 용납할 여지를 갖게 되도록 권고한다.
6장 14절-7장 1절(장이 여기서 나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에서 분리될 것을 권하고 있는 반면, 7장 2-16절에서는 화해를 탄원한다. 8-9장은 유대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에 대해 다루며 그들의 협력을 호소한다.
이제, 6장에 나오는 두 가지의 호소를 살펴보자.
1. 조사할 것에 대한 호소 (고후 6:1-13)
지금까지의 다섯 장에서 바울이 자기의 생애와 사역을 변호하고 있었음을 기억하자. 고린도에 있는 그의 대적들은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방법과 동기들이 그릇되었다는 문제로 그를 비난하였다. 5장에서의 그의 마지막 언급은 화해의 사역을 다룬다. 따라서 그가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화해를 청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라고 호소한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는 죄인들에게(5:20)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도(6:1) 간청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받는다는 일은 얼마나 비극인가! 고린도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아이로서, 성숙치 못한 성도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은혜와 지식 가운데서 성장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목회자(바울)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사역에서 유익을 얻지는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스펄젼(spurgeon)에게 그의 생애를 글로 쓸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나의 생애를 하늘에 쓰시오. 나는 숨긴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라고 대꾸하였다. 바울은 그의 생애와 사역에서 숨길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였으며, 사역에 의심을 일으키지 않도록 애써 왔다. 3-10절에서 바울은 그의 사역이 흠이 없음을 증명하는 몇 가지 논점을 제시한다.
1) 그가 치른 전쟁(3-5절)-
“견디는 것”(인내)은 흔들의자에 하릴 없이 앉아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라, 장애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위해 돌진하는 전쟁 중인 군사의 모습이다. 그리스도께 순종하기 위하여 바울이 싸운 싸움은 사역에 있어서 진실하고 이타적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난은 그가 불순종하였거나 징계가 필요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그가 순종적이며 사단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오는 것이었다.
“매맞음”이란 바울이 견뎌야 했던 매질을 뜻하는 것이며, “요란한 것”이란 그가 폭도들을 직면했던 일들을 말한다. “수고로움”이란 자신과 그의 동료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밤낮 고생하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자지 못함”이라는 말은 기도와 말씀의 사역을 위해 잠자지 않고 깨어 있었음을 묘사하고 있으며, “먹지 못함”은 양식이 없어 먹지 못하고 다닌 때가 종종 있었음을 시사한다. 가짜 목회자로서 이처럼 호된 일을 견뎌내려는 사람이 없을 것임은 분명하다.
2) 그가 사용한 무기들(6-7절)-
바울의 성품과 행동은 언제나 그리스도인다왔다. 그는 깨끗한 손과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있었고, 성도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꾸민 것”이 아닌 정직한 것이었다. 그는 사단을 패배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사용하였다. 부정직한 목회자들은 자신의 일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육신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3) 그가 얻은 명성(8-10절)-
우리는 여기서 역설, 또는 반대가 되는 언급들을 연속적으로 보게 된다.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성도들과 죄인들의 눈에 다르게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죄인이 어떤 한 가지 시각으로 그를 본다면 성도는 다른 시각으로 그를 본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각기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보는 것과도 같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에게 팔렸다고 설명하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 표현인가!
바울은 그들에게 자기의 사랑을 상기시킴으로써 이 호소를 끝내고 있다. 그는 마음을 넓혔으나 그들의 마음은 좁았다. 바울은 그의 영적인 자녀들에게, 자기가 그들을 용납한 것같이 사랑 안에서 그를 용납하라고 호소한다.
2. 분리를 위한 호소 (고후 6:14-7:1)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은 영적인 것이었다. 교인들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인들답게 살고 있지 않았으며, 죄와 타협하고 있었다. 바울은 분리를 위한 두 가지 주된 논점을 제시한다.
1) 원리로부터 이끌어낸 논점(13-16절)-
반대가 되는 것끼리는 서로 교제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이 생의 근본적인 원리이다.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은 레위기 19장 19절에 나오는 모세의 권고를 생각나게 한다. 이 고린도사람들은 결혼과 사회생활과 사업, 기타 다른 방식에 있어서 불신자들과 멍에를 같이 하고 있었으며,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간증을 상실하고 있었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어떻게 세상에 증거할 수 있는가?
여기에 나오는 의와 불의, 빛과 어두움, 그리스도와 벨리알(사단의 구약 명칭), 신자와 불신자(라틴어로 “이단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등과 같은 연속적인 상반된 일들에 대하여 살펴보자. 오늘날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교회가 세상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환심을 사고 세상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보다 더 진리에서 거리가 먼 것도 없다.
죄와는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고립이나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지키는 것을 뜻한다. 물에 배가 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배에 물이 들어올 때에는 주의하라! 바울은 레위기 26장 11-12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신자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신자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의 문제는 그가 하나님과 가지는 교제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힌다.
2) 약속으로부터 이끌어낸 논점(17-18절)-
하나님은 자신을 순전하게 유지하는 사람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세속성이라도 것은 미묘한 것이어서, 그리스도인이 모르는 사이에 점차적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세상과 벗하게 된다(약 4:4). 다음으로는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요일 2:15-17), 그런 다음에는 세상에 순응하게 된다(롬 12:1-2).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하나님께로 분리시키는 사람들을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사 52:11 참조). 타협적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과, 삶을 정결케 할 유일한 경험인 성령 안에서의 보다 깊은 교제를 잃게 된다.
7장은 6장을 끝내는 구절로 시작한다. 이 구절은 바울이 개인적인 거룩함에 대하여 한 말을 치밀하게 요약하고 있는데, 일련의 “쌍”(Duets)으로 되어 있다.
3) 분리를 위한 두 가지의 동기-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극진히 사랑함”)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다. 우리의 생활에 이 두 가지는 언제나 작용해야만 한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의 생활을 깨끗하게 한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건전한 두려움이 동기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기 위하여 징계를 하셔야만 한다.
4) 두 가지의 책임-
우리는 소극적인 면으로는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해야만 하며, 적극적인 면으로는 거룩함에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께 우리를 정결케 해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시 51:2/시 51:7). 요한일서 1장 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를 완전히 정결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는 또한 주님을 불쾌하게 하는 모든 것을 우리의 생활에서 씻어내야만 한다. 이사야 1장 16절은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게 하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처리할 문제를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시도록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만일 네 손이 너를 실족케 하면 찍어 버리라” 이같이 함으로써,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거룩함 가운데서 성장할 수 있다.
5) 두 종류의 죄-
육신의 추행이 있듯이 영적인 추행이 있고, 마음가짐의 죄와 마찬가지로 행위의 죄가 있다. 탕자는 육신의 죄를 지었으나 그의 형은 무서운 심령의 죄를 범하였다(시 51:17 참조).
분리는 소극적이며, 온전한 거룩함이 적극적이다. 죄에서는 분리되어 있지만 개인적인 거룩함에서 성장하지 못하며 성령의 열매들을 맺지 못하는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보기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바리새인들은 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으나, 그들의 삶에는 사랑과 마음으로 나는 순종이 결여되어 있었다. 분리는 우리를 죄로부터 떨어지게 하지만, 분리가 우리를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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