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고린도 후서12 - 고후 12장(바울이 지닌 육체의 가시)

JORC구원열차 2009. 7. 22. 00:32

12. 고린도후서 12장 / 바울이 지닌 육체의 가시

 

우리는 종종 본 장에서 헌신의 축복에 대한 부분을 발췌해 내기도 하지만, 지금 바울은 그의 비판자들에게 대답을 하고 있는 중이며, 사도로서의 소명을 증명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앞 장에서 그는 자기의 연약함을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실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작정하였다. 본 장에서는 그러한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다. 실제로, 여기서는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네 가지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 그리스도께 받은 계시 (고후 12:1-6)

 

“인간”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물론 자신에 관한 것이다. 14년 동안 이러한 감동적인 경험들을 비밀로 지켜왔다고 상상해 보라(또한 14년 동안 고난을 견디는 것도 상상해 보라). 물론, 바울은 다른 어떤 사람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그는 교회에 대한 비밀(mystery)을 세상에 계시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받은 도구였다(행 26:16 참조).

 

“세째 하늘”은 낙원이며, 하나님께서 계신 바로 그 하늘나라이다.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분수이상으로 그를 높이지 않도록 바울 자신이 이러한 경험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겸손함이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이 하나님의 선택하신 종이 아니었더라면 이러한 계시들을 그에게 주지 않으셨을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11절 이하에서 그가 언급한 대로, 그가 가르친 진리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것으로, 다른 사도들로부터 간접적으로 거쳐 온 것이 아니었다.

 

2. 육체의 가시 (고후 12:7-10)

 

이 가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모르지만, 가장 적절한 짐작은 눈병인 것 같다. 바울은 회심하였을 때 초자연적으로 눈이 멀었었는데(행 9:9) 말년에까지 그 영향으로 연약함을 지녔을 수 있다. 갈라디아서 4장 15절과 6장 11절의 “큰 글씨로”라는 말은 눈에 이상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이 바울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시련이 되었을 것이며, 사실상 육체의 가시(말뚝)라고도 불리워질 수 있는 것이다(때로는 죄수들이 말뚝에 묶여 지독한 죽임을 당했다).

 

이 가시의 존재는 1-7절에 나와 있는 그의 천국 경험을 증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 안에서 얻은 이 위대한 경험들에 대해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시를 주셨기 때문이다(참으로 놀라운 선물이다). 고린도에 있는 대적들은 바울이 연약하다고 비난하였는데(10:1/10:10/11:6/11:29) 이제 바울은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그의 연약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임을 시인한다.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고발하였던 그 연약함은 사실상 그의 사도권에 대한 논쟁이었다.

 

바울의 가시로 인한 경험에서 배우게 되는 실제적인 교훈들이 몇 가지 있다.

 

1) 영적인 축복들은 육신적인 축복들보다 더 중요하다-

바울은 자기의 연약함에서 해방된다면 보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사실은 그 반대였다. 몸이 아픈 것은 죄라고 설교하는 신유주의자들은 본 장을 다룰 때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2)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으실 때 더욱 큰 축복을 받게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 같을지라도 필요에는 언제나 응답하신다.

 

3) 연약함이란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한 강함이 된다-

고린도전서 1장 26-31절을 보고 이를 확증하라. 그리고 기드온의 횃불과 다윗의 물매, 모세의 지팡이를 기억하라.

 

4) 은혜는 모든 필요에 대처하게 한다-

은혜는 바울로 하여금 그의 연약함을 받아들이게 했으며, 그 연약함 안에서 영광을 보게 하며, 기쁨을 갖게 하였다. 얼마나 놀라운 영적인 성장인가! 바울은 그의 연약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러한데 그 밖에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고후 4:7).

 

3. 사도의 징표 (고후 12:11-18)

 

바울이 사도들 중에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을 높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직분을 변호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는 몇 가지 “징표”를 열거하는데, 먼저 인내로부터 시작하고 있음을 눈여겨보자. 우리는 그가 기적과 경이로운 일들이 일어났던 것을 먼저 말할 것을 기대하고, 인내를 말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사명을 맡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바울이 시련을 받으면서도 꾸준하게 견디어 왔다는 점이다(4장 참조).

 

그는 또한 돈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언급한다.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종의 태도가 그의 영적인 생활과 외양을 나타낸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로 주장할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의 종은 돈을 사랑할 수 없다. 바울은 그와 디도가 스스로 쓸 것을 공급하고 고린도 교회를 관대하게 돕는 방식으로 교회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증명하였음을 상기시킨다.

 

기적들과 징표들만이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단도 기적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살후 2장). 그러나, 어떤 인간의 삶과 동기가 순전할 때 우리는 그의 기적들을 신뢰할 수가 있으나, 그의 생활이 옳지 않을 때는 그의 기적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일 수 없다.

 

4. 죄를 다루는 담력 (고후 12:19-21)

 

“너희는 내가 얼마나 연약한 것을 안다.” “나는 이제 너희가 교회를 정결케 하는 일을 시작하기를 원한다. 만일 내가 그 일을 하기를 기다린다면, 내가 주님 안에서 얼마나 겸손할 수 있는지를 너희가 보게 될 것이다”라고 바울은 말한다.

 

삯군은 늑대가 오는 것을 보고 달아나지만(요 10:13), 참 목자는 머물러 양을 보호한다. 바울은 달아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 안에 있는 엄청난 죄들의 이름을 언급하기에 이른다. 비록 이들이 고린도전서 5장에 나오는 위반자들을 처리했지만 이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죄들이 있었다. “적은 누룩”이 실로 덩어리 전체를 부풀게 했다(고전 5:6).

 

여기서는 두 종류의 죄, 곧 사회적인 죄(10절)와 성적인 죄(21절)가 언급된다. 교회의 회중들 중에는 탕자들, 또한 그의 형과 같은 이들(눅 15:11-32 참조)이 있었으며 둘 다 회개할 필요가 있었다.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선 분당으로 시작된 일이 이제는 자라나, 논쟁과 투쟁과 소란으로 화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사단이 명령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결코 혼란을 일으키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거짓 교훈은 언제나 거짓된 삶으로 인도해 간다.

 

본 장은 그리스도인의 종들을 위한 시험자료로 사용되면 좋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 중에는 아무도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 없으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로부터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고난을 견디는 은혜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죄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돈에 대한 사랑이나, 사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을 감히 남아 있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심으로, 하나님께서 추천하시고 축복하시는 부류의 종들이 되기를 기원한다.